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17일 맑음(晴) 도쿄 나는 이 일기를 단장(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마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의 일부를 정지시켰다. 금년 내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다. 지금 본국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이 얼마나 놀라고 분노하고, 그리고 상심하고 있을까? - P11
이번 사태에 가장 뜻밖인 것이 북한 측이 미리 내통하고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김일성 정권이 지금까지 "인민의 자유" 를 부르짖고 남한에서의 민주주의 발전을 주장하던 것이 한낱거짓이었으며, 그들도 박(박정희)과 같은 독재자에 불과한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라고 일본의 많은 언론인들이 주장한 말이 옳다고 생각된다. - P13
아침에 조세형씨가 와서 식사를 같이하면서 이야기했다. 그의 의견이 여러 가지 참고되었다. 여하튼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길게 내다보는 외에 도리가 없다. 박 정권은 지금 한참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로 밀고 나가고 있으며, 미일 양국은 방관하고 북한은 협조하니, 내가 아무리 초조해도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꼭 자체 모순 속에서 생각지 않은 시기에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사고가 터지고 마는 법이다. 답답할 때는 역사를 읽자! 거기는 무한의 교훈이 숨어 있다. - P17
지난해 12월3일은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 밤이었다. 물과 공기처럼 우리에게는 법이 있었고, 우리는 누군가가 법꾸라지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귀걸이라 했다가 코걸이라며 말을 바꾸고, 제 논에 물대기 식의 변론을 한다 해도 헌법이 판단의기준이 되리라 생각하고 기대한다. 다만 그들이 헌재 판단마저인정하지 않고 무법 세상의 게임을 계속할까 봐 두려울 뿐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자가 그것을 부인하는 세상이라면 국민의생명과 재산 수호는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 P60
노한동 작가가 경험으로 느낀 공직세계의 두 가지 큰 문제는 ‘돈(예산)‘과인사 문제다.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라고, 행정부의 각 부처가 한도내에서 담당 사업별로 예산을 요구하도록 되어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칼잡이‘ 역할을 놓지 않고 있다. 부처의 예산 담당 부서가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한 뒤에도 기획재정부에 의해 번번이 변경된다. 신규 사업을 하려 하면 기재부 담당자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했다. - P73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지만 건강수명까지 보장하는 건아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했다. 조력사망이었다. 여러 지난한 절차를 거쳐 스위스 기관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자 죽음 자체가 희망이 됐다. 죽으러가기 위해 기운을 차려야 하는 모순적인 순간들도 이어졌다. - P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