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六藝)를 자세히 설명하며 전대의 유학자를 물리친 것은 왕망(王莽)의 법이었습니다. 철(鐵)로 화폐를 만들고 가볍고 무거운 것에 일정함이 없는 것은 공손술(公孫述)의 제도입니다. 양고기를 요리하는 사람에게 도장을 새겨주고 조정의 문장이 촌스럽고 조잡하였던 것은 경시(更始)·조륜(趙倫)의 변화입니다.
황상이 또 물었다. "처음에 강을 건넌 사람은 몇 명인가?"후경이 말하였다. "천 명입니다.""궁성을 포위한 사람은 몇 명인가?"말하였다. "십만입니다.""지금은 몇 명이 있는가?"말하였다. "거느리는 땅 안에는 저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황상은 머리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백제(百濟)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조공하였으며 성(城)과 관문이 비고 무너지고 예전에 왔을 때와 달라서 단문(端門)에서 곡을 하였는데, 후경이 노하여 붙잡아 장엄사(莊嚴寺)로 보냈으며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