무릇 정벌하고 싸우는 이치는 오직 이겨서 승리를 바라는 것이지만 골육 간의 싸움에서는 이길수록 더욱 잔혹해지고 승리하여도 공로가 아니며, 패하면 죽음이 있으며 병사를 수고롭게 하고 의리를 해치니 어그러지고 잃는 것이 많소.
애초에, 연(燕)의 소성제(昭成帝)는 고려(高麗, 고구려)로 달아났고 그의 친족 풍업(馮業)으로 하여금 300명을 데리고서 바다에 떠서 송(宋, 남조 송)으로 달아나도록 하였는데, 이어서 신회(新會, 광동성 강문시)에 머물렀다.
육예(六藝)를 자세히 설명하며 전대의 유학자를 물리친 것은 왕망(王莽)의 법이었습니다. 철(鐵)로 화폐를 만들고 가볍고 무거운 것에 일정함이 없는 것은 공손술(公孫述)의 제도입니다. 양고기를 요리하는 사람에게 도장을 새겨주고 조정의 문장이 촌스럽고 조잡하였던 것은 경시(更始)·조륜(趙倫)의 변화입니다.
황상이 또 물었다. "처음에 강을 건넌 사람은 몇 명인가?"후경이 말하였다. "천 명입니다.""궁성을 포위한 사람은 몇 명인가?"말하였다. "십만입니다.""지금은 몇 명이 있는가?"말하였다. "거느리는 땅 안에는 저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황상은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백제(百濟)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조공하였으며 성(城)과 관문이 비고 무너지고 예전에 왔을 때와 달라서 단문(端門)에서 곡을 하였는데, 후경이 노하여 붙잡아 장엄사(莊嚴寺)로 보냈으며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전에 여포(呂布)는 정원(丁原)을 죽이고서 동탁을 섬겼으나 끝내 동탁을 주살하고 도적이 되었으며, 유뢰(劉牢)는 왕공(王恭)을 배반하고서 진(晉)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진(晉)을 등지고서 요사스러운 일을 꾸몄습니다. 왜일까요? 이리의 거친 마음은 끝내 순종하고 가까이하는 성품이 없고 호랑이를 기르는 것에 비유되니, 반드시 굶주리면 물리는 화를 당합니다.
"지금 이궁(二宮)은 위태롭고 압박되었으며 교활한 도적들이 세상에 가득하니 신하는 당연히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함께 하여야만 하거늘 어찌 스스로 서로 모순이 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