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어 있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은 자의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권이 집행권과 결합되어 있다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갖제 될 것이다.'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문예출판사, 2015, p133)-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는 재판권이 권력(집행권, 행정권)과 결합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한국 현대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법부>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1945년 해방 이후 1997년까지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미군정,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권과 군사정권 시기에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중심으로 주요 사건과 판결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사법부>는 시대를 거치면서 사법부가 신뢰받지 못하는 과정을 국정원 자료를 기초로 그리고 있다. <사법부> 전반에 흐르는 질문은 저자의 프롤로그에 잘 나타난다.


' 1981년 4월 15일 열린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사에서 "취임 초에는 포부와 이상이 컸으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라고 술회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사법부를 司法府라고 쓰지 않고 司法部라고 적어 사법부의 위상이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p19)'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사법부의 역사가 독립기관이 아닌 행정부의 수하로 전락하는 굴욕의 역사라고 요약한다. 그렇다면, 사법부에는 어떤 위해가 가해졌기에 이토록 권력에 순종을 해야했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사법부에 대한 "중정(중앙정보부)-안기부"의 부당한 압력과 개입 문제를 조사하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중정- 안기부가 그 험한 시절에도 시국 사건과 관련해 현직 법관을 잡아가거나 고문을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차라리 중정-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는 덜 슬펐을 것이다.(p21)'


'사법부의 불행했던 과거는 결코 외압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p382)'


<사법부>에는 사법부의 자발적인 굴종의 역사와 함께 법과 양심에 따라 저항한 판사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어진다. 다만, 이러한 저항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점차 줄어들게 된다. 


'회한과 오욕의 암흑시대에도 아주 드물게 좋은 판결이 여럿 있었다. 유신과 5공 시절 사법부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법부에서 가끔씩은 정말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p245)'


그리고, 지금 사법부는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듯이 분명히 무너지게 되었다.  왜 사법부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까? <사법부>에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는다. 다만, 개별 사건의 전말을 보여줄 뿐이다. 이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남겨진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를 쓰는  2016년 12월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사건은 현행 6공화국 헌법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명목 속에서 대통령이 위법을 했을 때,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은 '개헌'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은 개헌을 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듯 보이지만,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異見)이 많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 기준이 필요한 때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 보인다. <사법부>는 지금 이러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판단기준과 관련한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의의 또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부>에서는 마지막으로 개혁 대상으로서의 검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시녀"였던 검찰은 민주화 이후에는 시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로 등장했다. 민주화로 안기부와 군이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청와대의 군력은 임기라는 덫에 걸려 힘이 약해진 반면, 검찰은 '삼성'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으로 부상했다.... 과거 안기부가 기세등등하던 시절에 아무리 검찰이 보기 흉하게 찌그러졌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썩은 것은 아니었다. 외부의 견제와 감시가 일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로 큰 권한을 누리게 된 뒤 검찰은 자정기능을 수립하지 못했고, 민주정권은 검찰개혁에도 문민통제에도 모두 실패했다.(p398)'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권력의 주인이 된 것은 국민이 아니라 검찰이었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검찰의 개혁은 필수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시킨다.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하면서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지만, 그의 열매는 대은행가와 대상인을 중심으로한 거대 자본에게 주어졌다. 그 뒤 프랑스는 빈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커다란 혁명(1848년 2월 혁명)을 겪어야 했다. 시대의 모순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극복되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2016년 촛불집회까지 약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모순을 극복하고 올바른 질서(사법질서 뿐만 아니라)가 바로서기를 <사법부>를 덮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하게 된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2-2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6-12-26 1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맛있는 저녁 드시고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6-12-26 19:0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후애님도 편안한 저녁 되세요

[그장소] 2016-12-26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촛불집회 ㅡ였나..김제동이 정리한 대한민국 헌법 ㅡ이야기를 듣고 , 많이 달달 공부했네 ㅡ이양반 , 그랬는데 .. 사법부 ㅡ 읽을만한모양이네요. 전 이삼년 전에 한번 쭉 살펴본 헌법 ㅡ 사법과 는 다를까 ㅡ모르겠네요. ^^

겨울호랑이 2016-12-26 22:08   좋아요 2 | URL
「사법부」에는 헌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상식에 벗어나는 월권과 편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다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헌을 한다면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게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점을 제기한 책이란 생각도 들었구요... ^^: 시사성이 강한 책이라 두 번까지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긴 했지만, 사법현실을 돌아보기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12-27 08:20   좋아요 1 | URL
사법부 체계에 가장 많을것 같은데 ㅡ그 틈을 머릴굴려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죄가 안되는 방법을 쓰는 사람들은 ㅡ요 . 적은 늘 먼데 있지 않다...라니..ㅎㅎㅎ쓰임이나 용도를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이 오.남용 할거 같아서요.
ebook 나오면 한번 들어봐야징!^^ 정리.애쓰셨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12-27 10: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장소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장소] 2016-12-27 15:04   좋아요 1 | URL
아핫~ 겨울 호랑이 님도 굿굿하~데이!^^

cyrus 2016-12-27 1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16-12-27 19:50   좋아요 3 | URL
cyrus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cyrus님께 축하드립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2017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2016-12-29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30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30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12-30 19:43   좋아요 1 | URL
아직 낫지 않으셨군요.. 편한 마음으로 푹 쉬시고 새해 맞이 하셨으면 합니다. 김영성님 지난 한 해 격려와 관심에 깊이 감사합니다. 빨리 완쾌하시기 바라며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