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네(오복이 할매) 평사리의 과부로 5부까지 등장하는 몇 안 되는 평사리의 이야기꾼. 남편은 폐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낙들과 어울려 성실히 일하며, 말이 많고 가난하나 욕심 없으며 정이 많아 사람들의 인심을 얻는다... 같은 과부 처지이던 복동네의 억울한 죽음에 충격을 받고 천일네와 함께 나서서 봉기를 혼내주기도 하고 석이네를 구박하는 귀남네에게 야단을 치기도 하는 경위 바른 사람이다. _ 이상진, <토지인물사전> , p120/214


 <토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별도의 인물사전이 필요할 정도지만 이들 중 서희가 주인공임은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한 말부터 일제시대를 관통하는 이 시대의 아픔을 최서희는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개인적인 아픔을 겪기는하지만, 할머니 윤씨 부인으로부터 얻은 재산을 기반으로 더 큰 부(富)를 이루며 권력을 얻은 서희는 분명 어두운 시대의 아픔과는 거리를 둔 인물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1975)가 바라본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1940)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면에서 작품에서 비중은 작지만, <토지> 전반에 걸쳐 여러 아픔을 겪으며 살아간 야무네는 고단한 민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대에 영향을 가장 덜 받고 시대와 먼 거리를 두고 있어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시대는 이들에게 이 특징을 아주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프루스트, 카프카, 크라우스(Karl Krauss) 그리고 벤냐민(이 그런 사람들이다. 벤냐민의 경우 몸짓, 말하고 들을 때 머리를 세우는 습관, 예의범절, 특히 용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을 포함한 표현방식, 대단히 독특한 취향 등은 고풍스러워 보였다.(p490)... 그는 망명자로  파리에 살게 된 이후에 천성적인 고결함 때문에 가벼운 만남을 친분관계로 발전시키기 못했으며, 사람들을 새롭게 접촉하지 못했다. _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 p491/886


 여러 곳에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야무네지만, 이번 주 <토지 10>에서 보여진 야무네의 마음은 고통스럽다. 낯선 섬으로 시집 가결핵에 걸려 아픈 딸 푸건과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야무의 모습 속에서 죽어가는 딸을 보면서도 가난과 시집간 이는 출가외인(出家外人)이기에 차마 말을 못 건네는 모습 속에서 속으로 흘리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무상한 것아, 니 몸이 성함사. 죽물이라도 에미가 끓이주는 것 묵으믄 맴이라도 안 편하겄나. 굶으나 묵으나 나랑 함께 가자."  "한 분 데리고 왔이믄 그만이제, 벵들었다고 내치는 법은 없소. 아예 시어무니 앞에서는 말도 내지 마소."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러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에 책임을 지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야무네는 안다. (p155)... 다음 푸건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 있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목이 꽉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딸이 죽을 것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거니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픈 것은 아니다. 헛간 같은 방이며 시어머니, 동서의 쌀쌀맞은 눈빛이며 무엇을 먹고 온종일을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가, 그 생각 때문에 목이 메이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0> , p160/682


 야무네가 어머니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이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 심리적 고통이라면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에서 팡띤느가 딸 꼬제뜨의 양육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었다. 죽어가는 딸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야무네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머리를 자르고, 이를 뽑고, 심지어 몸까지 팔아야 했던 팡띤느. 비참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이들 어머니들 마음은 자식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이들의 마음은 피에타(Pieta) 그 자체였다.


[사진] 피에타 (미켈란젤로) Pieta, Michelangelo [출처 : https://www.mentalfloss.com/article/63602/15-things-you-should-know-about-michelangelos-pieta]


 아이(꼬제뜨)는 그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완벽한 신뢰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모든 엄마들의 팔은 자애로움으로 형성된지라, 아이들이 팔에 안겨 깊이 잠들 수 있는 것이다.(p493)... 한겨울에, 아직 나이 여섯도 채 아니 된 그 가엾은 아이가, 구멍투성이 낡은 누더기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커다란 두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빨갛게 언 작은 손으로 커다란 비를 들고, 해가 뜨기 전부터 집 앞길을 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 듯 비통한 일이다. 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526/1084


  팡띤느는 뜨개질하여 지은 치마 하나를 사서 떼나르디에 내외에게로 보냈다. 치마를 받고 떼나르디에 내외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들이 원하던 것은 돈이었다. 그들은 치마를 에뽀닌느에게 주었다. 가엾은 '종달새'는 여전히 추위에 떨었다. 팡띤느는 홀로 생각에 잠기었다. '내 아이가 이제는 춥지 않을 거야. 나의 머리채로 감싸 주었으니까.'(p607)... 아이에게로 향한 그녀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졌다. 추락하면 할수록, 그리하여 주위의 모든 것이 음침해질수록, 그 다정한 어린 천사가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더욱 광채를 발산하였다. 그녀가 홀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부자가 되면 꼬제뜨와 함께 살 수 있을 거야." 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609/1084


 야무네와 팡띤느의 자식사랑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면, <토지>에는 이와 다른  모성(母性)도 공존한다. 홍이를 대하는 임이네의 모습은 자신에게도, 용이에게도, 홍이에게도 모두 어려운 짐이었고, 상처가 되버렸다. 특히, 홍이에게 생모(生母)와 양모(養母) 사이에서 겪었던 마음의 갈등이 후에 첫사랑 장이와 부인 보연 사이에 방황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때문일까. 보연과  홍이의 혼인날 내린 장대비가 예사롭게 느껴지질 않는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홍이는 죄의식 때문에 진주로 왔다. 장이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순순하게 느낄 수 있는 죄의식이지만 다른 또 하나의 죄의식, 밟아 뭉개고 싶지만 훨씬 더 쓰라리고 괴로운 감정, 때문에 진주로 왔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에 대한 것이다. 설령 어미가 바위 같은 강자요 자신은 모래알 같은 약자일지라도 자신이 거부하는 쪽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든 피해를 받든 가해자는 거부하는 쪽이다. 깊은 관계일수록 특히 혈육관계일수록 거부에는 죄의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_ 박경리, <토지 10> , p212/682


 이번 주 <토지>를 읽으며 비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두 모녀를 떠올린다. 야무네와 팡띤느. 서로 다른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생각하는 두 인물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성(母性)을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구속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이는 능동적인 대처가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유전자의 작용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기 중심적'인 다른 행동과 다른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설명하려는 여러 이론들이 저마다의 근거를 가지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논리에 한편으로 수긍하면서도, 야무네와 팡띤느의 행동을 마음깊이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 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은 길을 선택했으리라는 공감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유전자'가 아닌 '개체' 단위에서 사고를 하며, '개체' 단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에서 만들어 낸 '문화' 안에서 살아가기에 '부모의 자기 희생'이라는 예외적으로 보이는 현상의 제1원인이 무엇인가 보다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이런 감정 안에서 야무네와 팡띤느의 사랑에 마음 아파하고, 임이네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팡띤느의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회가 여자 노예 하나를 매입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로부터?  비참함으로부터. 배고픔과 추위와 고립과 저버림과 궁핍으로부터. 비통한 거래이다. 영혼 하나를 빵 한 조각과 바꾸다니. 비참함이 공급하고 사회가 인수한다._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1> , p622/1084


 결국 이상적인 어머니는 공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인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개인적인 야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어머니는 자녀의 틀을 형성할 때,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역사가 일깨워주듯이, 훌륭한 어머니라는 개념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_ 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 p400


 부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진히 자식을 돌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쪽이 나이도 많고 매사에 더 능숙해서 자식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는 형제 관계에는 해당되지 않는 또 다른 비대칭성이 있다.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젊다. 이것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개의 경우 자식의 기대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327/996 


PS.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에 따르면, 임이의 행동도 홍이를 위해서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결과적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월선에게 홍이를 밀어넣은 임이의 행동은 '뻐꾸기의 사랑'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감동적으로 보일지라도 입양하는 행동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정해진 규칙이 잘못 사용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암컷은 자기의 친족, 특히 장래의 자기 새끼들을 살리는 데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p314)... 고의적으로 모성 본능을 악용하는 예는 다른 새의 둥지에 산란하는 뻐꾸기 같은 '탁란조 托卵鳥'에서 볼 수 있다. 뻐꾸기는 부모 새에게 내장된 "자기 둥지 속에 있는 새끼 모두에게 친절하라"라는 규칙을 악용한다. 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31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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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띤느의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회가 여자 노예 하나를 매입하는 이야기이다. 누구로부터?  비참함으로부터. 배고픔과 추위와 고립과 저버림과 궁핍으로부터. 비통한 거래이다. 영혼 하나를 빵 한 조각과 바꾸다니. 비참함이 공급하고 사회가 인수한다.(p622/1084)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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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천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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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찾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만약 찾기를 그만둔다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계속 찾자.
그러니까 계속 움직이자.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일도,
나쁜 일도 아냐.
네 다리는
‘위험한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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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찾고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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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은 아이들에게 참 인기가 좋다. 연의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기에, 작가의 신작은 나오는 대로 구입하는 편인데, 한 번 가지고 나가면 친구들이 서로 빌려달라고 하기에 며칠 뒤에서야 돌아오곤 한다.

작가의 책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이유는 뭘까.
만화와 같은 느낌의 그림, 적은 글밥이 책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가독성과 함께 휴대성을 높인다는 생각을 먼저 하데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신스케 작품의 높은 인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도망치고, 찾고」에서 다른 인기의 비결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많은 페이지의 여백처럼 아이들 상상을 자극하고, 여유를 안겨주는 작가의 배려 때문이 아닐까.

숙제, 학원 등으로 꽉 짜여진 일정에 지친 아이들 눈 앞에 한 가운데 놓여진 장난감 블록 하나와 ‘네 마음대로 만들어봐‘라는 편지가 놓여진 큰 방 문이 열린 느낌이 이와 비슷할까. 그런 여유 속에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이 열리는 듯하다.

누구에게서 도망치고, 누굴 찾을 지는 스포가 될 수 있기에 각자 찾는 것으로 넘기자. 다만,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신스케의 작품이 성인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내 반쪽을 만나지 못했을 때 가졌던 생각인
‘지금은 아직 모르는 그 사람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을 문장 속에서 만나며 작가 책의 빈 공간이 결코 채워지지 않은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ps. 시간이 흘러 옆에서 보니 그 사람은 별로 기다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너와 닮은 사람,
너와 함께 깔깔깔 웃어 줄 사람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거야.
그 사람도 분명 너를 찾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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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1-19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집에 한권 뿐인데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니 더 구입해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11-19 16:27   좋아요 2 | URL
처음에는 저도 몰랐는데, 새로 사준 책들이 한동안 안 보여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들 사이에 신스케 작가 인기가 참 높습니다. 은근 중독성있고 시리즈가 꾸준히 나와 한 권민 더 구입하시기도 힘드실 듯 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1-11-19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이들도 좋아하는 책이로군요^^
연의가 많이 컸군요?
꼬마 때가 엊그제 같더니 말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11-19 17:34   좋아요 2 | URL
^^:) 벌써 내년이면 연의가 4학년이 되니 시간이 참 빠르네요. 신스케는 아이, 어른들 모두에게 사랑 받는 몇 안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