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의 베틀 ㅣ 경문수학산책 18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이상원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신의 베틀>은 '수(數)'와 '신(神)'과의 관계를 과학소설의 형식을 빌려 표현한 과학 소설(SF)이다. 작품의 큰 틀은 서기 2080년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 기원전 450년으로 돌아가 '피타고라스'를 만나고, 그의 애인인 '테아노'와 사랑에 빠져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마치 어린이 '공룡 백과 사전'의 시간 여행을 연상시키는 <신의 베틀>의 구조는 단순하고, 어설픈 주인공과 피타고라스 애인과 사랑 이야기는 어설프지만, 책에서 다루는 과학사적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게 빠져들게 만든다.
<신의 베틀>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은 피타고라스의 수비학(數秘學),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와 수, 프랙털(fractal), 카발라(Kabala), 괴델의 신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등으로 수학(數學)과 종교(宗敎)와의 관계가 흥미롭게 분석되어 있다. 특히, '신의 존재에 대한 괴델의 수학적 증명'은 평소 관심있던 내용이라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다. 다음에서 다루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피타고라스의 수비학
우리에게는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지만, 사실 그' 피타고라스 학파'라는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이 학파는 '수(數)'를 통해 우주적 질서를 파악한 일종의 종교집단으로 그들만의 금기사항으로도 유명하다. <신의 베틀>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특징과 함께 삼각수, 오각수의 비밀등을 다루고 있다.
'수, 수적 비례, 그리고 조화에 대한 연구와 고민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수는 사물과 닮았고 많은 경우 사물 자체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짝수는 여성이고, 홀수는 남성이다. 1이라는 숫자는 모든 수의 근원이고 2는 첫 번째 여성수다. 첫 번째 남성수는 3이고 이것을 첫 번째 여성수와 더하면2+3=5가 되어 결혼을 생각한다. 8은 결혼을 상징하는 5에 남성수인 3이 더해진 수로 사랑의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여겨졌다.'(p38)
[그림] 피타고라스의 삼각수 (출처 : http://guestbook.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waysneoi&logNo=220090463291&parentCategoryNo=21&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2.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와 수
우리에게 <고백록>으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수학은 성경 해석의 도구였다. 성경의 구절에 적힌 숫자들의 의미를 교리에 따라 해석한 내용이 <신의 베틀>에서 다루어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153이 신비스러운 수이고 말세가 되면 성인 153명이 되살아난다고 믿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숫자를 사용해 성경을 해석했거든. 예를 들어 그는 사도들이 티베리아(Tiberia) 바다에서 물고기 153 마리를 잡았다는 신양성서(요한 21:11)에 주목했지. 인간이 10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물에서 착안해 이 제자들이 성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거야. 또한 10+17=17이고 1에서 17까지의 수를 모두 더하면 153이 나오지.'(p122)
3. 프랙털(fractal)
작은 크기의 모양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기닮음성'을 보여주는 프랙철이 컴퓨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현상이 아니라, 양치류 등의 자연을 통해서도 나타남을 설명한다.
'프랙털이란 같은 모양이 크기를 달리해 반복되는 형태를 말해요. 나뭇가지 안에 다시 조그만 나뭇가지들이 들어 있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수학자들은 그런 구조를 자기 닮음(self-similar)라고도 불러.'(p242)
[그림] 프랙털(출처 : http://www.aistudy.com/physics/chaos/shape_gleick.htm)
4. 카발라(Kabala)
성서의 해설은 기독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유대교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신의 베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발라란 12세기와 그 이후에 널리 퍼진 유대인들의 비밀스러운 신비주의야. 그들은 구약석서의 대부분이 암호라고 말하지.(p314)... 카발라에서는 또한 수를 통해 네 글자로 된 신의 이름을 이해하려고 했어. 그 신의 이름은 IHVH라고 씌여 있고 그 발음은 야훼 또는 여호와 정도가 되지만 너무도 신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소리내어 읽으면 안 된다고 했지....카발라에 따르면 야훼라고 하는 간단한 이름은 본래 72음절 216글자로 이루어진 진짜 신의 이름을 짧게 부르는 것에 불과해. 이 신성한 이름은 셈 하-메포라시(shem ha-meforash)라고 불리지.' (p319)
5. 신의 존재에 대한 괴델의 수학적 증명
<신의 베틀>에서 불과 1페이지 정도에 이르는 증명을 소개하면서 약 20페이지에 걸쳐 이에 대한 현대 수학자 및 철학자들의 견해를 [부록]으로 설명한다. 내용이 어려워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다섯 가지 길)과는 또 다른 관점을 알게 된다.
공리1. (이분법) 속성은 그 부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만 긍정이다.
공리2. (닫힘)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경우에만 긍정이다.
정리1. 긍정적 속성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다시 말해 실례를 가질 수도 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
공리3. 신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공리4. 긍정적인 속성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정의.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리2.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 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의. NE(x) : 핵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x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공리5.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신적이다.
정리3. 신적인 x는 반드시 몇몇 개가 존재한다. (p382)
<신의 베틀>은 수학과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은 정말로 수학자였을까?... 나는 신이 수학자였는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신이 우주라는 천을 짜 내려갈 때 수학이 그 베틀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고 믿는다.'(p3)
<신의 베틀>에서는 이처럼 우주의 근본질서가 되는 근본원리로서 '수학'을 조명한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이래 수학이 종교와 신의 섭리를 설명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약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양(量)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신의 베틀>이 재밌게 읽히는 것은 '문과'에 속하는 '종교학'과 '이과'에 속하는 '수학'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문과-이과'의 구분에 익숙한 우리의 편견을 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우리 나라 교육과정은 크게 문과(文科)와 이과(理科)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진학 기준을 수학을 잘하는가에 따라 큰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전공을 깊게 공부하다보면 모든 학문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접 체감하게 된다. 이른바 사회과학이라고 불리우는 분야에 있어서는 이공계만큼의 많은 수학공식이 필요하며, 공학분야에도 인간에 대한 고려 등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부를 깊이할수록 절감하게 된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문-이과' 체계가 합당한 학문 분류 체계인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PS. '신의 존재에 대한 괴델의 수학적 증명'을 찬찬히 읽어보면 '스피노자(Spinoza)'적 관점이 눈에 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에서 '부정은 단지 유한한 피조물에서만 발견되는 속성'이라고 말한 <Ethica>의 관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