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최소한의 합의 기준이라고 세워놓았던 가치들을 지키고자 하는이들은 누구와 합의를 이루고, 누구와는단호히 결별해야 할 것인가? 어떤 ‘보수‘를 공화국의 동지로 데려올 것인가? 다가올 탄핵심판 결과 이후에도 남을 질문이다. - P15

가설이 맞아떨어졌다. 보수 극우 유튜브시청자일수록 12.3 쿠데타를 정당하게여기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할 것이라는추측이 <시사IN>-한국리서치 2025년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은 법원 폭동 사태를 국민 저항권 행사라고 인식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였다. - P16

‘극우‘는 보수우파)와는 다른 개념이다. 보수주의는 사회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보수주의자는 법과 질서,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기존법과 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진보주의자와 구분된다. 하지만 극우과 같은 극단주의는 정치 이념이나 사상이라고 볼 수 없다. 강경하고 격렬한 보수주의자가 곧 극우주의자는 아니다. - P20

탄핵 반대 세력 사이 분화도 포착됐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도, 12.3 비상계엄 평가에 따라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게 나뉘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동시에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응답한 이들 중,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자는 77%였다. 반면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더라도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응답자 중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 P21

국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보완하기 위한 입법이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보호 대상을 프리랜서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른바 ‘노동약자법‘
이다. 그러나 이는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관행과 구조는 건드리지 않는 내용이어서 한계가 명확하다. 단적으로 노동약자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MBC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P28

반도체 분야는 소수의 천재 연구자가 오래 일해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다. 반도체 칩을 더 미세하게 개발하는 데1000여 가지 조건을 실험해야 한다. 한두명 천재가 이걸 해내는 게 아니라 집단의창의성이 필요하다. 연구자 수십 명이 몇달씩 붙어서 숱한 시도를 반복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다." 3개월 ‘화끈하게‘ 일하고, 이후 3개월은 ‘화끈하게‘ 쉬는 집중근무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노동환경이 업무 효율을 높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 P32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는 선명함도 모호함도 제각각의 정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경계의 선명함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선명함으로 또 누군가는 모호함으로 기여하며 경쟁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를 보호하는 합헌적 질서 ‘안‘에서만 가능하고 또 정당화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게 선결적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만은 기성언론 역시 모호함을 중지해야 하며, 유튜브 또한 선명함이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음을 수용해야 한다.  - P36

불안한 휴전 합의가 지속되던 2월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겠다는 비이성적 망언이다. 국제법 위배로 간주될 트럼프의 야욕에 국제사회는 또 한번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언론인으로서 보기에, 이 음모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독립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른 팔레스타인인들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단 한 평의 땅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39

하지만 뉴욕시는 교통량 감소라는 분명한 효과에 주목한다. 징수 금액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가기로 했다. 혼잡통행료 징수로 추가되는 연간 5억 달러(약7262억원) 예산을 대중교통망 확대에 재투자할 계획도 강조했다. 오랜 논의 끝에어렵게 시작한 정책이 맞닥뜨린 상황이녹록지 않다. 외부적 상황이 당장 나아질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가장 혼잡한 도시가 시작한 새로운 정책을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등 미국의 다른 대도시가 관심 깊게지켜보고 있다.  - P41

근대인은 낭만적인 사랑, 안정된 가정, 정열적인 섹스, 모두를 결혼에서 찾을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현대의 낭만적 사랑은 대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인 경우도 많다. 낭만적 사랑을 하는 데는 종종 많은 돈이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도파민에 의한 단기간의 흥분, 이어지는 권태와 질투, 의심과 슬픔을 포함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하지만 낭만적 사랑은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며 우리를 기만한다. - P44

우리는 모두 좋은 저널리즘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 저널리즘은 매우 중요한자원이며, 특히 오늘날 전 세계의 정치적분위기를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소셜미디어에 대해 말하자면, 기사나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잠시 멈춰생각해달라. 만약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확실하지 않다면, 왜 그것을 퍼뜨릴 위험을 감수하나? 허위 정보와 선동은보통 강한 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되고,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읽고 보고 빠르게 반응하도록 부추긴다. 정보를 다시 공유하기 전에 이 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그리고 팩트체크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글쓰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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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비합리적·주술적 사고와 너무 밀접하다고 말했다. "토론 문화가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주체적 사고가 자리 잡지 않았다. 대중문화에도 무당과 같은 존재가 단골로 등장한다. 군중을 구워삶는 주술 담지자가 날뛰기 좋은 판이다." ‘무당‘뿐만 아니라 카리스마를 내세운 종교인도 ‘주술 담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스라엘 깃발까지 갖고 다니는 태극기 부대는 단순한 정치 집회라고 보기 어렵다. 이건 신앙, 믿음의 영역이다." - P10

반지성주의적 개신교 극우세력은 사회 성원 다수를 설득할 마음이 없다. 그들은 (오독된) 성경과 자칭 성령으로 묶여있지만, 민주주의 공동체의 규범은 그들의 방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 P10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 나와서 주장한 대로라면, 단순히 선관위에 어떤 장비가 설치돼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크린(점검)‘ 차원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계엄군을 출동시켰다는 뜻이 된다. 취임 전부터 자신이 믿고 있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정보와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도 사실로 입증하지 못했다는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 P19

이렇게 형성되고 있었던 AI 생태계의평온(물론 물밑에선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었다)에 난데없이 큰 돌이 날아들었다. 딥시크의 LLM 인 V3와 그 응용 프로그램인 챗봇 R1이다. V3와 R1의 선언은 ‘미국 업체들만큼 연산 능력을 확장하지 않아도 비등한 성능의 제품을 만들 수있다‘는 것이었다. - P23

오픈소스의 리스크는, 경쟁자들에게 추월의 기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오픈소스는 더 큰 이익을 챙길 기회도 제공한다. 공개된 기술(미국 업체들도 쉽게 복제할 수 있다)이 글로벌 차원에서 널리 확산된다면 장차 AI 산업의 표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잘활용하면 관련 서비스나 응용 프로그램에서 우위를 점해 초과이익을 획득할 수있다. 구글이 대표 사례다. - P25

이 공백은 캐나다·멕시코는 물론 한국 등 다른 나라에도 중요한 기회다. 트럼프는 관세 대폭 인상 이외에도 다른 나라는 물론 미국에까지 파국을 불러올 것이 뻔한 공약을 다수 갖고 있다. 그 공약들이 트럼프의 진정한 의도를 업고 있는지 혹은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미친놈 전략(Madman Theory)‘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트럼프 본인도 모를 수 있다. - P27

 트럼프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지만,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좌파 이념이 미국을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좇아 새로운 종교적서사를 만들어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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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3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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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파운데이션이 단일한 정치 조직이라는 물리적인 틀을 제공한다면 제2파운데이션은 준비된 지배 계급이라는 정신적인 틀을 제공하는 거지요.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54

 

 아이작 아지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은하 제국의 멸망 후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인류의 장대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2파운데이션>은 해리 셀던의 숨겨진 계획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제2파운데이션의 등장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둘러싼 더욱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제1파운데이션이 과학 기술과 사회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 했다면, 제2파운데이션은 정신과학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조정'하려 한다.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과학은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작품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자유 의지를 침해될 수 있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오용 될 경우 매우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인간적인 감정과 공감을 결여하는 제2파운데이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란 원래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불안전하게 습득한 수단이다.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소리를 조합하고 추상적인 소리를 짜 맞추는 방법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마음에 담긴 미묘한 감정을 목구멍에서 거칠게 흘러나온 신호로 타락시키는, 둔감하고 부적절하고 꼴사나운 수단이기도 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43


 말과 의사소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 우리는 현실 속에서 언어의 한계와 모호성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언어의 한계는 때때로 우리에게 답답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연 이러한 언어적 한계만으로 언어와 소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일상적인 대화라는 감옥 창살을 본능적으로 우회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했다. 의미론, 기호논리학, 정신분석 등 역시 대화를 정확하게 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리역사학은 정신과학의 정수를 결국엔 수학화하는 데 성공한 결과였다...  수학의 발전은 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심리학의 진정한 발전을 일으킨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을 집단에 일반화하면서 사회학 역시 계량화되었다.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145


 제2파운데이션은 소통 대신 직접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향해 나간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개인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비밀주의에서 제1파운데이션의 기술관료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제2파운데이션의 엘리트주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셀던은 제2파운데이션을 하나의 보완책으로 설계했다.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성격의 엘리트 중심의 공화주의. 그렇지만, 제2파운데이션의 정신과학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개인이 제어를 받았는데도 그것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란 대체 어떤 때일까? 그건 제거시켜야 할 이전의 감정 상태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야. 바꾸어 말하면 그 개인이 백지의 마음을 가진 신생아일 경우지. _ 아이작 아지모프, <제2파운데이션>, p339


 과연 완벽한 통제는 가능할 것인가? 제2파운데이션의 능력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소수의 엘리트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엘리트주의적인 통치 방식은 전체주의적인 위험성을 내포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과학은 인간적인 감정과 공감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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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스마트폰은 총체적으로 아동의 삶을 잠식하고 있었다. 응답 아동 절반 가까이가 6세 미만에 디지털 기기를 접했다. 보호자는 ‘교육용‘으로 혹은 ‘밖(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시키려고‘ 처음 디지털 기기 사용을 허락했으나, 그중 많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이용 고위험군이 되었다. 스마트폰 과의존 고위험군 아이들이 호소하는 심신의 영향은 운동 부족, 눈 피로, 시력 저하, 우울감, 근육통과 두통, 불면 등 종류가 다양하고 정도도 심각했다. 또한 고위험군 아동일수록 주관적 행복감과 주관적 학업 성적이낮은 경향을 보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스마트폰 중독과의존의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였다. - P8

"한국 아이들의 일상 행복이 OECD 하위권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행복감을 높일 구체적인 방법은 모호하다. ‘교육을 바꿔야 한다‘ 같은 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이 실제로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보고 ‘일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디테일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른들은 주도적으로 스케줄을 짜지만 아이는 짜인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에 힘들거나 불만이 있어도 표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 P15

외신들은 서부지법 폭동을 단일한 사건으로만 읽어내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폭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만을 다룬 기사는 많지 않았다. 대개의 기사들은 침입자들이 일으킨 폭력적 상황에 대한 서술과 함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상상조차 어려운 불법 폭력 사태"라고 평가했다는 점,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고 이들에 대한 단호한 형사적 처벌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건 자체는 이례적이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빠른 속도로 수습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 P24

해외에서는 풀 페이스 마스크나 헬멧을 쓰고 지상과 통신이 가능한 상황에서 안전과 공기를 모두 공급받는 방식을 ‘표면 공급 방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비용 등의 문제로 지상과 소통이 어려운 하프 페이스 마스크만을 써도 ‘표면 공급 방식‘이라 부른다.  - P41

혹시 트럼프 역시 그린란드와 파나마, 캐나다를 미국의 세력권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미국은 국제질서의 수호자에서 위협자로 전락할 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타이완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넘어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조지아 등 과거 소련 영토에 대한 권리를 더욱 당당히 주장하고 야욕을 군사적 실천으로 옮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 P46

이런 문제의 근저에는 펩 감독의 소수 정예 스타일이 깔려 있다. 맨시티의 선수 명단은 눈부시다. 포지션마다 세계 최고가 버틴다. 하지만 주전 의존도가높다. 뛰는 선수만 계속 뛴다는 뜻이다. 펩 감독의 스쿼드는 풍요 속의 빈곤상태다. 펩 감독의 전술은 복잡하고 세밀한 데다 계속 진화한다. 선수가 많아도 그의 전술 철학을 온전히 실행할 수준의 주전은 손에 꼽는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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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17일 맑음(晴) 도쿄
 나는 이 일기를 단장(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마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의 일부를 정지시켰다. 금년 내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다. 지금 본국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이 얼마나 놀라고 분노하고,
그리고 상심하고 있을까? - P11

이번 사태에 가장 뜻밖인 것이 북한 측이 미리 내통하고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김일성 정권이 지금까지 "인민의 자유"
를 부르짖고 남한에서의 민주주의 발전을 주장하던 것이 한낱거짓이었으며, 그들도 박(박정희)과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라고 일본의 많은 언론인들이 주장한 말이 옳다고 생각된다. - P13

아침에 조세형씨가 와서 식사를 같이하면서 이야기했다. 그의 의견이 여러 가지 참고되었다. 여하튼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길게 내다보는 외에 도리가 없다. 박 정권은 지금 한참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로 밀고 나가고 있으며, 미일 양국은 방관하고 북한은 협조하니, 내가 아무리 초조해도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꼭 자체 모순 속에서 생각지 않은 시기에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사고가 터지고 마는 법이다. 답답할 때는 역사를 읽자! 거기는 무한의 교훈이 숨어 있다. - P17

지난해 12월3일은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 밤이었다. 물과 공기처럼 우리에게는 법이 있었고, 우리는 누군가가 법꾸라지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귀걸이라 했다가 코걸이라며 말을 바꾸고, 제 논에 물대기 식의 변론을 한다 해도 헌법이 판단의기준이 되리라 생각하고 기대한다. 다만 그들이 헌재 판단마저인정하지 않고 무법 세상의 게임을 계속할까 봐 두려울 뿐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자가 그것을 부인하는 세상이라면 국민의생명과 재산 수호는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 P60

노한동 작가가 경험으로 느낀 공직세계의 두 가지 큰 문제는 ‘돈(예산)‘과인사 문제다.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라고, 행정부의 각 부처가 한도내에서 담당 사업별로 예산을 요구하도록 되어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칼잡이‘ 역할을 놓지 않고 있다. 부처의 예산 담당 부서가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한 뒤에도 기획재정부에 의해 번번이 변경된다. 신규 사업을 하려 하면 기재부 담당자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했다. - P73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지만 건강수명까지 보장하는 건아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했다. 조력사망이었다. 여러 지난한 절차를 거쳐 스위스 기관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자 죽음 자체가 희망이 됐다. 죽으러가기 위해 기운을 차려야 하는 모순적인 순간들도 이어졌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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