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 천 년간 풀지 못한 한국어의 수수께끼
향문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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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같아서 단어의 의미는 때때로 확장되거나 축소되고, 단어의 소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새로워집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두 단어의 의미 사이에 괴리를 자아낸 것입니다. _ 향문천,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p67

고조선 시대 이후 현대시기에 한반도와 중국, 만주, 몽골, 일본 지역에서 사용된 고대~한국어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주제로 한 언어학 교양 서적이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다. 땅 밑에서 발굴되는 유물과 땅 위의 비(碑)에 새겨진 글이 문어(文語)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말은 구어(口語)의 흔적이 남겨있다. 저자는 언어에 남겨진 지울 수 없는 증거를 통해 언어학이 무엇인지, 언어학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알기 쉽게 대중에게 설명한다.

문화적 교류를 통해 수많은 차용어가 생기는 현대와 달리, 전근대사회에서 주로 교역과 같은 물적 교류의 형태로 언어 접촉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행위와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보다 사물과 개체를 나타내는 명사가 더 차용되기 쉬운 경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한국어 용언이 주변 언어에 차용된 사실은 한민족과 주변 민족사이에 심화된 인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_ 향문천,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p91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오늘날과 다른 통신기술의 제한은 '신라어'와 '중세 신라어'와 단절을 가져오지만 다른 면에서 지역간 활발한 교역은 만주지역과 일본, 우리나라와 류쿠(오키나와) 지역 사이에 물자 뿐 아니라 언어까지 주고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4대왕 석탈해 신화가 캄차카 지방과 연계된 것이라는 학계 연구 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거리의 제약에 갇힌 것은 고대인이 아닌 근대 국경 형성 이후 시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가 아닐까. 저자는 본문을 통해 현대 우리의 시선이 아닌 당대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조선 시대를 다루는 사극을 시청할 때 '근대 번역어'가 등장하면 굉장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조선에 과연 그런 개념이 있었을까요? 당시 세계관은 유교 사상에 기반해 구축되었습니다. 지금의 극도로 서구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과거와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변화했습니다. 이는 많은 현대인이 간과하는 점입니다._ 향문천,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p224

이와 함께, 저자는 우리가 고대의 교류를 이해할 때 어느 일방의 전래가 아니었음도 함께 말한다. 중국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한 전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도 성리학적 세계관과 대국중심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편견이지 아닐까. 역사를 통해 현대의 교훈을 끌어내는 것과 현대의 관점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일 것이다...

くばら "百濟"는 고대 일본어에서 본래 kudara[구다라]였습니다. [구다라]와 큰 나라는 이미 서로 비슷하지 않지만, 둘 사이에는 천 년이 넘는 시간차가 존재합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당연히 동시대의 한국어를 알아야 합니다. 21세기 현대 한국어 큰 나라와 고대 일본어 단어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_ 향문천,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p38

한국어족이 지금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에 받은 영향은 일본. 류큐어족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앞서 이미 다루었듯이, 한국어족은 일본어족으로부터 자연과 농경에 관한 어휘를 차용했습니다. 반면 일본어족은 한국어족으로부터 기술과 문명에 관한 어휘를 차용했습니다. 이처럼 언어 접촉에 의한 영향은 쌍방향으로 발생합니다만, 언어 접촉이 발생한 시기, 인구 집단의 위상 등에 따라 주고받는 어휘의 범주는 달라집니다. _ 향문천,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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