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이 평등과 '인류 및 각 개인의 완벽함'을 가져다준다는 키발치크의 화학이나 치올콥스키의 꿈, 그 어디에 표현되어 있었든, 자연의 구속을 뛰어넘으려는 권력의 의지(will to power)와 혁명의 의지(will to revolution)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의 로켓공학이 별난 전향자들이 목격햇던 우주비행의 부속물로 시작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군사적 필수품이 되더니 후에는 경쟁하는 기술관료 체계의 시대에서 역동성의 상징이 되었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30


 월터 맥두걸(Walter A. McDougall, 1946 ~ )의 <하늘과 땅 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은 나치의 V2 개발로 촉발된 미 - 소의 로켓 개발 경쟁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특히,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Sputnik 1)의 성공이 가져온 충격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최초이자 유일한 원자폭탄 보유국이라는 타이틀도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위협받게 되었고, 급기야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소련에서 발사되면서 미국은 일대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crisis)로 인해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후 '기술관료'에 의한 테크노 크라시(technocracy) 중심으로 바뀌면서 미-소 우주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퇴임연설에서 기술관료제를 향한 흐름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그것은 현재 예언으로 읽히고, 그 구절들은 미래의 기억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메더리스처럼, 아이크는 '군산복합체'와 '과학기술 엘리트'의 성장에 따라 부과되는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정신적 위험을 경고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회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젠하워가 불만족스러운 추세를 기술의 행진의 탓으로 돌렸지만, 스스로도 그런 추세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1


 양립하는 냉전과 기술혁명에 의해 부과되는 위험은 도덕적이고 천하무적이었다. '좋은 시민들'은 고별연설이 경고했던 것처럼 군산(軍産)의 영향력이 언제 '부당하게' 또는 '잘못 준' 권력, '포획된' 공공정책이 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전에는 자율적이었던 과학적, 군사적, 산업적, 학술적 제도들은 그 자체가 국가 기술관료제로 점차 빠져들었다 - 아이크도 인정했듯, 기술관료제는 '절박한 필요'였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443


  1960년대 이후 미-소 양국의 우주시대는 이념의 대결장으로 전개된다. 1호 인공위성과 최초의 우주비행사의 타이틀도 소련에게 빼앗긴 미국은 이후 아폴로 계획(Project Apollo)을 통해 유인달탐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보다 시급한 현안에 들어갈 비용이 다수의 삶과 관련없는 사업에 투입되며 냉전(冷戰) 이후 우주전쟁 또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우주전쟁의 결말은 흐지부지되고 마는데, 월터 맥두걸은 <하늘과 땅>에서 '인류의 꿈'이 점차 기술관료라는 특정집단의 밥그릇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아폴로의 첫 번째 아이러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수단이 목적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수단 - 기술관료제 - 은 새로운 국가 의제 대부분의 항목에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달에 가는 것은 기술적 문제였다. 그러나 차별이나 빈곤, 심지어 도시의 황폐화를 해결하는 문제는 그 성격 자체가 달랐다... 아폴로의 두 번째 아이러니는 이 가장 위대한 우주임무가 우주정치에서 우주기술의 역할을 형성하는데 중심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엔외기권우주조약(UN Outer Space Treaty)은 스푸트니크 1호 후 거의 정확히 10년 후에 발표되었는데, 미래 우주 비행의 환경을 국가 기술관료제들 사이의 경쟁으로 고착시켰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2>, p339


 오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되었고, 목표 고도인 700km에 이르렀다는 점에서는 성공을, 3단 엔진의 조기 연소 종료로 인해 더미위성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실패로 평가받는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지만 평가받는 누리호 발사는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과학기술이 국력의 중요한 척도인 요즘 발사체 제조 기술의 보유는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강력한 협상 카드를 갖는다는 것이며, 군사적으로는 강력한 전술/전략 무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로 'Peace Maker' 작전을 선보이고, 바로 어제 20일에 대통령이 서울 ADEX 개막식에서 FA-50 전투기를 타고 참석한 이후, 고도의 미사일 기술이 필요로 하는 발사체의 발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어느 한 방향을 지향하는 메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도록 하자.


 국가 전략의 토대가 되는 기초자료는 국익의 핵심적 요소이다. 이때 국익은 지도력과 국익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의해 규정된다. _ 월터 맥두걸, <하늘과 땅 1>, p174


 

 20세기는 오늘날까지 네 번에 걸쳐 전쟁 기술의 중요한 혁신을 목격하고 있다. 적이 사용하기 이전에, 혹은 그것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개발하기 이전에 그런 기술 혁신을 이룩한 국가는 잠정적이나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p326)... 마지막으로, 핵무기와 발사 수단을 갖춘 국가들은 경쟁국들에 대해 어마어마한 기술적 우위를 지닌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1> , p327


 제공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자신은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반면에 적군이 비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공권을 장악한 국가는 적군의 항공 공격으로부터 자국 영토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적군의 지상 및 해상 작전에 항공 지원을 방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항공작전은 적의 지상군과 해상군을 그들의 작전 기지로부터 차단시킬 뿐만 아니라, 적국의 내부를 폭격하여 황폐화시킴으로써 적국 군민의 육체적/정신적 저항선을 붕괴시킬 것이다. _ 쥴리오 듀헤, <제공권> , p39


 앞서 말한 여러 의미가 국가 차원에서의 의미라면, 어느 집단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나로호의 과제를 풀기 위해 보다 많은 전문가와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기술관료제 중심으로 운영된 과거 미-소의 전철을 밟기 않기 위해서는 기술관료제에 대한 통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미제스(Ludwig von Mises(1881 ~ 1973)의 말처럼 관료제 자체는 가치 중립적일지 모른다. 또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의 말처럼 근대 국가에서 관료제는 필수적일지도 모르겠다. 관료제 자체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이를 통해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화되는 것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폐해를 잊었을 때  '원전 마피아'의 악몽을 다시 꾸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누리호 발사를 통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누리호 과제가 주어진 것은 아닌지를 과거 미-소 우주경쟁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근대의 거대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면 존속할수록 그만큼 더 기술적으로 관료제적 기초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것, 게다가 근대적인 거대 국가가 크면 클수록 또 특히 더욱더 강대국이면 강대국일수록 또는 강대국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무조건 관료제적 기초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p52)... 무엇보다도 관료제화는 전문가 훈련을 받았으며, 또 끊임없는 실습을 통해 더욱더 자신을 훈련시키는 직원들에게 개별적인 일을 할당해, 순전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행정 작업 분할의 원리를 실행할 수 있는 최적조건을 제공한다. _ 막스 베버, <관료제> , p6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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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2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공위성 🚀 로켓발사 실패해서 안타깝네요. 고생한 과학, 기술자들 수고했는데...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7:43   좋아요 2 | URL
네.. 계획대로 다 이뤘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도에 많은 것을 이뤘다는 점에서는 분명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 러시아에서는 로켓 연구진만 각각 2만 명 정도라는데, 이번 우리 연구진은 2백 명 남짓이었다고 하네요. 말 그대로 일당 백으로 이룬 성과이기에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1-10-22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박수를 보내고싶어요. 다른 예산하고 비교해서 얼마안된다고 자꾸 과학자들이 나와서 강조하는 모습이 짠했어요. 이런 일에도 예산 타령, 실패하면 난리 ㅠㅠ 저희 아이 선배들이 외국 연구소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초과학 관련 연구비 타는 게 너무 어렵다고 ㅠㅠ

겨울호랑이 2021-10-22 09:5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미니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응용분야에 대한 투자에 비해 기초 분야에 대한 투자는 매우 인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성장기에는 외화획득을 위해 응용분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순수 학문 - 과학, 예술 등등 - 에 대한 폭넓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투자가 뒷받침되었을 때, 다수에게 기회가 열리고 소수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폐단이 막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