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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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눙력주의 meritocracy는 고유한 언어를 형성할 정도로 일관된 용어와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 언어는 여러 맥락에 걸쳐 되풀이되어 이 시대 모든 시민에게 친숙한 삶의 형태가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나게 강력한 마력을 얻었다. 그 광채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시선을 잡아끌어 비판적 판단을 잠재우고 개혁을 억누른다. 능력주의는 그 자체를 기본 상식으로 내세우며 일상 경험의 바탕에 파고 들어감으로써 현재 그 논리에 직면한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해악을 은폐한다. 실제로 능력주의 때문에 혜택을 분배하는 그 외 방식은 부당하거나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_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 1969 ~ )의 <엘리트 세습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은 전통적인 귀족정 aristocracy을 대신한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기존의 귀족정이 피지배계급의 수탈과 착취에 기반한 정체(政體)라면,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 근거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과 희생을 감내하기에, 이러한 수고에 대한 대가는 정당한 것으로 일반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주의를 과연 공정하고 효율적인 제도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늘날 능력주의는 엘리트와 중산층을 갈라놓고 있다. 중산층은 기득권에 원한을 품고 엘리트는 특권 계층의 부정한 특혜에 집착한다. 중산층과 엘리트가 공유해야 하는 사회는 쌍방 비난, 무배려, 기능 장애의 소용돌이에 말려들도록 있다. 이런 모든 해악이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능력주의의 마력 때문이다. _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좋은 스펙을 바탕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더 많은 소득을 가져가는 것. 크게 평등(平等)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주의는 결과적으로 능력의 세습을 통해 새로운 계급을 양산하며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능력주의가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배경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마코비츠의 분석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크게 노동시장과 교육시장에서 나타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많은 부문에서 경영진의 직접 통제 및 역할 수행이 가능해지면서 중간관리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중산층을 형성하던 이들의 감소는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게 되었고, 중산층과 엘리트 층사이에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신분상의 틈이 생겼다. 점차 공고화되는 이러한 노동시장과 교육시장의 순환관계 속에서 틈은 점차 깊어졌다. 한편 이러한 현 세대의 틈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의 틈으로 전이된다.


 신기술이 중간 숙련도를 갖춘 인간 근로자를 대체하고 20세기 중반의 경제를 이끌었던 중산층 일자리를 없앤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기술이 미숙련 근로자와 특히 초숙련 근로자 모두를 보완하고, 숙련도가 가장 낮은 근로자와 특히 가장 높은 근로자의 수요를 증대함으로써, 오늘날의 생산을 지배하는 다수의 암담한 일자리와 극소수의 번지르르한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와 동시에 혁신이 엘리트 근로자와 나머지 근로자를 갈라놓는 기술 경계선을 숙련도 분포의 윗부분으로 끌어올리는 경향이 심화된다.  _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기술 변화가 가져온 사회 구조의 변화에서 학위(學位 degree)는 하나의 '신호'로 작동한다. 자동화가 가져온 일자리 감소와 소수의 경영진에게 집중화된 업무는 선택된 이들에게 돌아가야 했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증할 수 있는 학위라는 보증서다. 차별화된 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비과세 되는 재테크 방식이 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은 상속되었고,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능력주의는 경제 불평등을 변화시켰듯이 정치도 변화시켰다. 평등주의자들은 그 변화를 뒤늦게야 인식했으며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에 공백이 생겨났고, 그 공백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감지하고 능력주의에 대한 불만을 이용하러 나선 기회주의자로 메워졌다. 선동가들은 부패한 세력을 비난하고 취약한 외부인을 공격함으로써 중산층의 분노를 부추긴다. 그들은 이런 공격을 통해 신화에나 나올 법한 황금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_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이처럼 능력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폐해는 명백하다. 사회의 두터운 허리를 형성하는 중산층 뿐 아니라 엘리트 계층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엘리트 계층에 집중된 과도한 업무와 책임은 그들에게도 '인간소외'라는 부작용을 가져오기에 결국 능력주의는 사회의 전반적으로 불행으로 작동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도 제안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각자 읽는 것으로 넘기도록 하자...


 <엘리트 세습>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과적인 평등에 앞서, '왜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일이 몰리는가?' 라는 기회균등의 원칙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실업의 문제를 자발적인 요인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관점을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능력주의는 경제 불평등을 변화시켰듯이 정치도 변화시켰다. 평등주의자들은 그 변화를 뒤늦게야 인식했으며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에 공백이 생겨났고, 그 공백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감지하고 능력주의에 대한 불만을 이용하러 나선 기회주의자로 메워졌다. 선동가들은 부패한 세력을 비난하고 취약한 외부인을 공격함으로써 중산층의 분노를 부추긴다. 그들은 이런 공격을 통해 신화에나 나올 법한 황금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능력주의에 대한 불만에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능력주의의 덫은 중산층의 좌절과 엘리트의 소외를 돕는 선동가들, 인생 상담 코치들보다 훨씬 더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능력주의의 덫이 그려낸 그림을 보면 능력주의가 불평등뿐만 아니라 재분배까지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결과 불평등과 재분배는 더 이상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을 다시 세우는 일에 엘리트의 자원을 빼올 필요가 없으며 구멍 뚤린 통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능력의 상속은 현재 일반적인 유산에 적용되는 재산세에서 완전히 면제된다. 부유한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는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사립학교와 대학은 공익 자선단체와 마찬가지로 세금 혜택을 누린다. 이런 관행은 능력주의 교육을 사실상 엘리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조세 회피처로 만든다.

노동시장은 ‘암담한 직업‘과 ‘유망한 직업‘으로 양분되었다. 즉각적인 보상도, 승진에 대한 희망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암담하며, 드러난 광채가 숨겨진 고통을 가린다는점에서 번지르르한 것이다. 기술의 그림자는 오늘날 중간 숙련도 직업과 암담한 직업을 뒤덮은 어둠의 원인이다. 기술의 번쩍이는 빛은 번지르르한 직업에 얄팍한 광채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이 진보할수록 기술 진보에 따른 임금 둔화의 영향을 받는 직업이 증가하는 한편, 기술 진보에 따른 임금 팽창의 영향을 받는 직업은 점점 더 줄어 들고 있다.

훈련과 교육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부유한 어린이들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어린이들을 교육 단계마다 체계적으로 앞서나간다. 아동기 전반에 걸쳐 부유한 어린이의 인적자본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이들의 걸출한 성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그런 투자는 아동기 이후 청년기와 성년기까지 능력주의적인 선별 기준과 맞물려 과도한 투자와 뛰어난 성과를 한층 더 강화하고 연장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그 끝에 다다르면 차세대 사위 근로자 절대다수가 현 세대 상위 근로자의 자녀로 채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오늘날의 왕조는 능력 상속을 토대로 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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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5-12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부에 따른 교육의 세습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장관이 자식의 진학을 위해 다
양한 방식의 편법을 자행해 왔으면
서도 뭐가 문제냐고 하는 장면도
어이가 없었구요.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싶더군요. 그들의 선민의식에 정말...

아주 대놓고 계급제 사회로 가자고
외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12 11:40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권모씨의 발언은 대중의 공분을 충분히 살 만한 내용입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 이미 ‘계급제 사회‘는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을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여론 악화의 이유라 생각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이 ‘훌륭한 톱니바퀴의 부속‘이 아닌 각자가 가치있는 존재로 서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이와 달라 씁쓸하게 여겨집니다...

Redman 2022-05-12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를 다루는 책들이 요새는 많다는 정도를 넘어서 쏟아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 책들을 다 읽어야 하나 싶습니다.전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습니다. 샌델의 책 같은 이론적 웅장함이나 능력주의에 대한 이 책만의 특별한 분석이나 관점이 있을까요?

겨울호랑이 2022-05-12 19:51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엘리트 세습>은 이론보다 르포 형식으로 구성되어 미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