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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대표작이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p40)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논란이 많았다는 말을 다 읽고 나니 이해하게 된다. 마치,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의 소설<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서 화성인의 정체가 '큰 세다리 괴물'이 아닌 우리보다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는 소설 속 주인공만큼이나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리라.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구성 요소 분자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유전자가 우연하게 생겨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소진되는 구성 요소 분자를 대신하여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는 운반자(개체)를 만들어 냈고, 유전자는 생존하기 위해 진화를 한다.
유전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p72) 그렇지만, 유전자는 계속 존재 하기위해 유전자는 개체의 뇌와 신경계를 프로그램을 통해 통제한다. 그러한 통제의 결과 개체는 '이타적'으로 또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동물의 행동은 세대간/성(性)간/사회적으로 보이는 개체의 행동(배신, 사기, 협력, 보복등)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경우에는 '문화'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p318). 인간의 경우 기존 동물/식물계에는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 전달의 단위가 필요하며, 저자는 이를 밈(meme)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유전자의 운반자'로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밈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주체적으로 우리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과학서적은 많이 읽지 못한 편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걱정했으나, 저자가 일반인들을 고려하여 상세하게 내용을 풀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저자의 배려는 복잡한 수식없이 '진화'에 대해 풀어가는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대신, 간단한(?) '게임이론(Game Theory)'를 사용하여, 유전자의 선택을 설명한다. 흔히,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게임 이론 중 책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은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점에 이른 상태의 전략이다.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은 게임 이론에서 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를 말한다.(위키피디아)
다른 이야기지만, '내쉬 균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에 나오는 내쉬 (John Forbes Nash, Jr.)에 의해 우리에게도 다소 유명하다. 러셀 크로우가 열연한 작품으로 경제학과 수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추천한다.(진정한 천재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감히 나 같은 범인(凡人)이 경제학을 전공하다니..' 하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장혁, 박소담이 주연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와는 한국에서 상영했다는 사실 빼고 관계가 없다.
이 책을 읽고서 전반적으로 '진화론'과 그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창조라는 영역에서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서양 신학(神學)과의 갈등 정도의 막연함이 진화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 인식이었다. 그렇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거의 모든 학문분야가 '진화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보자.
'유전자-개체'의 관계를 '개체-사회'로 확대시킨다면, 개인 윤리학과 공동체 윤리학이 과연 같은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주로 공동체 윤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체 윤리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진화론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신학(神學)적으로는 구약시대에 논의된 유대민족의 구원 문제가 과연 신약시대 개인의 구원과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歷史) 적으로는 역사의 발전 문제와 유전자의 우열관계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 현상에 대한 유전학적인 관점에 대한 접근도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 사조에 대한 생물학적인 접근도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있어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은 다분히 절제되어 있지만 여기에 담긴 내용을 통해 지금까지의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책을 충분히 느낀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hapter13 유전자의 긴 팔'에서 예고한 저자의 또 다른 저서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서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中>
이규보가 말한 도(道)는 진화론이 아니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후의 독자라면 '개'와 '이'의 죽음이 '개체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동일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시점에 자기 복제자(replicator)가 우연히 생겨났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그 탄생은 전혀 우연히 발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어날 성싶은 일과 일어날 성싶지 않은 것을 판단할 때 수억년이라는 세월은 우리에게 낯선 시간이다. 만약 1억년 동안 매주 축구 경기 내기를 하면 분명히 여러 차례 횡재할 수 있을 것이다.`(p58)
`자기 복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 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p64)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p113)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제어 하에 있으며, 그 제어가 간접적이기는 하나 그와 동시에 매우 강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p123)
`유전자는 우두머리 프로그래머이며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로 심판받는다.`(p127)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보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p335)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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