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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예수는 대중의 지상적 메시아로서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력한 존재로 비쳤던 것이다. 제자들조차 대부분 그를 저버린 것(요한 6,66)은 그가 자신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서의 중요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무력했던 예수가 어째서 죽은 후에 하느님의 아들로 간주되었는가? 그가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저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이 왜 그 후에 목숨을 걸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무력한 예수가 영광의 그리스도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어떻게 강한 신념과 신앙을 지니게 되었을까?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8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1923~1996)의 <그리스도의 탄생>은 전작 <예수의 생애>에 뒤이어 예수의 죽음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을 다룬다.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메시아. 엔도 슈사쿠가 바라본 예수의 이미지는 무기력한 한 명의 인간이다. 너무도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에 주변으로 배신을 당하고 결국은 죽음을 당한 한 인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류사의 거대한 종교로 부활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를 쫓아가는 작가의 여정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제자들은 굴욕적인 타협으로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 후에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평생 스승이 자신들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부끄러움과 회한이 남았던 것이고, 그것이 십자가에 대한 이미지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p16)... 베드로가 의회와 그러한 타협을 한 이튿날, 예수는 군중의 욕설과 멸시를 받으며 좁고 무더운 예루살렘의 길을 걸어 처형한 골고타로 향했다. 그동안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들의 배신을 되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예수가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감정은 그들에게 관념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17
슈사쿠는 스승의 마지막 순간에 도망친 제자들의 회개(Metanoia)에 주목한다. 자신들의 배신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평소 자신이 강조한 '사랑'에 충실한 스승의 모습. 이러한 예수의 죽음은 생전이 아닌 사후에 온전하게 제자들의 마음에 뿌리내리게 되고, 비로소 믿음이 결실이 되어,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듯 내적 부활(復活)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모(metamorphosis)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 동기를 설명한다.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이들, 자신을 저버린 제자들에 대해 원망과 증오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징벌하도록 하느님께 청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말들을 전해들은 제자들을 충격을 받았다(p20)... 그들은 그때 비로소 자신들이 예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자들은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생전에 예수가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통해서 예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지 조금씩 알 듯했다(p21)... 예수는 죽었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 그들 가운데 생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예수는 다름아닌 그들의 마음속에 부활한 것이다. 부활의 본질적인 의미 중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를 재발견했다는 점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22
원시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저버리고 배신한 비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배신한 제자들을 미워하기는커녕 끝까지 사랑하려고 했던, 어머니와 같은 예수의 이미지에서 생겨난 것이다. 배신한 자식과 사랑을 베푼 어머니와의 관계, 거기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는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으며 인간의 그러한 나약함, 가련함을 이해해주는 동반자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고, 그 동반자 예수가 다시 자신들 옆에 와줄 것이라는 신념이 생겨났다. 그리스도가 되기 전까지 예수가 지닌 이미지는 모두 생생한 제자들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63
그렇지만, 스승의 위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제자들을 완전하게 변화시킬 수 없었다. 슈사쿠는 제자(사도)들이 예수의 죽음 후 골방에 숨어 두려움에 떨던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바라본다. <사도행전>의 기록과는 달리 그들은 세상끝까지 복음(Gaspel)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승을 죽게 만든 이들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성전의 중요성과 관련해서는 사두가이들과, 율법의 중요성과 관련해서는 바리사이들과 부딪히지 않고 유대인들 사이에 조용하게 스스의 가르침을 되새기던 이들. 이것이 슈사쿠가 바라본 소수의 유대교 분파에 지나지 않던 것이 초대 그리스도교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평온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불을 던진 사건이 바로 스테파노의 순교와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등장이다. 성전이 아닌 사랑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스테파노는 사두가이파의 교리와 대립하고, 율법 대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바오로는 바리사이와 대립하며 비로소 유대교의 분파가 아닌 세계 종교로서 변화되었다.
루가는 명백히 스테파노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에 근거해서 묘사하고 있다. 예수가 재판을 받고 예루살렘 성 밖의 골고타에서 처형되었듯이 스테파노 또한 부당한 재판을 받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가 처형된다. 이 점은 저자 루가의 배후에 있었던 후대 원시 그리스도교 안에 스테파노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p93)... 성전보다도 사랑을 위대하게 여긴 예수를 본받아 스테파노는 성전 절대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베드로나 사도들보다 스테파노가 예수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95
바오로는 우리 인간이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것과 인간 행위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서 선한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선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자신의 독선이며, 그것이 상대를 상처 입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p152)... 바오로의 그리스도론論이 전개된다. 율법은 인간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다. 죄로부터 벗어나고자 계율과 율법을 지키지만, 돌을 던진 수면에 물결이 일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죄에 휘말린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행위의 비애, 그리고 원죄의 고통이 있다.. 그런 인간을 원죄에서 해방시키는 존재, 그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하느님은 자신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속죄물인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153
엔도 슈사쿠의 <그리스도의 탄생>은 무기력한 한 사내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세계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그려낸다. 십자가에서의 슬픈 절규가 후대에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의 합창이 되는 원동력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적이 증표로 관여되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의 침묵에 대한 인간들의 끊임없는 질문이 신앙(信仰)을 고양시켰음을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여준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를 들 수 있다. 이 말은 시편 22편의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비애에 찬 하소연이지만, 시편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비애의 하소연이 이윽고 "당신의 이름을 겨레에게 알리고 예배 모임 한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리니"라는 찬가讚歌로 바뀐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말은 결코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의 첫 부분인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18
흔히 독수리로 표현되는 <요한복음>에는 대표적인 7가지 기적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이 복음서에서 카나의 혼인 잔치, 죽어가는 고관의 아들, 중풍 환자, 빵과 물고기를 가진 소년, 물 위를 걸음, 태생 소경, 라자로의 부활 등이 서로 연관맺으며 점층적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렇지만, 이와는 조금은 다른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인상깊었던 설명이 있어 옮겨본다.
그것은 7가지 기적 중 마지막이 라자로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마저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줄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실천이며, 기적이라는. 이는 예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 후 나타났던 악마가 결코 할 수 없는 경지이며 비로소 7에서 완성되는 설명으로 기억된다. 10년도 더 전에 들었던 강의라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느낌은 강렬했었다. 그리고, 아마도 엔도 슈사쿠의 예수도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는 이외에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절망에 빠진 유대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쳤을 그들의 모습에서 <침묵>의 로드리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예수의 생애>에서 <사해 부근에서> 던져진 질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이들을 연관시켜 보려한다. 어쩌다 보니 리뷰의 마무리가 페이퍼의 인트로가 된 것은, 예수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되는 구도와 비슷해졌다...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소중한 곳이 불타 버리고, 그 지성소도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묵을 지켰으며, 그리스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원시 그리스도교에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지옥과 같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즉, 하느님의 침묵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공동체에서 이탈하거나, 아니면 그 침묵의 이유를 되물음으로써 신앙을 더욱더 굳게 간직하는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 , p231
당시 제자들은 이사야서에서 가혹한 운명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의 부흥이 아니라 예수 자신의 부활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온다! 자신들에게 돌아온다! 이러한 기대가 이때부터 제자들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그들은 스승의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침묵의 의미를 부활이란 말에서 찾으려 했다(p38)... 부활이나 재림은 당시 유다인에게 일반적인 관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관념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관념이 깊이 잠재되어 있었던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죽음과 재생이라는 관념이 유다교 주변의 여러 동방 종교 가운데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 P39
동방 종교와 신약성서와의 관계를 분석한 학자들의 책을 대할 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동방 종교가 지니고 있는 죽음과 재생의 감각과 유다교에 있는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대가 제자들과 그 배후에 있는 갈릴래아 집단의 의식 속에 뒤섞여 하나를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비로소 처참한 예수의 죽음에 의해 촉발되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유다교의 예언서 속에서 부활의 근거를 발견하려는 가운데, 갈릴래아의 서민들은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감각에 의거하여 예수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는 결국 철저한 일신교 一神敎인 유다교적인 요소에 범신론적이고 비유다교적인 요소가 섞였음을 의미한다. - P41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이루어졌던 공동체의 활동은 스테파노 사건으로 뜻하지 않게 이 지방까지 퍼져가게 되었다. 그것은 사도들의 선교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상황 전개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결과적으로 좁은 예루살렘에 한정되었던 예수의 복음은 바깥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가게 되었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전개될 그리스도교 선교의 최초의 씨앗이 스테파노 사건에 의해서 뿌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P100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의 두 가지 내용에서 떠올릴 수 있는 내용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두 가지 내용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당시 상황은 이방인 문제를 둘러싸고 바오로와 보수파 제자들과의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있었고, 그로 인한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타협안을 제시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타협안이란 안티오키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계속해서 의연금 혹은 헌금을 보내는 것으로 이 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안티오키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종속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안티오키아의 선교는 용인되었지만, 구체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이방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 P144
종교가 조직화, 체계화되고 신학神學이라는 이론으로 신神에 대한 수수께끼를 해명하고자 하여 결국 외형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인생과 세계에 대한 의문과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순간 쇠약해지고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중세中世라는 시대가 그리스도교 신학의 확립기이자 쇠퇴기이기도 했다는 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시 그리스도교는 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의문과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신앙은 쇠퇴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스도는 왜 재림하지 않는가?‘, 이 두 가지 과제를 풀 수 없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고뇌하며 발버둥치고 괴로워했으며, 이 고통들이 신앙의 에너지가 되었던 것이다 - P232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예수를 신격화하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과정을 요약해 본다면, 그들은 처음에 자신들에게 제기된 ‘하느님의 침묵‘이라는 수수께끼와 마주하는 가운데 영광스러운 예수의 재림이라는 해답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예수를 구름을 타고 나타날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렀는데, 그 칭호가 서서히 메시아로 바뀌고,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라는 유다교 전승에 의해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결국 예수는 최초에는 하느님에게 선택된 뛰어난 예언자이자 랍비였지만, 평생에 걸친 노력과 수난, 참혹한 죽음의 대가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격을 받았다는 것이 초기 제자들의 생각이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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