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 세계의 시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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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world economy)는 지구 전역에 걸쳐 있다. 시스몽디가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전지구적인 시장" 또는 "함께 교역을 하여 오늘날에는 일종의 단일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인류 전체, 또는 인류의 어느 부분 전체"를 가리킨다. 세계-경제(world-economy)는 우선 전지구의 일부분에만 관련된 말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경제적으로 독자적이며, 핵심적인 것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고, 내부적인 연결과 교역이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단위를 말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18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3-1>에서는 세계-경제 체제에서 헤게모니 hegemony)에 대해 다룬다.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2019)의 세계체제론(world-systems theory)에서 다루어진 중심부-주변부의 문제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권 : 세계의 시간> 에서 패권국의 흥망으로 그려진다.


 세계-경제에는 일정한 경계가 있는데,  그 경계선은 마치 해안선이 육지로부터 바다를 구획하듯이 그 세계-경제를 규정한다 ; 세계-경제는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도시와 하나의 지배적인 자본주의가 맡고 있다. 여러 개의 중심들이 형성된다면 그것은 이 세계-경제가 아직 젊거나 아니면 반대로 퇴화해가거나 격변을 겪고 있다는 표시이다 ; 이 공간 내에서는 각각의 개별 경제들이 계서제를 이루고 있다. 그중 어떤 것들은 가난하고 어떤 것들은 소박한 수준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중심에 위치한 하나의 경제만이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이로부터 불평등, 전압차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이 전체를 작동시키는 힘이 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24


 브로델의 3층 구조에서 아래 층위인 물질문명과 시장경제에서는 다양한 극점(極點)이 존재한다. 지배층의 사치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활발한 교역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최상위 정점(頂點)만이 존재한다. 정점이 갖는 헤게모니는 역사를 통해 도시에서 점차 영토형 국가로 넘어가는 진행과정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도시의 패권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어 안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며 마무리되고, 이후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한 네덜란드 패권이 영국(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으로 이전되며 영토형 국가의 승리로 완결되는 것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계서제를 내포하며, 그 계서제의 최상층을 차지한다. 자본주의가 이 계서제를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가 제일 마지막에 개입하는 곳에서는 하나의 중개점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은 이질적이면서도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을 사회계서제로서 이것은 자본주의의 활동을 확장하고 활성화시키는 일을 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82


 영토국가는 잘 성장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빨리 성장하지 못했고, 여기에 더해서 14세기의 장기적인 경기후퇴가 악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여러 국가들이 곤경을 겪고 해체되었으며 그 결과 도시들이 다시금 활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도시와 국가는 여전히 잠재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도시가 국가를 지배할 것인가, 국가가 도시를 지배할 것인가? 이것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120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전 단계 패권국가의 요건이 다음 세대에서 계승되었다는 점이다. 베네치아 상회, 안트워프의 채무증서,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의 거대 보관 창고 등은 한 시대를 장식하고 소멸되는 요소가 아니었다. 세계-경제 체제에서 이들이 갖는 경쟁력은 분명했고, 이들의 장점을 갖는 자본(資本)은 도시와 국가의 흥망과는 무관하게 빠르게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경쟁력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에서 보이는 초국가적 월경(越境.)행태는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갖는다. 


 전국시장(marche national ; national market)이라는 고전적인 개념만큼 자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주어진 한 정치적 공간 속에서 획득된 경제적 응집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공간이란 어느 정도 넓은 범위, 무엇보다도 영토국가(Etat territorial) 또는 지난 날에 흔히 민족국가(Etat national)라고 불렀던 틀을 가리킨다. 이 틀 내에서 정치적인 성숙이 경제적인 성숙보다 앞서 있었으므로 우리가 알고 싶은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해서 이 국가가 경제적으로 내적 응집성을 얻었으며, 또 나머지 세계에 대응하여 하나의 단일한 총체로서 행동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도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경제적인 총체들이 뒷전으로 밀려남으로써 유럽 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현상의 기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 전국시장의 등장은 당연히 유통의 가속화, 농업 및 비농업 생산의 증대 그리고 총수요의 확대에 조응하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385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에서 영토형 국가의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전국시장의 구축을 지적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이후 명운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브로델은 백년전쟁(1337 ~ 1453)을 통해 프랑스 내 자국의 영토를 모두 잃고 섬나라로 전락한 영국은 이로부터 경제적 응집력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프랑스는 광대한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 늦었기에 자본주의 단계에서 영국에 뒤처질 수 밖에 없었고, 산업화단계를 통해 그 차이는 넘어설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러한 브로델의 분석으로부터 자본주의가 갖는 근원적인 불평등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계 체제 내에서 중심부, 중심부에서도 런던, 암스테르담과 같은 핵심 도시와 외부를 연결하는 무역로가 혈관(vein)과 같이 연결된 체계 - 동맥을 따라 금과 은의 화폐가 주변부로 흘러나가고, 정맥을 따라 각종 노동력과 상품이 흘러 들어오는 세계 체제 - 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수력발전에서 높은 낙차가 더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요건인 것처럼. 


  실제로 헤게모니 국가들은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활용해 체제의 발전기를 가동시켜왔음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이른 시기에 이미 결정된 영국의 패권. 이제 우리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마지막을 남겨놓고 있다. 브로델은 마지막 권을 통해 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다음 권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프랑스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희생자, 즉 자신의 두께, 자신의 양, 자신의 거대성의 희생자인 것이다. 물론 크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점을 가지고 있다 : 프랑스가 외침을 겪을 때마다 잘 견뎌낸 것은 우선 나라가 크기 때문이었다 ; 외적들이 이 나라를 관통해서 심장부를 공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한 연결들, 정부의 명령전달, 내부의 운동과 맥동, 기술의 진보 역시 그 넓은 땅을 가로지르는 것이 힘들다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전염성이 강한 혁명적 운동이었던 종교전쟁도 한번에 이 공간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451


 영국이 어떻게 응집성 있는 전국시장이 되었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은 곧 다음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 유럽의 확대된 경제 속에서 어떻게 영국의 전국시장이 자가 자신의 무게와 주변 상황을 이용하여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서서히 형성된 이 우의는 위트레흐트 조약(1713)때부터 명백하게 천명되었다 ; 영국의 우위는 7년 전쟁이 끝나는 1763년에 분명해졌고, 베르사유 조약(1783) 직후에 더 이상 논의의 여지 없이 확고히 굳어졌다. 이 첫번째의 승리는 산업혁명이라는 다음번의 승리를 불러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1>, p490

베네치아에서 상업은 무엇보다도 레반트 무역을 의미했다.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는 상업이므로 베네치아의 거대한 화폐자본이 여기에 투입되어서 시리아로 갤리 선단이 떠나고 나면 도시 내에 현찰이 문자 그대로 바닥나는 정도였다. 자본의 순환은 제법 빠른 편이어서 6개월 혹은 1년 정도면 회수되었다. 그래서 선박의 왕복이 이 도시의 모든 활동에 리듬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베네치아가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레반트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있고 상인들의 행동 전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 P179

핵심적인 것은 안트워프에서 채무증서(cedule obligatoire), 어음 제도가 가진 극도의 편의성과 효율성이다. 편의성이라는 것은 환어음이 안트워프의 거래에 유입되었을 때 지참인 어음으로 변형되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통용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효율성이라는 것은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 유통이 중대한 문제 - 동시에 교묘한 성격의 문제로서 교환의 출발에서부터 제기되는 문제 - 를 해결해준다는 점을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할인(escpmpte), 즉 시간의 차이에 따른 대가를 말한다... 이것은 기존의 환어음이나 은행의 전통적 체제 바깥에서 형성되어 크게 발달한 유연한 체제이다. - P196

유럽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 작은 네덜란드는 과도하게 도시화, 조직화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었다(p245)... 네덜란드 도시들은 함께 살기 위해서 공동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도시들은 하나의 세력집단을 형성했고,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고 연결망들을 구성했으며 피라미드 모양의 중첩된 여러 층 중에서 하나를 차지하는 식으로 계서제를 이루었다. 이 말은 이 도시들의 중심에, 또는 정상에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되 동시에 그 도시들보다 비중이 크고 구속력을 가지는 지배적인 도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덜란드 연방의 도시들에 대해서 암스테르담이 가지는 위치는 베네치아가 테라피르마의 도시들에 대해서 가지는 위치와 비슷하다. - P247

근대 초에 영국인들이 여하튼 자기 나라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것은 자신의 대지, 숲, 황무지, 늪지를 개간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은 스코틀랜드와의 위험한 변경,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서 두려움을 주는 아일랜드, 15세기 초에 일시적으로 독립을 획득했고 그 봉기가 진압된 이후에도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던 웨일스가 불러일으킨 걱정거리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결국 영국은 자신의 소규모 영토 내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므로 표면적으로는 패배를 겪었으나 이것은 다음 시기에 전국시장이 급속도로 형성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 P492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화(pound sterling)는 다른 많은 명목화폐(monnaire de compte)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다른 나라의 명목화폐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국가에 의해서 증대되며 불리한 콩종크튀르에 의해서 큰 변화를 당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1560-1561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서 가치가 안정된 이후 더 이상 변화하지 않았으며 1920년까지, 더 나아가서 1931년까지 내재적인 가치를 유지했다(p495)...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다 ; 파운드 화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영국의 위대함의 핵심요소였다. - P496

영국은 계속해서 은을 수출하고 금이 유입되는 곳이었다. 이 체제는 18세기 내내 지속되어서 사실상 금본위제로 연결되었다. 금본위제가 명백하게 천명되는 것은 1816년의 공신적인 선포 이후의 일이다. 이제 파운드 스털링 화는 소브린 금화(gold sovereign)가 되었다. 그러나 1774년부터 이미 금은 은에 뒤이어 확실한 화폐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래 사용된 금화는 회수해서 정확한 무게대로 재주조했지만 은화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비싼 처리과정을 적용하지 않았으며 25파운드 이상의 금액에 대한 채무변제(discharge payment)로는 은화를 받지 않았다. 파운드 스털링 화는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금에 연계되었고 그리하여 갑자기 새로운 안정화 기능을 담당했다 - P503

공채는 영국이 승리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것은 영국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거액의 자금을 확보해주었다. 이것은 영국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거액의 자금을 확보해 주었다. 이사크 데 핀토는 이점을 명백하게 이야기했다(1771) : "[국채]이자를 꼼꼼히 그리고 거르지 않고 정확히 지불한다는 것, 또 의회가 보증을 선다는 것이 영국의 크레딧을 만들었고 결국은 유럽을 경악시킨 국채발행 정책을 수행하도록 했다." -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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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22-06-14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이제 거의 다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유럽사에 관심이 있다면 브로델을 안 읽을 수가 없는데, 몇 년전에 지중해 시리즈 다 사놓고 1권 조금 읽다가 포기했어요...물질문명과 자본주의도 책은 다 사놓았었는데......지금은 지중해도 물질문명도 모두 중고처분하고 없습니다만..... ㅜㅜ 뭐 언젠가 또 살 겁니다. 아마. ㅋㅋㅋㅋ 제가 원래 샀다팔았다샀다 전문입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죠. 다시한번 굳은 다짐을 해봅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22-06-14 14:21   좋아요 2 | URL
이번에 리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대작이라 정리하다보니 빠져나가는 것이 많네요... 브로델의 저작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차례 정독해야 함을 깊이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읽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붉은돼지님 말씀처럼 브로델 역사학에는 역사적 층위가 있어 쉽게 본론으로 나가지 않고 돌아가는 면이 있어 내용도 많고, 쉽게 내용이 잡히질 않네요. 일반 독자의 처지에서는 여러차례 읽는 방법밖에 없는 듯합니다. 저도 시간을 두고 다시 볼 계획입니다. 나중에 붉은돼지님 리뷰로 제 이해가 증진되길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