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르키아 anarchia(지배자 없음)"라는 말은 5세기 중반에 쓰임새가 확인되나 "아나키즘"이라는 말처럼 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p16)... 무질서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노모스 Nomos가 지켜지지 않는 상태를 "불법 상태"와 "무법 상태"로 생각했다. 이 둘은 단지 단지 폴리스의 질서라는 표본이 있었으며, 또한 개념적으로 이들이 단지 뚜렷하거나 그렇지 않게 구별될 수 있었던 그러한 시대에서부터 나왔다. 이러한 나쁜 상태는 모든 가능한 비참한 상태, 특히 전제정치의 온상으로 간주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21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5번째 주제는 아나키, 아나키즘, 아나키스트(Anarchie, Anarchismus, Anarchist)다. 호메로스(homeros, BC 8C ? ~ ?)로까지 기원을 찾아갈 수 있는 '아나키즘'은 '법률(Nomos)'의 상대어로서 역사속에 자리한다. 다만, 이 단어가 담는 두 가지 의미는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아나키를 '불법 不法'인 상태로 규정할 때, 이것은 다른 형태의 악(惡)이 된다. 폭정(暴政)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아나키는 민주정이 낳은 최악의 결과로 인식되어 왔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군주정, 귀족정, 국가가 필요하다는 논지를 낳았다.


 마키아벨리 Machiavellis는 <로마사 논고 Discorsi>에서 정치체제 이론의 틀 내에서 '아나키'를 최초로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군주제는 쉽게 전제정이 되며 귀족정은 과두제가, 민주정은 쉽게 아나키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에게서 민주정이 아나키를 만든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발견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27


 18세기에는 아나키 개념이 폭정과 새롭게 연결되었다. '폭정 Despotie'이 '폭정적 despotic' 및 '포악한 despotical'과 함께 이미 홉스를 통해서 당시 정치적 논의에 도입되었으며, 아나키 개념의 수용은 나중에야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관에서 순환 모형의 새로운 변형이 제시되었다. 아나키는 폭정/압제정을 만들고, 폭정/압제정은 아나키를 생성한다. 이와 함께 아나키와 폭정은 서로 비교되고 평가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34 


  아나키가 갖는 두 번째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강조된 것은 18세기 이후 시점이다. 이로부터 '아나키'는 '폭정'과 '불법'이 아닌 '무법 無法'이라는 개념으로 구체적으로 '혁명'과 '자유'와 결합되면서, 아나키에 보다 긍정적 이미지가 부여되었다. 


  빌레펠트 Bielefeld는 다음과 같이 아나키를 정의한 문구를 제시한다. "우리는 '국가'가 어떤 '지도자'도 갖지 못하며 각자가 '법'을 무시하면서 자신만의 환상을 따라 살고 따라서 무질서와 혼란이 판치는 상태를 아나키라 부른다. 우리는 이로부터 이것이 정부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악덕이며, 이러한 상태가 국가의 파멸보다도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임을 즉시 이해하게 된다. '폭정' 내지 '압제정'과의 결합과 분리를 통하여 '아나키'의 연관 영역이 확장됨과 아울러 독자적인 지배 형태 이론으로부터의 최종적인 분리를 통하여서 이들 두 개념은 역사적/사회적 차원으로 보다 강력하게 들어오게 된다... '폭정'과 '아나키'는 자유, 질서, 법과 대립되는 특징적 상태였다. 비록 개별적으로 차별화가 시도되더라도 여전히 이 두 개념은 있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표현이었다. '아나키'와 '폭정'의 연관은 나중에서야 해소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37


 다른 개념어와 마찬가지로, 아나키 역시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 1789) 이후 이전의 부정적 의미를 쇄신한다. 혁명이 가져온 무질서, 혼돈의 상태는 단순한 카오스(chaos)가 아닌 코스모스(cosmos)를 내재한 가능태(可能態)이며, (거칠게 표현해서) 음(陰)에서 양(陽)이 나오듯, 아나키에서 자유로 나간다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새롭게 부여된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19세기 지식인들에게 혁명은 새로운 세계의 태극(太極)상태로 인식되었을까도 생각해 본다.


 19세기 초반에 사회적 차별화와 아나키 개념의 역동화라는 특징 속에서 의미의 확산은 의미의 분극화와 변화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사상적 특징과 표현 방식이 바뀌었다... 민주정은 아나키를 낳는다는 표현은 새로운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다. 아나키는 무엇보다도 "무질서 desordre", "혁명 revolution", "봉기 insurrrection"라는 맥락에서 존재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54


 헤스는 한편으로는 확실히 프루동을 넘어서서 모든 권위와 계급을 지양하는 것으로서 아나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 긍정적 위치로서 아나키를 찾아냈다.(p98)... 헤스는 프랑스혁명으로 절대적-역사적 새로운 시작이 제시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에 대조적으로 "새로운 역사"가 등장하게 된다. "개인은 다시금 자신과 함께 시작하고, 그 역사는 기원 1년에 시작하고,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정신의 도약 위에서 추상적 자유의 아나키로부터 노예제를 거쳐서 최후의 순간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마침내는 실제적 자유에 도달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99


 개념사 사전은 우리에게 '아나키'안에 담겨진 두 의미 '불법'과 '무법'의 의미 확장 역사를 보여준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와 질서 이전의 태고의 상태. 어느 쪽을 더 크게 보는가에 따라 이 단어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다가올 수 있는 단어임을 실감한다. 개념사 사전과 관련한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나키의 두 번째 의미로부터 떠오르는 책이 있어 옮겨본다.


 최소 국가는 우리를 불가침 不可侵의 개인들로 취급한다. 즉 우리는 이 국가 안에서 도구나 수단이나 자원으로 타인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도 이용될 수 없다. 최소 국가는 우리를 존엄성을 가진 개인적 권리들의 소유자인 인격으로 취급한다. 우리의 권리들을 존중함으로써 우리를 존중하는 최소 국가는, 우리에게 허락하여, 개인적으로나 또는 우리가 선택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우리의 목표와 스스로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하게 허락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실현 과정에서 우리와 동일한 존엄성을 지닌 다른 개인들의 자발적인 협동의 도움을 받는다._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p408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 ~ 2002)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 Anarchy, STate, and Utopia>가 그것인데 이 책으로부터 우리는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소환되면, 자연스럽게 소환되어야 할 책이 존 롤스(John Rawls, 1921 ~ 2002)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다. 마침 요즘 정치인 누군가에 의해 '공정'이 이슈가 되고 있느니만큼, 시의적절한 내용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정대로라면. 아나키와 관련하여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An Anarchist History Of Upland Southeast Asia>을 함께 정리한다면, 아나키즘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ps. 책 한 권을 읽으면 다음에 읽어야 할 책 2권 이상이 나오니, 다단계도 아니고 독서의 끝이 없어 보인다. 잘린 머리에서 머리 2개가 나온다는 괴물 휘드라와 싸운 헤라클레스의 심정이 이러할까. 헤라클레스가 휘드라의 머리를 불로 지져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듯, 밝은 지혜의 힘으로 읽어야 할 책을 줄이는 것이 이 승산없는 싸움을 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자면, 지혜를 구해야 되는데, 얘는 또 어떻게 찾아야 할런지... 지혜를 찾을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두 번째 고역으로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한테 레르나의 휘드라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헤라클레스는 불타는 장작을 던져 휘드라가 밖으로 나오게 한 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휘드라의 머리들을 쳐서 떨어뜨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머리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올라오스는 가까이 있는 숲 자락에 불을 놓아 불타는 장작으로 휘드라 머리들의 뿌리들을 태움으로써 다시 자라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헤라클레스는 다시 자라나는 머리들을 제압한 뒤 불사의 머리를 베어 그것을 레르나를 지나 엘라이우스(Elaious)로 가는 길가에 묻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다._아폴로도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 Bibliotheke by Apollodoros>, <헤라클레스와 그의 자손들> 5장 2,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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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6-20 1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휘드라와 같은 책 다단계… 잘 맞는 비유 같네요. 그래도 겨울호랑이님은 열심히 머리를 베어내고 계시네요^^

겨울호랑이 2021-06-20 22:1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님. 휘드라의 머리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가 나오는 듯하지만, 그저 놓지 않고 가다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
 

갈등의 대체는 갈등의 범위 또한 변화시킨다. 새로운  방향의  갈등이 부상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싸움에 가담하는 반면, 이전의 갈등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의 대체 혹은 치환, 즉 새로운 갈등을 불러들여 기존 갈등을 대체하는 것은 정치 전략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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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蜀)은 용을 얻었고, 오(吳)는 호랑이를 얻었으며, 위(魏)는 개를 얻었다." 형제간인 제갈량(諸葛亮, 181 ~ 234), 제갈근(諸葛瑾, 174 ~ 241) 그리고 사촌인 제갈탄(諸葛誕, ? ~ 258)이 각각 서로 다른 삼국(三國)에 종사한 것을 두고 말한 사람들의 평이다.


 <자치통감 資治通鑑> 70권에는 유명한 제갈량의 남만(南蠻)정벌과 출사표(出師表)가 나온다. 실력으로는 천하의 8할을 차지한 위나라에서도 출세할 수 있었건만, 유비를 따라 세상으로 나와 결국은 오장원(五丈原)의 별이 된 제갈량.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속에서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끝까지 유비(漢 烈祖 昭烈皇帝 劉備, 161 ~ 223)에게 충성을 한 모습이 후세의 귀감이 되었다면, 오늘의 기준에서도 그 모습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신은 본래 포의(布衣)로 몸소 남양(南陽, 하남성 南陽市)에서 밭을 갈며 진실로 난세 속에서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것이었기에, 제후들에게 저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신을 낮고 천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진실로 스스로를 굽히시고 저의 초막으로 세 번이나 돌아보아 주시어 신에게 당세에 해야 할 일을 자문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드디어 먼저 돌아가신 황제에게 달려가겠다고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뒤에 상황이 기울어지고 넘어지는 때를 당하고, 패배한 군사가 되었을 때에 책임을 맡았으며, 위험하고 어려운 가운데 명령을 받들어온 지 21년이나 되었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신이 삼가면서도 신중하다는 것을 잘 아셔서 붕어하실 때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_사마광, <자치통감 70>. p32/60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대기업에서 촉망받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탄탄대로를 갈 인재를 중소기업 사장이 데려다가 열정페이를 지급하면서 죽도록 혹사시킨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제갈량의 모습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한결같음'이 아닐런지... 정사 <삼국지 三國志>에 실린 실제 역사가 대의(大義)의 역사는 아니었을지라도, 역사에 남겨진 어쩌면 바보같은 우직함이 우리가 <출사표>를 읽었을 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제 밝으신 공께서 정치를 하시면서 마침내 몸소 스스로 부서(簿書)를 대조하시며 종일토록 땀을 흘리게 되시니 역시 어찌 수고롭지 않겠습니까?"사마광, <자치통감 70>. p15/60


 제갈량은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뛰어난 인재로서 관중, 소하와 비교할 만하다. 그러나 해마다 군대를 움직이고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마 임기응변의 지략이 그의 장점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하다._진수, <삼국지 : 촉서> <제갈량전>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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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본래 포의(布衣)로 몸소 남양(南陽, 하남성 南陽市)에서 밭을 갈며 진실로 난세 속에서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것이었기에, 제후들에게 저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신을 낮고 천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진실로 스스로를 굽히시고 저의 초막으로 세 번이나 돌아보아 주시어 신에게 당세에 해야 할 일을 자문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드디어 먼저 돌아가신 황제에게 달려가겠다고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뒤에 상황이 기울어지고 넘어지는 때를 당하고, 패배한 군사가 되었을 때에 책임을 맡았으며, 위험하고 어려운 가운데 명령을 받들어온 지 21년이나 되었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신이 삼가면서도 신중하다는 것을 잘 아셔서 붕어하실 때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32/60) - P32

한의 주군이 태자에게 조칙을 내려서 말하였다. "사람이 50세가 되어 죽는다 하여도 요절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나의 나이 이미 60여 세이니 다른 무슨 한스러움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의 형제들이 마음 쓰일 뿐이다. 부지런히 하고 또 부지런히 하여라. 악한 일은 작아도 하지 말아야 하며, 선한 일은 작아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현명함과 덕스러움만이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 네 아비의 덕이 얕으니 본받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너는 승상과 더불어 일을 해나가되 그를 아버지처럼 섬겨라."(14/60) - P14

이제 밝으신 공께서 정치를 하시면서 마침내 몸소 스스로 부서(簿書)를 대조하시며 종일토록 땀을 흘리게 되시니 역시 어찌 수고롭지 않겠습니까?"(15/60)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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