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제20차 전대에서 공산당과중국의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세웠다.
덩샤오핑이 만든 집단지도체계는 마오쩌둥의 1인 장기 독재가 초래한 참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 기반했다. 시진핑은 이전통을 산산조각 내면서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또한 이번 상무위에서 밀려난리커창 국무원 총리와 왕양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비교적 시장 지향적이고 서방국가들에 덜 적대적인 인사들로 분류되어왔다. 이로써 시진핑의 슬로건인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 P12

시진핑의 주의주의는 코로나19 방역에도 구현되었다. 지난해 중반 이후 전세계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 중이다. 올해 들어서도 수많은 도시들에서 봉쇄 조치가 단행되었다. 이는시진핑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제로 코로나‘ 조치 때문이다. 수천만 인민이 피해를입고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데도 공산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번 전대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크게 완화한다는방침은 나오지 않았다. 중국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의지는 인민들이나 다른 나라뿐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미물에게도 관철되어야 한다.  - P14

시진핑 이전의 중국 지도자들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강조해왔다. ‘중국의능력을 숨기고(韜光), 때를 기다리자晦)‘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이번 전대를 준비한듯하다. 지금까지의 중국과 앞으로의 중국은 아주 크게 다를 것이다. - P15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당들은각자 ‘우리가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그 ‘옳음‘은 오로지 선거를 통해 승인된다. 시민들은 투표로 대통령이나 집권당을 선출하고 그들에게 일정 기간 통치를위임할 뿐이다. 반면 중국에서 공산당은선거와 상관없이 ‘옳은 것으로 전제된다.
문자 그대로, 선험적으로 ‘옳다‘. 중국공산당의 사상적 기반은 마르크스-레닌주의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공산당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뚫어 아는일종의 ‘현자‘ 집단으로 설정된다. 그들은
‘인민들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당사자들보다 훨씬 더 잘 안다.  - P18

윤석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와 소송 중이다. 2020년 12월 검찰총장이던 때 받은정직 2개월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의 원고가 윤석열 대통령, 피고가 법무부 장관이다. 2021년 10월 1심에서 패소(원고 청구기각했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즉각 항소했다. 1년이지났지만 2022년 10월 현재 2심은 변론준비기일을 거듭하며 본격 재판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그사이 ‘원고 윤석열은 제20대 대통령이 됐다. - P24

서버 시설에 불이 나 사고가 생겼는데 왜 독과점 해체를 논할까? 정부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카카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너무 많은 영역에 피해를 입혔다‘는 데 있지 않다. 10월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경쟁촉진 방안 추진‘이라는 보도자료를냈다. 카카오 사태의 원인을 "시장 내 경쟁 압력이 없는 독점 플랫폼이 혁신 노력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것에 기인"
한다고 적었다. 공정위가 보기에, 데이터이중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은 것은 관련법안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요를느끼지 못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혁신노력‘을 한다. 서비스 안정성 역시 혁신에속한다. 이렇게 보면 이번 사고는 12년간의 독과점에 취해 서비스 안정성마저 무너진 결과다. - P31

지난 9월26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는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시굴에 앞서 김훈 작가가 추도사를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안해‘
를 거듭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화해가 가능하다. (오늘 유해 발굴로) 많은 시신들이 확인돼 그 힘에 의해 화해의단초가 잡히기를 기원한다." - P32

이번 예방법 제19조 위헌제청은 중요한 기회다.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보는 과정은 이 법을 통해 축적된 낙인의역사를 되짚고, 낙인찍힌 사람의 명예를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질병 자체와질병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줄여야예방과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을 부술 수있다. 감염 이후의 삶 역시 가치 있는 삶이라는 점을,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누릴자격이 모두에게 있음을 공적으로 확인할 때, 낙인은 마침내 힘을 잃는다.  - P37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마치 한국이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 것처럼들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이 크나큰 발언권을 갖게 될 것이다. 1960년대후반 당시 주한 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와 그에 따른 지휘 및 통제 문제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주한 미군이 보유하던 전술핵은 1991년 가을 조지 H. W. 대통령의결정에 따라 모두 철수됐다. 또 그해 12월31일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만일 전술핵이 다시 도입된다면 북한의 강력한 반응을 촉발할 것이다. 북한이 선제공격으로 맞받아칠 수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에 ‘북한에 핵무기를 배치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 P40

김 위원장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한말은 맞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다시 끌어내려면 미국이 어느 정도 신축성을 보여야 한다. 협상에서 강자는 약자에게 그런 신축성을 보일 책임이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핵 무력을 법제화한것은 기존 사실, 즉 북한이 핵 국가라는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북한은 지금껏 핵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고, 그런 노력의 결과 지금 완전한 핵무기 국가라는 것을 공표했다. 나는 2010년 북한영변 핵단지를 직접 목격했고, 이후 국무부 소속으로 두 번 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은 실존한다. - P41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현 단계에서북한의 핵 위협을 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방법은 미국이 현실을 직시하고 북한의핵 프로그램을 제한해 한반도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한 군축회담을 개최하도록노력하는 것이다. 미국도 어느 시점에선북한이 핵무기 국가라는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북핵 문제를 상시적으로 전담하는 특사를 둬서 군축 방안을 강구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및 일본 등과 긴밀히 협력해야한다. - P42

영국에서 백린 성냥 생산이 완전히금지된 것은 1908년이었다. 매치 걸들의파업 이후로도 20년이 흐른 뒤였지.
하지만 애니 베트가 없었다면, 캐서린부스 등 구세군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다윗 같은 노동자와 그들을 응원한시민들의 박수가 없었다면 백린이라는골리앗은 더욱 오랫동안 영국인들의곁에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턱뼈를분쇄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27년 차 방송노동자이고, 너 역시 앞으로 노동자가 될거야.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을줄이고 나아가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을해야 할까 함께 고민해보자꾸나.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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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The Economist 2022年 10月 28日號
日販IP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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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st 지의 10.29 참사 관련 기사 내용을 옮겨본다.

기사는 지난 10.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도하면서, 왜 아시아에서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일어나는가, 지난 4.16 참사를 통해 많은 희생자를 낸 한국에서 또다시 참사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제기되는 의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익명의 관계자 전언만 옮기고, 오탈자까지 복사해서 붙이며, 자극적인 사진과 기사를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외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부와 한국 언론은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의 틀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높아진 생존 능력으로 수준 미달의 저널리즘을 보여주는 한국 언론 대신 외국 언론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제대로 인지하기 바란다... 아래는 기사 번역문이다. 전문 번역가가 아닌 관계로 일부 오역이 있을 수 있는 점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바라며, 부족한 부분은 첨부한 원문으로 대신하시길...

[출처] https://www.economist.com/asia/2022/11/03/when-a-disaster-shakes-a-country-political-leaders-face-peril

When a disaster shakes a country, political leaders face peril
The tragedies in Itaewon, Malang and Morbi will test governments

재난이 나라를 뒤흔들 때, 정치 지도자들은 위험에 직면한다.
이태원, 말랑, 모르비의 비극은 정부를 시험할 것이다.

Two days after the tragedy, the streets of Itaewon were silent, save only for the whirring clicks of news cameras. In their frame was the alleyway in which a crush of bodies left more than 150 people dead. At the subway-station entrance white chrysanthemums had been left in memory of the victims.

참사 이틀 후, 이태원의 거리는 뉴스 카메라의 윙윙거리는 클릭 소리 외에는 조용했다. 프레임 안에는 1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골목이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하얀 국화들이 놓여 있었다.

South Korea remains in shock over the events of October 29th, when some 130,000 people flocked to a nightlife district of Seoul, the capital. Many more came than the authorities expected. As the night progressed and the numbers swelled, those crammed into steep, narrow streets were trapped. A weight of humanity caused some in the crowd to fall, triggering a domino effect. Others, unaware of what was happening, continued to pack in. No stewards were around to prevent the tragedy.

한국은 수도 서울의 유흥가에 13만여 명이 모여든 10월 29일의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상태다. 당국의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사람들의 숫자는 불어났고, 가파르고 좁은 거리에 들어찬 사람들은 갇혔다. 사람들의 무게로 일부 군중이 쓰러지면서 도미노 현상이 촉발되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지 못한 다른 이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비극을 막을 관리자는 주변에 없었다.

Few countries have not suffered similar - avoidable - tragedies. Yet Asia appears to have more than its fair share. One explanation is self-evident: the region has more than its fair share of the world‘s people, so human disasters are more frequent. The day after the Itaewon calamity, a river bridge in Morbi in Gujarat, the home state of Indi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collapsed, killing at least 135, most of them women, children and the elderly. In early October a human crush at a stadium in Malang in Indonesia led to 131 deaths.

비슷한 - 피할 수 없는 - 비극을 겪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아시아는 공정한 몫 이상을 가지고 있는 둣하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시아는 세계 사람들의 공정한 몫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명 참사가 더 빈번하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모르비에 있는 강 다리가 붕괴되어 적어도 135명이 사망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었다. 10월 초 인도네시아 말랑의 한 경기장에서는 사람들의 충돌로 131명이 사망했다.

In Morbi the colonial bridge had just been reopened with a view to attracting tourist crowds. In Malang police precipitated panic when they fired tear gas at fans invading the pitch - a response long banned by football‘s global governing body. So another part of the explanation for so many Asian disasters flows from the pace of the region‘s march to modernity. Poor infrastructure, safety protocols or policing practices fail to keep up with fast-growing economies and populations which are both more mobile and ready for more varied experiences.

(인도네시아의) 모르비에서는 식민지시대의 다리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근 재개장했다. 말랑에서 경찰은 경기장에 침범하는 팬들에게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공황상태를 촉발시켰다 - 이러한 대응은 오랜 기간 국제축구협회에서 금지되어왔다
. 많은 아시아 재난에 대한 또다른 설명은 이들 지역의 근대화 속도다. 열악한 인프라, 안전 규칙 또는 치안 관행은 보다 유동적이고 다양한 경험이 준비된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인구를 따라잡는데 실패했다.

It is in that gap that political peril lies. Nowhere was this clearer than with South Korea‘s last big catastrophe. In 2014 a ferry, the Sewol, capsized on its way to the holiday island of Jeju. Some 300 people died, most of them schoolchildren. The vessel was overloaded. Corrupt regulators had turned a blind eye to unseaworthy modifications. The crew abandoned ship before the passengers. The then president, Park Geun-hye, failed to appear in public for hours. It turned out she even urged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to track critics of the official response. Public outrage led to protests and opened the door to ever greater anger against her. She never recovered politically.

바로 그 사이에 정치적 위험이 자리한다. 한국의 마지막 큰 참사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2014년 휴양지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됐다. 약 300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초등학생이었다. 그 배는 과적되었다. 부패한 규제 기관들은 항해에 적합하지 않은 수정안을 외면했다. 선원들은 승객들에 앞서 배를 버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몇 시간 동안 대중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국가정보원에 공식 대응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추적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중의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고 그녀를 반대하는 더 큰 분노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녀는 정치적으로 회복할 수 없었다.

Few leaders are as detached from their electorate as was Ms Park. Others responding to a calamity acknowledge its scale but seek to find fault elsewhere. Mr Modi visited a local hospital in Morbi and chaired a meeting there to review the disaster. At the same time, the state government, also run by his party, was quick to shift the blame onto the town government and private contractors. Gujaratis will have the chance to express their views in an election next month.

박대통령만큼 유권자들과 유리된 지도자는 거의 없다. 재난에 대처하는 다른 지도자들은 재난의 규모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지점에서 결점을 찾으려 한다. 모디 총리는 모르비 지방 병원을 방문했고 재난 검토 회의를 주재했다. 이와 함께, 집권당이 주도하는 주 정부는 빠르게 시 정부와 민간 건설업자들에게 참사 책임을 전가했다. 구자라티 주민들은 (이러한 처리에 대해) 다음 달 자신들의 견해를 투표로 보여줄 것이다.

Pressure for accountability mounts in ways that can pose risks for leaders. Many questions surround the Malang disaster in Indonesia: what were the police thinking by using tear-gas? Why were only four paramedics on duty? The Indonesian president, Joko Widodo, has forged close ties with the national police, who have helped him politically. At first he seemed to favour an internal police inquiry. That led many Indonesians to think that, absent such ties, he would have acted differently to ensure accountability, says Aaron Connelly of the London-based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The president did then change course, approving a more independent inquiry. But it was not enough to prevent a sharp slide in his ratings.

책임에 대한 압력은 지도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정도로 가중된다. 인도네시아의 말랑 참사를 둘러싸고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한 의도는 무엇인가? 단지 4명의 구급대원만 근무중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돕고있는 국가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처음에 그는 경찰 내부 조사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애런 코넬리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 후 대통령은 보다 독립적인 조사를 승인하면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는 그의 지지률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막기에 충분치 못했다.

Back in Seoul, and reflecting the national mood, the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yeol, said that ˝my heart is heavy and I struggle to cope with my grief.˝ He has promised a memorial to Itaewon‘s victims, as well as an inquiry. Yet more questions are raised about the tragedy than are yet being answered. Above all, how could a police force that dispatches dozens of officers to even the smallest protests be so unprepared?

다시 서울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 정서를 반영하여 ˝마음이 무겁고 슬픔에 대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 희생자들을 위한 조사 뿐만 아니라 추모를 약속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해 아직 대답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소규모의 시위에도 수십 명의 인원을 파견하는 경찰력이 그처럼 준비가 안 될 수 있을까?

As for Mr Yoon himself, he has needlessly squandered political capital and goodwill during the few months he has been in office. That makes his job harder now. Still, a leader who applies balm to a country‘s wounds, and who provides reassurance that lessons will be learned, can unite a country. How Mr Yoon acts now will shape the rest of his presidency.

윤 대통령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재임한 몇 달의 허니문 기간 동안 불필요하게 정치적 자산과 그에 대한 호의를 낭비했다. 이같은 사실이 지금 그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리더가 국가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교훈을 얻으리라는 확신을 준다면, 국론을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행보가 그의 남은 임기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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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6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현상유지만 해주
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뭘 더 하려고 하다가, 김O태
사태 꼴이 나는 건 더 이상
못봐주겠네요.

겨울호랑이 2022-11-06 21:15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에 매우 동감합니다. 문제는 가야할 방향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니 참 답답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더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의사소통을 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문화 생활을 하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데 굳이 코딩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그저 개발자들이 이미 목적에 맞게 코딩한 결과물인 프로그램이나 애플리케이션을 다룰 수 있으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감각하는 생물학적 세계는 바로 모니터나 스마트폰 액정에 띄워진 화면처럼 생물들이 지닌 갖가지 프로그램이 실행된 출력값의 세계, 즉 ‘표현형phenotype’의 세계다. 표현형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생명체의 모든 것이다. 표현형의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는 자신이 구동하는 프로그램의 코드를 이해하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유전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전자형을 결정하는 유전체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유전체에 들어 있는 생명 프로그램의 눈부신 활약, 즉 ‘표현형’의 세계에 떠오른 생명 현상에 대한 온전하고 통합적인 설명을 해내는 것이다.

‘새로운 종은 어떻게 출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윈의 대답을 요약하면 "자연에는 변이가 존재하고, 그 변이들 사이에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이 일어나며,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자연선택되고, 그러한 변이들이 누적된 결과 종의 점진적인 진화가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이 대답에서 잘 드러나듯, 변이는 멘델의 유전학뿐만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이다.

양성자는 양전하를 띠므로 전기적으로 서로 밀어낸다. 이들을 핵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전기력을 이겨낼 추가적인 힘이 필요한데, 이 힘이 핵력이다.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라 전기력을 느끼지 못하므로, 핵력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별이다. 별이 내는 빛, 별이 만들어낸 무거운 원자들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전부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이거다. 별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내는가? 태양이라는 별의 부피는 지구의 120만 배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태양의 에너지원은 원자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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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의문에 빠지게 하는가? 그것은 유한한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관계, 즉 죽음으로 향해 있고 죽음을 위한 존재임을 의식하는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죽어가면서 부재에 이르는 타인 앞에서의 나의 현전 presence이다. 죽어가면서 결정적으로 멀어져 가는 타인 가까이에 자신을 묶어두는 것, 타인의 죽음을 나와 관계하는 유일한 죽음으로 떠맡는 것, 그에 따라 나는 스스로를 내 자신 바깥에 놓는다. 거기에 공동체의 불가능성 가운데 나를 어떤 공통체로 열리게 만드는 유일한 분리가 있다.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3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 ~ 2003)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La Communaute inavouable>에서는 타인(他人)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나 자신의 죽음이 아닌 다른 이의 죽음이 왜 나에게 의미를 갖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하기 위해 블랑쇼는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 ~ 1962)가 말한 '모든 존재의 기초'로서 결핍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 또한 결핍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영원한 배고픔과 갈증의 형벌을 받은 탄탈로스(Tantalus)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결핍 충족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 단지 자기 자신을 미래를 향해 기투(project)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가져올 뿐. 궁극적으로 이러한 가능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한성을 넘어선 그 무엇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실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블랑쇼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는 죽음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어가는 타인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이어나가는 무언(無言)의 대화. 나는 그 대화를 다만 그가 죽어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를 근본적으로 상실로 이끌며 나눌 수 없는 그의 소유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으로 인한 고독을 나누기 위해, 나는 그 대화를 이어간다.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3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공감과 나눔. 그것은 내 존재의 근원적 문제로서의 결핍을 충족할 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공통의 운명을 가진 필멸(必滅)의 존재들이 갖는 관계속에서 공동체는 규정되어간다. 죽음을 싫어하는 공통된 감정 속에서 지금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첫 번째 자유다. 


 각자의 것일 수 없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사건(탄생, 죽음)이 만일 각 사람에게서 공통된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란 있을 수 없다. 그 사실이 공동체의 근거를 이룬다. 공동체는 너나들이로 말하기가 금지되어 있는 비대칭성 asymetrie의 관계만을 '너와 나에게서' 완강히 보존하려 한다... 공동체는 죽어간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홀로 죽지 않는다. 만일 죽어가는 자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진정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하찮기는 하지만 역할을 나누기 위해서, 죽어가면서 현재 죽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 부딪힌 자를 내리막길에서 붙들기 위해서이다. 가장 부드러운 금지의 명령으로. 지금 maintenant 죽으면 안 돼. 죽기 위한 지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 _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p24


 156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10.29 참사.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공존하는 것을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출입금지 구역도 아닌 곳에 자유롭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방문한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다름아닌 평소 '자유민주주의'를 그토록 외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평소 그렇게 '자유'를 외치던 자들이 정작 '책임'에 대해서는 왜그렇게 침묵하는지. '자유-책임'은 동전의 양면임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참사의 기억은 일부에서 왜곡되고, 논쟁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세기를 거치며 새로이 덧붙여진 자산으로 점점 더 풍부해진 이 공생관계는 대혁명과 더불어 파경을 맞았다. 모든 것이 요동을 쳤다. 이제껏 사회적 결속의 원칙이요 민족적 일체성의 기초였던 교회의 맏딸이라는 준거관념은 두 충성의 대상 - 신도인가 시민인가 - 가운데서 선택을 강요받은 프랑스인들 사이에 깊은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한 파열은 몇 달 사이에 이루어졌다(p197)... 교회의 맏딸 반대편에 또 하나의 프랑스가 들어서 있었으니, 이 프랑스는 대혁명을 자신의 세례 시점으로 잡고, 랭스의 종교에 혁명의 서사시를 대립시켰다. 그 사건의 파장은 막대했다. 그것은 거의 2백 년 가까이 민족의식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몰고 왔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198


 기억의 왜곡 문제는 오늘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억의 장소 5 Les Lieux de Memoire>는 1572년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자들에 의한 대대적인 위그노(개신교 신도) 학살이 일어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elemy)이 분열된 프랑스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었는가를 알려준다. 


 대개 공식적 프랑스에 속하며, 따라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나라에서 권력의 보유가 허용한 모든 수단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던 절반의 프랑스는 프랑스의 종교적 과거에 관한 모든 전거를 공동의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데 힘을 쏟았다... 반대기억을 풀어놓는 반대역사(contre-historie)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지지자들은 종교에 관한 편집(偏執)에서 비롯된 박해 이외의 어떠한 사실도 좀처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종교사는 생바르텔르미 학살과 미구엘 세르베토나 라바르 기사의 처형 사건, 또는 낭트 칙령의 철회 등 확실히 종교적 소수파나 무신자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들만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로 축소되었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199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하나의 분기점에서 자신의 입장에 따라 역사의 기억을 하나의 방향으로만 바라보기 위해 이를 소거(消去)하려는 움직임과 이에 대항해 하나만을 강조하고 다른 모든 것을 편집하는 반대의 흐름. 이러한 두 갈등은 오랜 분열 끝에 공동체에 닥친 공통의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 의미가 퇴색한 뒤 이루어진 화해가 갖는 한계 또한 <기억의 장소 5>에서는 분명하게 지적된다. 10.29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타인의 죽음이 현재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기본으로 이 참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한 세기여에 걸쳐 점점 더 사이가 벌어진 끝에, 두 개의 프랑스는 1914년에 터진 전쟁과 함께 민족 공동체가 겪어야만 했던 시련을 계기로 서로 화해하기 시작했다. 두 갈래 기억들 사이의 화해는 '신성한 단결'(Union sacre)의 필연적 결과들 가운데 하나였다(p204)... 오늘날 이러한 관념에 의거하는 하나의 프랑스와 그것을 거부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프랑스 사이의 대립은 확실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양쪽 모두의 기억상실일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맏딸이 지나온 종교적 과거가 잊혀져감에 따른 민족문화와 민족적 기억의 손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염려해야 할 이들이 바로 세속성 원칙에 가장 투철한 구성원들, 즉 근대 프랑스의 기초자들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현 상황의 커다란 역설이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5> , p209


 다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10.29 참사에 대해 애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러한 참사의 원인과 재발방지에 대한 노력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방지하고자 만들어 낸 합의체로서 '국가권력'이라는 리바이어던을 인정한 것은 이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함이 아닐까. 스스로의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면서까지 리바이어던이라는 용(龍)의 머리에 올라탔으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그의 의무가 아닐까. 되려 역린을 건드려서 용의 분노를 샀더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반의지를 모두 담아낼 그릇이 못된다면, 스스로 그릇을 깨뜨리고 내려오는 것만이 모두를 위한 마지막 충정이라 생각된다...


 공통의 권력(common power)은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의 권리침해를 방지하고, 또한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열매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쾌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one Man) 혹은 '하나의 합의체'(one Assembly)에 양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 모두의 인격을 지니는 한 사람 혹은 합의체를 임명하여, 그가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든, 혹은 [백성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하든, 각자가 그 모든 행위의 본인이 되고, 또한 본인임을 인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들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위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달성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Commomwealth)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바로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코먼웰스의 정의(定義)는 다음과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하여 세운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들 각자가 그 인격이 한 행위의 본인이 됨으러써, 그들의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사람의 힘과 수단을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_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1> , p232


 용(龍)이라는 동물(虫)은 유순해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어, 설득하려는 자는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_ 한비자, <한비자> , p118/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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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09 04:52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G20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결론은 같았다. 유럽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유럽은 국채시장과 은행 자본재구성과 관련된 기본적인 불안정성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고 2010년과 마찬가지로 다시 유럽 문제에 IMF를 끌어들였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채무 재조정을 시작했다. 꼭 필요한 일이긴 했으나 그리스 채권자들에 대한 헤어컷 적용은 채권시장에 대한 압박의 수위만 높여주었을 따름이다.

재무부 장관들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담에 대한 IMF 보고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세계 경제에 대한 "중대한 위험"은 세계적으로 심화된 "절약의 역설"이라는 것이었다. 전 세계의 가계와 기업과 정부가 한꺼번에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고 나섰고 그 때문에 경기침체의 위험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보고서의 내용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진다. "이러한 위험은 취약한 금융시스템, 높은 공공 부문 적자와 채무, 그리고 이미 낮아진 금리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특히 유로존 지역에서는 낙관주의나 비관주의가 낳은 결과물들이 계속해서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돌이켜보면 마리오 드라기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을 때가 유로존 위기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취약한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 대부분은 시장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붕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깊은 호소력을 지닌 설명이었다

연준은 우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기관 채권을 매달 400억 달러어치씩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연준이 "노동시장 전망에 실질적인 개선"을 확인할 때까지 매입을 계속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거기에 덧붙여 FOMC는 실업률이 6.5퍼센트 이하로 내려가고 연준의 물가상승률 전망이 2.5퍼센트 미만이 될 때까지 연방기금금리를 0퍼센트에 가깝게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12월 12일 FOMC는 다시 매달 채권 매입 규모를 400억 달러에서 850억 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제3차 양적완화 조치는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무한 양적완화"라는 유명한 별칭이 붙기도 했다.

유로존 위기는 유럽 정부들이 막대한 규모의 정치적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멈출 수 있었다. 즉, 그리스 채무 재조정, 재정 협약, 유럽 은행연합, ESM,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의 OMT 같은 새로운 조치들이 큰 역할을 했다. 유로존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한 사람들은 유럽 정부들이 할 수 있는 이런 투자 규모를 잘못 판단한 셈이다. 그리고 마리오 드라기가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바로 그런 것들이다.

미국은 새로운 형태의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다시 한번 주장한다. 그리고 유럽은 1947년 이후 미국의 지도 아래 시작했던 유럽의 미국화를 다시 한번 추진한다.

국제 경제 정책에 관한 한, 2012년 11월의 오바마의 승리와 벤 버냉키의 제3차 양적완화, 마리오 드라기의 연설이 하나로 합쳐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종결지었다고 볼 수 있다. 중도 진보진영의 위기관리 능력이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21세기와 다양성, 개방성, 전문가 위주의 실용주의가 이제 함께 나아갔다.

유럽에서는 결국 유로존이 살아남았고 마리오 드라기의 선택이 옳았다. 위기를 바탕으로 유럽통합의 과정은 더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역시 거기에는 엄청난 경제적, 정치적 대가가 필요했다.

독일 재무부 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아예 총선을 치르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늘 그렇듯 직설적으로 제안했다.8 그리스의 민주주의 절차를 잠시 연기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뭐라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전에 핵심 조치들을 취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제안은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어떤 징조가 되었던 것이 래리 서머스가 2013년 11월 IMF에서 했던 연설이다.8 연설의 주제는 경기회복과 엄청나게 실망스러운 회복 속도였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아마도 유럽을 불황에서 구해내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며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유럽의 경제사정은 오히려 더 나빠졌으며 미국은 역사상 가장 느린 회복세를 보였다.

돌이켜보면 2008년 이전에는 통화정책이 "지나치게 완화적"이라는 데 사람들이 다 동의했다. "엄청난 규모의 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가계를 꾸려나가면서 경험했던 것처럼 돈이 실제보다 더 많다고 믿었다. 너무 많은 돈을 빌리고 또 너무 쉽게 썼으며 그만큼 돈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다면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 이어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부동산 시장이 위험할 정도로 과열되었지만 2008년 무렵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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