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4년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ual Wallerstein, 1930 ~ 2019)은 근대 세계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볼 것을 제안하는 <근대세계체제 1 The Modern World- System>을 펴냈다. 세계는 노동양식에 따라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로 나눌 수 있고,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세계-경제체제가 1550년경 형성되어 확대 발전한 결과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체제의 중심부는 세계적인 분업체제에서 수익성이 높은 부분들을 차지하고 나머지 지역들에서 잉여를 흡수한다. 그리고 그 작동 과정은 국가기구와 자본 사이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272/354

설혜심(薛惠心)의 <인삼의 세계사>는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케네스 포메란츠 (Kenneth Pomeranz)의 <대분기 Great Divergence>와 안드레 군더 프랑크 (Andre Gunder Frank) 의 <리오리엔트 ReORIENT : C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와 관점을 같이 하는 책이다. 차이가 있다면, 앞선 두 권의 책이 거시사(Macrohistory) 측면에서 시대를 분석한다면,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人蔘)의 미시사(Microhistory)를 통해 월러스틴의 체제론을 비판한다는 점일 것이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임노동이 우세한 중심부에 의해 주변부의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형태로 세계 체제가 유지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주변부의 원재료, 금/은 공급과 중심부의 상품의 교역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월러스틴 세계체제의 주요 내용이지만,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이라는 당시 최고의 명품(名品)의 소비지와 생산지 모두 유럽이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적어도, '인삼'이라는 품옥에 있어서 중심지는 동북아였고, 유럽은 주변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인삼'은 결코 계륵과 같은 상품이 아니라 누구나 갖기를 열망하는 품목이었다는 점에서 '인삼의 중심부'가 세계자본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미국이 직접 인삼 수출에 나서게 되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삼은 그동안 영국이 중국으로 수출했던 주요 상품으로, 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터라 영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 교역을 막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121/354

면화, 아편 등을 통해 현지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영국동인도 회사도 쉽게 확보하지 못한 상품, 신생독립국으로서 재정, 산업 기반이 약했던 초창기 미국이 낮은 품질의 인삼 수출을 통해 국제 무역을 참여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주변부' 유럽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함께, 대규모 은을 수탈당했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세계무역의 주체로서 동아시아 3국의 위상과 함께 중간교역지로서 조선(朝鮮)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고요한 은자(隱者)의 나라가 아닌 개성의 인삼 상인의 모습을 통해 근대 시기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음을 미루어 추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18세기 중반) 일본에서 통용되던 은(銀)화의 순도가 30% 내외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순도 80%의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은 은의 배합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그만큼 일본이 조선임삼을 수입하려는 의지가 강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특주은을 주조하는 데 매년 은 5.3톤을 사용했는데, 이 은은 조선에 머물렀다기보다는 다시 인삼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갈 운명이었다. 주경철을 이러한 은의 이동을 "세계 최대 은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 은 공급자(일본)를 조선의 인삼이 매개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파악했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90/35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적은 교역품인 '면화'와는 달리 '인삼'은 왜 잊혀졌는가? 저자는 인삼이 잊혀진 원인을 서구 과학의 한계에서 찾는다. 인삼의 효능을 실증적으로 입증하지 못했고, 야생 인삼의 고갈로 말미암아 '신포도 sour grapes'로 전락한 인삼의 역사를 저자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인삼의 세계사> 안의 인삼의 역사에서 서구 근대 사상에 미친 공자(孔子, BC551 ? ~ BC479)등 중국사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초기 계몽사상가들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 크리스티안 볼프(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1754)에게 미친 중국 사상의 영향이 은폐된 것처럼 인삼의 역사 또한 은폐되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인삼의 세계사>는 결코 어렵게 씌여지지 않았으면서도,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 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인삼(人蔘)은 서구가 교역했던 상품이었지만 결코 서구의 상품이 될 수 없었다.(p273)... 19세기 서구의 과학계는 유용한 이방식물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며 '근대적 의약학'을 성립해 나갔다. 하지만 인삼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데 실패했고, 인삼의 약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서양은 훨씬 오랫동안 인삼을 사용해온 동아시아의 지식체계에 도전할 수 없었다. 결국 서양의 의약학은 인삼을 자신들의 지식체계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오히려 그 효능을 폄하하며 배척해나갔다. 하지만 화기삼을 수출할 때는 동양의 의학적 전통에 기대어 그것이 고려인삼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양태를 보였다. _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p274/35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1-10-22 1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럽중심주의 시선에서 벗어난 서술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요. 찜해 갑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22 19:14   좋아요 3 | URL
근대경제사의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주는 책이라 프레이야님께서 좋은 시간을 가지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레이스 2021-10-22 1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네요^^

겨울호랑이 2021-10-22 19:16   좋아요 3 | URL
^^:) 우리에게 친숙한 인삼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재밌는 책으로 생각됩니다

그레이스 2021-10-22 19:20   좋아요 2 | URL
혹시 내일이 인삼데이여서 올리셨나요?^^

겨울호랑이 2021-10-22 19:22   좋아요 2 | URL
아,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대신 「토지」 독서챌린지 페이퍼와 연관되어 그 전에 마무리를 하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