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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냐, 바울이냐
문동환 지음 / 삼인 / 2015년 4월
평점 :
<예수냐 바울이냐>는 문동환 목사께서 저술한 기독교(基督敎) 신학(神學)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책의 제목은 마치 이슬람교가 비(非)이슬람교도들에게 신앙을 강요하기 위해 "코란이냐, 칼이냐."라는 말을 통해 개종을 강요했다는 말을 연상시킨다.(실제 이슬람교에서 위의 말로 개종을 강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제목을 통해서도 책의 내용이 '예수'와 '바울'을 대척점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논의를 전개하기 전 먼저 구약성경에 나타난 서로 다른 두 목소리를 주목한다.
구약성경에는 서로 다른 성경 저자들의 목소리가 나타나는데 저자는 이를 '출애굽'계 공동체와 '신명기'계 공동체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출애굽'계 공동체에서 집필한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약자와 함께 하는 하느님이다. 여기에서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이른바 '약자(弱子)'의 하느님인 셈이다.
반면, '신명기'계 공동체에서 집필한 성경에서는 권력과 결탁한 '강자(强子)의 하느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選民)사상, <이사야> 등의 예언서 등에서 '메시아(Messiah)'사상이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며, 이후 이들의 신앙은 다윗 왕조의 사상과 결합하여 '기득권의 종교'로 변질된다.
이러한 '강자-약자'의 흐름은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진다.
저자는 '예수'의 삶과 선교는 가난한 이와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며 이는 '출애굽'계 고동체의 성격을 계승한 것으로 인식한다. 반면, '바울'의 교리는 당시 로마 제국의 '신격화된 황제(카이사르)'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하에 '다윗 신앙의 계승'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파악한다. 바울이 인식한 '예수'와 '실제 예수'의 차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바울이 정말 예수에게서 배운 것인가? 아니면 그 자신이 메시아 사상에 따라 그려낸 예수에게서 배운 것인가?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부활하신 예수의 환상을 본 뒤,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예언자들이 조성한 메시아사상을 기초로 예수의 모습을 자의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에게서 배웠다고 말한다.(p213)'
마지막으로, 바울이 성립한 기독교 교리가 세계에, 그리고 우리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교회가 새롭게 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은 흔히 <성경(聖經)>은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한 책이기에 오류가 없는 책이며, 교리(敎理가 처음부터 확정된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렇지만,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은 사실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성립한 문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저자들의 사상, 다른 시대상이 반영되면서 성경 내에서도 많은 충돌이 있음을 최근의 연구 성과는 확인시켜 준다. 특히, 바빌론 유배(BC 597~538), 유대독립전쟁(AD66~73)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문헌의 성격을 바꿀 정도의 큰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수냐 바울이냐>는 이러한 기존의 선입견을 깨고, 많은 신학적 연구결과를 근거로 성경 안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요즘 기독교계가 '강자를 위한 종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뿐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약자'를 보살피고,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할 때 <예수냐 바울이냐>는 우리에게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시한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