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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평점 :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철학자 강신주(1967 ~ )의 관점에서 노자(老子, BC 604 ? ~ ?) 와 장자(莊子, BC 369 ? ~ BC 286)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우리가 알던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아닌 제국주의(帝國主義) 사상의 기본으로 해석된 노자와 타인과 자신의 소통으로 해석된 장자 사상은 신선함과 낯설음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하 리뷰에서는 강신주에 의해 해석된 노자와 장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노자(老子) : 제국-국가의 수탈과 재분배에 대한 이론적 배경
저자에 따르면 노자 사상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지향한다. 제국에 이르기 위해 통치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가지고 통치해야 물이 모이듯 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제국은 국가와 동일한 작동한 원리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국가의 작동원리를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체계로 해석한다.
노자 철학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천하(天下)'이다. '천하'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를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전국(戰國)의 혼란과 무질서를 '하늘 아래'라는 생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파시즘으로 무장한 국가의 무력으로는 전국(戰國)을 통일할 수 있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통일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p284)
노자의 해법은 피통치자가 '제국'안에 들어오면 사랑의 원리로, '제국' 바깥에 남으려고 한다면 폭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의 '제국' 논리가 역사상 존재했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제국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점은 '제국'이 결코 '국가'와 독립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자 철학의 진정한 고유성을 그가 '제국'으로까지 이어질 '국가'의 작동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p285)
저자는 '수탈-재분배'라는 교환 체계를 통해 국가를 해석하고, 이러한 체계를 통해 국가 또는 제국이 유지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노자의 사상은 '더 얻기 위해 자신을 더 낮추는' 목적이 있는 고도의 정치학으로 해석된다.
노자에 따르면 국가란 하나의 교환 체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기구다. 그러나 문제는 노자가 국가를 자명하게 주어진 전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p285)
수탈과 재분배라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전자본주의 경제체제든 혹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든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제체제든 간에, 국가가 그 어떤 생산양식 혹은 생산력이라도 자신의 교환 논리로 선택하고 편입시킨다고 보아야 한다.(p288)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노자 사상을 마르크스 주의(Marxism)적으로 해석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본문을 저자처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자 후대에 나타난 정치경제구조를 통해 역(易)으로 과거 사상을 해석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수탈과 재분배' 라는 후대의 하부구조의 현상속에 추상적인 노자 사상의 일면이 담길지는 몰라도, 그게 노자 사상의 전체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노자 사상을 경제사상으로 한정시키는 순간 그 길은 길이 아닌 것이 되지 않을까.(道可道 非常道)하는 생각을 <노자>편에서 하게 된다.
2. 장자(莊子) : 타자와 소통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
이번에는 저자가 해석한 장자 철학을 살펴보자. 장자의 철학은 소통의 철학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꿈(자기동일성)에서 깨어나 타인과 직접 부딪혔을 때에 이르러야 우리는 비로소 소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해 타인과 자신이 서로 긍정 된다.
장자의 철학은 전국시대라는 정치적 상황과 제자백가로 상징되는 사상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해 대화와 소통의 결여라는 상황 속에서 그의 철학은 탄생했다.(p614)..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장자는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유아론적 꿈에서 깨어나야만(覺)한다.(p615)
단지 깨어난 상태는 주체가 자신의 유아론적 자기동일성에서 벗어나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깨어남은 주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뿐, 결코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소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소통의 성공 여부는 소통의 양 항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와 타자에 의해 동시에 결정되는 법니다.(p615)... 절대라는 개념 속에서는 주체와 타자는 원리적으로 소멸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반면 무대(無待)가 '매개에 의존하지 않음'으로 이해될 때, 주체와 타자는 실존적으로 긍정될 수 있다.(p616)
그리고, 저자는 타인과 소통을 통해 기존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났을 때 이를 '자유가 실현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장자는 자신이 깨어나 타인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자신으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게되는 것이다. 저자의 장자 해석은 전형적인 변증법(辯證法) 구조로 정(正)- 반(反) - 합(合)의 과정을 통해 합에 이르렀을 때 이를 자유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지적인 이해나 또는 정서적 교감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지적인 이해나 정서적 교감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주체와 타인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소통은 우리가 새로운 주체로 생성되는 비인칭적 수준에서의 관계 맺음으로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장자에게 주체의 자유는 주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주체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p618)
장자에게 소통은 자유(逍遙遊)라는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직 비인칭적 마음으로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했을 때, 자유는 실현될 수 있다. 자유가 실현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주체가 새로운 타자와 소통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p619)
아직 <장자>를 충분히 읽지 않아서 이에 대한 개인 의견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정리하도록 하고, 먼저 저자의 생각을 요약해 보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동양사상을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본문에서는 데카르트, 들뢰즈 등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노자와 장자 사상을 해석하고 있어 독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기존 <논어 論語>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만 접하다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 ~ 1728)의 <논어징 論語徵>을 대했을 때처럼 우리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에 따르면 독자들은 노자와 장자에 대한 과거 인식을 버리고 타자(강신주)와 소통하고, 이러한 낯설음을 받아들였을 때 새로운 관점을 가지는 자신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분좋은 낯설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