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전 세계 헌법은 유사하다.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공히 추구하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을 동일하게 보장한다. 그러나 같은 조문이어도 각국마다 보장하는 수준은 모두 다르다. 국민들의 인식이 다르고 정치·문화·사회 관행이 다 다르기 때문인데, 왜 차이가 날까? 역사 때문이다. 그 사회가 어떤 역사적인 흐름과 맥락을 가졌는지에 따라서사람들이 정치에 갖는 견해와 관행이 다른 거다. 다시 말해 동일한 헌법 조항이라하더라도 그게 실현되는 방식은 다 차이가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배경이 그 사회의 역사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 헌재가이번에 역사 속에서 헌법이 구체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인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P12

그나마 이들 사이에서 막연하게 흘러나오는 구호가 있다. 바로 ‘윤 어게인‘이다. ‘윤 어게인‘은 4월5일 수감된 김용현이 서신을 통해 주장한 단어다. 그런데 탄핵소추 인용 이후 극우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윤어게인‘은 조금 다른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윤석열의 재출마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윤석열의 정치적인 모든 것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 P15

유권자들은 힘의 균형을 주문하는 동시에, 이념성향별로 상대적 차이도 일부드러냈다. 눈에 띄는 것은 진보층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행정부·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높고, 보수층내에서는 국회 권한 확대에 반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 P24

 "광장에서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정치권에 전달하고, 정책과 제도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꼭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2008년 집회와 2016년 집회가 달랐듯이,
2016년 집회와 2024년 집회는 또 달랐다.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왔던 경험, 이토록 강렬한 연대를 경험한 이 기억은 어디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 P28

이 보고서는 원화 약세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반) 취약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12.3 쿠데타까지 발생했다. 비록 윤석열 파면으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저성장 고착화라는 문제가 남는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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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삼성전자의 HBM3E 퀄 승인 관련 기사를 읽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아온 '발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https://www.thelec.kr/news/articleView.html?idxno=34339

 삼성전자, "HBM3E 퀄 승인, 발열문제와 관계 없어"


 삼성전자의 HBM 승인 퀄 관련 기사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벌써 1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지나갈 만한데. 이번에도 언론들의 설레발 기사와 엔비디아의 침묵 그리고 삼성의 부인이 이어지겠지.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기사의 "발열"이라는 단어에 눈이 머무는 것은 삼성전자의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을 발열에서 찾은 본문의 내용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의 기술적 한계를 '발열'로부터 찾아 논지를 전개해간다.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에 대해 걱정을 끼쳐서 사과한다, 앞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 ... 사과로는 달라지지 않는 본질적 문제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삼성전자 기술력의 본원적인 한계였습니다. 고작 앱 하나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요? 네, 있습니다. 그 앱이 감추려고 했던 ‘발열’이라는 현상의 중대한 의미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는 사건은 늘 발열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7/254


 <삼성전자 시그널>에서 저자는 2021년 GOS 문제의 근원인 '발열'로부터 삼성전자의 기술 격차, 성능 격차를 발견하고 이를 파악한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가 앞선 주자들을 따라잡으며 2010년대 중반 반도체 메모리 사업의 중심에서 이제는 쇠락하기까지의 과정안에는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반도체 기업을 딛고 일어나 이제는 TSMC에게 무너져 가는 영광과 안타까움이 함께 담겨있다.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삼성전자가 진출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이 일어나는 시장으로, 이 시장은 경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시장이었다. 마치 갈라파고스와 같은 곳에서 치킨게임의 승자로 살아남은 승자 삼성전자가 폐쇄적인 기업풍토를 강화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D램은 기술 개발을 위해 먼저 투자하는 쪽이 성공합니다. 불황의 골이 무서워도 투자를 멈추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낙오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거대하게 투자해 가능한 거대한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수요가 따라오지 못할까, 경쟁자도 그런 공장을 지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순간 끝입니다. 조금 작은 공장은 결국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이 시장의 법칙은 공존이 아닙니다. 공존을 꿈꾸고 적당히 투자하고, 적당히 타협했다가는 곧바로 파산과 퇴출의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적자생존, 약자소멸입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73/254


 삼성전자의 전성기 '삼성공화국'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씌여진 <삼성을 생각한다>는 D램의 승자 삼성전자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했는가를 보여준다.그룹의 역량을 모아 반도체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해서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확보된 가격통제력을 바탕으로 쌓은 막대한 이익을 근간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한 삼성 그룹. 2010년대까지 한국사회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삼성 승리의) 선순환 구조는 2020년대 들어 깨지게 된다. 왜 그럴까?   

 

 현재의 재벌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재벌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납품단가를 정해 왔다. 중소기업을 갑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만 활용하는 셈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3


 이건희가 한때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해외 유명 대학에서 수학한 인재들을 영입하도록 수립하기 위한 팀을 만들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입 인재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삼성 문화가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외국 선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삼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_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p437


 본질적으로 삼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다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을 뿐이다. 변화된 시장은 단순히 엔비디아의 GPU가 인텔의 CPU를 대체했다는 것, 삼성 파운드리의 몰락과 TSMC의 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막대한 투자로 경쟁자를 압살하는 삼성의 전략은 10나노 이하의 첨단 선단 공정에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았다. 대신,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공생의 길을 찾고 학습 곡선을 통해 성장을 택한 TSMC의 부상은 ;패러다임의 변환' 자체가 아닐까. 어쩌면 오늘의 TSMC를 결정한 것은 모리스 창의 말처럼 삼성 파운드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사람의 실적은 대체로 경쟁자가 결정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위탁 생산 자체보다 TSMC의 이런 전략이 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고객을 위해 고객 대신 극단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투자해, 극단의 생산 유연성을 준비해줍니다. 고객에게 성장의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100% 살려줍니다. 게다가 거래를 하면 할수록 완성도는 더 높아지니, 관계는 장기 지속될 수밖에 없고요. 모리스 창은 화답하듯 "우린 고객을 위해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_ 서영민, <삼성전자 시그널>, p119/254


 Reverse Engineering. 삼성전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경쟁사 또는 협력사의 제품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서 성장하고 1위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위를 폐허로 만들고 그 위에 우뚝 선 제국이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현재 삼성의 모습이라면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상당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삼성은 4G LTE 칩 발주라는 미끼를 던져 TSMC가 이를 생산하기를 희망했다. 이를 이용해 TSMC 제조 공정기술의 허와 실을 탐색해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TSMC는 삼성을 직접적 고객으로 삼기를 꺼렸다. 공장 내부에 진입하여 기밀이 누설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_ 상업주간, <TSMC 반도체 제국>, p51/274


 삼성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고,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 선언을 통해 도약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꾸라는 결단으로 세계 정상에 선 삼성전자가 최근 마누라를 바꿔버린 SK하이닉스에게 순위를 빼앗긴 장면은, <맥베스>에서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온 맥더프를 떠올리게 헤서, 다소 웃픈 감이 있지만.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던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를 발판 삼아 폐쇄적인 문화를 극복하고 고객 중심의 개방적인 혁신 시스템 구축과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매진하여 다시 한번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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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4-18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성의 기업 마인드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엔비디아에서 왜 삼성은 고객에게
갑질을 하냐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다른 건 몰라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이제 삼성은 TSMC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한 때 세계 반도체산업을 주름잡
던 일본 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 같습니다.

기업 전체의 조직 문화를 뜯어 고
쳐야 하는데, 불가능해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5-04-18 22:22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나아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과거의 성공 공식이었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기업이 처한 환경, 최고경영자, 소비자, 사회 등 모든 것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해온 대기업의 체질과 DNA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공룡의 자리를 설치류가 대신한 것처럼 새로운 기업 리더십이 등장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yamoo 2025-04-18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재용이 있는한 삼성은 휴헷패커드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립니다. 재무이사를 내치던가 해야하는데 쉽지 않고 망하는 태크를 탈듯..^^ 주주들은 아니 일반인들은 다 아는데 이재용만 모르는듯..ㅎㅎ

겨울호랑이 2025-04-18 22:28   좋아요 0 | URL
yamoo님 말씀처럼 삼성은 재무통들이 다 망친다고 하더군요. 현장보다는 분기, 반기 단위의 이익과 연동된 PS,PI에만 열광하는 조직 문화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몫이라면, 이러한 관점에서 동양사학과 출신의 이재용은 좋은 학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거친 싸움을 하기에는 적합한 인물이 못되는 듯 합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경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 P16

우리 민주주의는 굳건하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다.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 많은 시민들이 침묵하지 않고 광장으로 모였고, 그게 헌법재판소의 힘과 결합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민주공화국은 위태롭다. 한 사람의 비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시스템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질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회복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 방어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앞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더많이 들으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낼 지혜를 찾아야 한다. - P27

자정 장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잘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정치적 평등을 구현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원래 복잡하다. 많은 사회문제에 종종 정답은 없다. 단순한 답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의 특징이다. 대통령은 틀릴 수 있다. 다수의 국민이 틀린 판단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알았을 때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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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명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29
자크 고드쇼 지음, 양희영 옮김 / 아카넷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반(反)프랑스 대혁명의 흐름 전반을 다룬 자크 고드쇼의 <반혁명>. 본문을 통해 저자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혁명 성격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혁명이라는 작용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반작용은, 유럽에 미친 프랑스 혁명의 영향만큼, 프랑스 혁명에 미친 유럽의 압력 또한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는 반혁명 활동에 끼친 이념의 영향은 매우 미약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연구가 끝나는 시기인 1804년 반혁명 활동은 거의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p549


 저자는 본문을 통해 혁명(革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미친 이데올로기의 제한적 영향과 함께 반혁명의 목표 달성이 역설적으로 반혁명의 좌절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피비린내나는 혁명의 현장에 지식인들은 없었다. 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그들의 이성과 주권에 대한 논의는 반혁명 운동의 명분을 제공했을 뿐, 정신적 기반이 되기엔 미약했다. 이 시기 반혁명을 대표하는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도 예외가 될 수 없어서, 이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매우 박하다.


 (에드먼드) 버크의 책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은 두 측면을 갖는다. 신랄하고 흔히 오류로 가득한 지극히 자의적인 선전문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이념서다. 선전문으로는 더는 가치가 없다. 버크는 사정에 어두웠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그러나 이념은 여전히 유효하고 한 세기 반 동안 혁명에 반대하는 모든 저작의 토대 역할을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은 백지 상태 위, 이성 위에 세워진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p96


 저자가 <반혁명>에서 대혁명 기간 동안 유럽 대륙에서의 왕당파, 성직자 계층, 귀족, 부르주아, 농민 등 수많은 주체들의 행동이 일관된 기준없이 각기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흐름을 보여준다. 왕당파는 망명 귀족을 중심으로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복구를 추구했고, 성직자들은 혁명 정부의 종교 정책에 반발했으며, 농민들은 징병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저항하는 등 서로 다른 움직임 속에서 앙시앵 레짐에 대한 문제 의식 대신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는 명분 이외의 다른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우리가 살펴본 반혁명 운동은 대부분 실제로 혁명기의 어떤 결정이나 활동에 대한 농민 대중의 자발적이고 반사적인 운동이었거나, 성공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큰 고려 없이 시작된 활동으로 보인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p549


  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형제애'로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었다면, 반혁명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군은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반혁명의 불길이 사그라진 것으로 보여지는 시점부터 진정한 반혁명의 성과는 나타나고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혁명이나 반혁명. 정치적 운동으로 혁명은 초기에 많은 호응을 얻는다. 불만족한 현실에 대한 지적과 새로운 비전 제시. 현실적 한계 속에서 혁명 세력은 지지받고 세력을 키워가지만, 반혁명세력은 적절한 답을 할 수 없다. 답을 할 수 있었다면, 혁명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이렇게 반혁명 세력은 사라지는 듯 보인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1804년까지 반혁명세력의 모든 실패 또한 이러한 공식에 충실히 따른다. 그렇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자매 공화국들의 애국파는 총재정부의 정책에 실망했지만 여전히 프랑스를 신뢰했다... 이 모든 이들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프랑스를 도왔고, 공화국 군대의 승리를 축하했다. 1814년에는 더는 그렇지 않았다. 이어진 10년 간의 전쟁, 비탄, 막중한 재정적 부담, 정치적 실망, 특히 주요한 혁명적 성과 도입이나 유지를 가려버린 억압적 군사독재는 프랑스인들과 외국인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1799년에는 느낄 수 있었던 열정은 사라졌다. 이러한 점이 반혁명의 승리를 용이하게 했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p550


 혁명 세력이 권력을 잡고 이번에는 결과를 보여줘야 하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가 되면 어떨까. 이제는 혁명을 타도하는 반혁명의 역습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고 1804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814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이 패배하며 프랑스 제국이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렇듯 자크 고드쇼의 <반혁명>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반혁명 움직임을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생생함 속에서 독자들은 계몽사상의 결과 발생한 시민혁명이라는 큰 흐름 대신, 수많은 개별화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결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샤토브리앙과 함께 반혁명은 혁명과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망명 후 대공들의 군대에서 병사로 복무했다가 프랑스로 돌아와 보나파르트의 관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샤토브리앙은 혁명과 반혁명의 결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결합은 정확히 통령정부 시기 보나파르트 정부의 특징이기도 하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p203


 우리는 <반혁명> 안의  프랑스 혁명과 반혁명의 역동적인 상호작용과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저항, 이념적 대립, 대중의 다양한 요구 안에서,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샤토브리앙과 같은 정치인들의 야합을 통해 대중의 좌절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에도 불구하고, 교훈과 해결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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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환 교수의 주장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소나무 중심의 침엽수 조림 정책이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조림 정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중국, 일본처럼 산불이 감소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산불 감소는 불에 잘 타는 침엽수가 줄고 잘 타지 않는 활엽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홍 교수의 주장이다. - P15

 ‘정당성 사슬‘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통령부터 동사무소 직원까지 이르는 모든 권력 행사 주체를 국민이 직접 뽑을수는 없다. 국민이 핵심 권력기관을 투표로 선출하면 이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대리인을 임명하고, 마치 사슬처럼 그들의 권력 행사도 정당화된다는 게 정당성사슬 이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인용 사유였던 최서원(최순실)씨의 전횡이 ‘깨진 사슬‘의 전형이다. 헌법재판관의 권한 행사는 국민주권 원리에 비춰 모순이 없다. - P30

정 전 교수는 한국의 탄핵 제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균형 모델‘이라며, 이렇게 썼다. "법치주의는 민주적 정당성만에 기초하여 결정할 때 따라오는 오류를 시정하고 축소하려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분쟁을 정치주의에 의존해 결판을내려 하고 법치주의는 정치적 분쟁을 규범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 사법주의에 의존하여 해결하려 한다. (…) 양자를 배합할 때 그 비율은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P31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윤석열 개인의 진퇴를 정하는 사법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현재의 충돌이 다수파와 소수파, 진보와 보수의 일상적 대결이 아니라 헌법 수호와 헌법 파괴구도라는 점을, 법과 논리의 언어로 설득해야 한다. 이 작업을 헌재의 느릿한 법치의 과정을 견디며 해내야 한다. - P32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이 제도에 대한 중장년층의 신뢰보다 청년층의 신뢰가 좀 더 절실할 수 있다. 청년층이 우리 사회를 신뢰해야 점점 더 역피라미드형으로 치닫고 있는 ‘인구구조‘를 바꿔 ‘세대 간 연대‘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중장년층은 새로운 세대 간 타협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쇠락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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