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관찰주의자 Visual Intelligence : Sharpen Your Perception, Change Your Life>는 미술사가인 에이미 E. 허먼(Amy E. Herman)이 쓴 '시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평소 우리가 시각적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을 제시하는 <우아한 관찰주의자>를 통해 우리는 '보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평소 우리가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보지 않고 있는' 상태에 자주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무주의 맹시'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현상은 개인마다 관심정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1999년에 하버드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 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Christopher Chabris는 우리가 두 눈을 뜨고 시야에 들어온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것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것은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현상이다.(p56)'
[사진] 고릴라 실험(출처 : http://egloos.zum.com/kusomiso/v/2505303)
사람마다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더라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결국, 본다는 것은 '시각화된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의 요소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주관적인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객관적인 관찰'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점을 자주 잊고 오직 하나의 진실한 방법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p71)... 남들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없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향부터 학습된 편향에 이르기까지 온갖 요소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지각은 우리가 관찰하고 수집한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내면의 필터라고 볼 수 있다. 지각은 실재하는 대상을 채색하거나 흐리게 만들거나 변형해서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지각 필터는 우리가 세상에서 접한 고유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p72)'
결국 <우아한 관찰주의자>에서 강조하는 것은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정보의 수용(객관적 관찰)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성공법칙으로 결론을 맺는다.
'사실을 수집할 때는 관찰한 내용이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이 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 차이가 작을 수 있어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말 그대로 사실과 허구의 차이다. 객관적 관찰은 경험이나 수학적 사실에 기초한다. 주관적 관찰은 가정이나 의견, 감정이나 가치관에 기초한다.(p117)'
'모든 것을 관찰하고 흡수하며 주변과 내면의 가능성을 발견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우리 자신의 삶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찾을 것이다. 관찰이란 단순히 대상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정신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하면 이미 여정은 시작된 것이다.(p47)'
<우아한 관찰주의자>는 그 과정에서 여러 미술 작품을 제시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기회도 제공한다. 미술사가인 작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 일반인들이 미술작품을 볼 때 놓치기 쉬운 몇 가지 지점을 확인하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e, 1898 ~ 1967),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 ~ 1564), 클림트(Gustav Klimt, 1862 ~ 1918) 등 여러 예술가의 작품이 제시되며 내용이 전개되기에 매우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책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의 결론(객관적인 관찰이 중요하고, 객관적 관찰이 너의 인생을 바꿀 것이고, 너는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반론을 위해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의 내용을 살펴보자.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 ~ 1753)는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 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을 통해 시각 능력의 제약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83. 시각 능력의 두 가지 결함
시각 능력의 직접적인 대상을 고려하면 이 능력은 두 가지 결함 때문에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으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첫째, 시각적 능력은 한정된 수의 시각적 최소량만을 한눈에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너머로 전망을 확장할 수 없다. 둘째, 우리 시각은 그 시야가 좁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혼란스럽다는 결함이 있다.(p128)'
'본다'는 행위 자체는 인간의 수정체를 통해 외부 자극을 인지하는 행위다. 때문에, 육제적 제약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 자체가 이미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우아한 관찰주의자>에서는 수학적으로 정량화(定量化)할 수 있는 '객관적 관찰'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정량화 이전에 시각정보가 왜곡된다면, 객관적 관찰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설사 객관적 관찰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제 우리는 '해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49. 엄격히 말해서 우리는 결코 동일한 것을 보고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물을 면민하고 정확하게 본다면 우리는 결코 동일한 대상을 보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은 별개이다.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해도, 우리는 동일한 사물이 다양한 연장을 갖는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참된 결과는 시각 대상과 촉각 대상이 별개의 두 사물이라는 것이다... 시각 관념의 결합은 언제나 그것과 연관되는 촉각 관념의 결합과 동일한 이름을 가지므로 그 난점이 적지 않게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이 난점은 필연적으로 언어 사용과 목적에서 발생한다.(p95)'
버클리에 따르면 우리가 동일한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보를 인식할 때 복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시각, 청각, 촉각으로 인지될 수 있는 대상이 다름에도 우리는 이를 혼동하게 된다. 특히, 시각과 촉각은 혼동하기 쉬우며 버클리는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을 '언어(言語)'에서 찾고 있다. 논리의 비약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가 느끼는 자극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수집된 정보를 '언어'를 통해 풀어간다는 면에서 시각의 문제를 언어의 문제로 귀결시키는 버클리의 주장 역시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요약하면, 우리의 '본다'라는 인식 행위에서 일차적으로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제한된 정보가 수집되며, 수집된 정보를 해석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도 언어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 차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아한 관찰주의자>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객관적 관찰은 처음부터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여기에 해석 자체가 시각, 청각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다. 결국, 객관적 관찰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주관적인 관찰'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런지.
이러한 이유로 <우아한 관찰주의자>를 통해 객관적 관찰에 힘쓰기보다는 내용 전개를 위해 제시된 예술 작품(회화, 조각, 사진)을 보고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이 보다 뜻깊은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PS. 요즘 이웃분들께서 책선물을 많이 보내주셔서 많이 행복하게 페이퍼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아한 관찰주의자> 역시 가까이 지내는 이웃분께서 보내주셔서 기쁘게 읽었습니다. 이웃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