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중심성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 간 투쟁의 중심성의 한 결과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 투쟁에서 프랑스의 임박한 패배감에 뒤이어 그리고 그것의 한 결과로 일어났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했던 바로 그 나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쳤던 바와 같은 영향을 세계체제에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승리의 물결을 뒤집어 엎으리라고 기대했던 프랑스 혁명은 반대로 지속적인 영국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데에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지경학적(地經學的) 패배 때문에, 프랑스 혁명가들은 실제로 그들의 장기적인 이데올로기적 목표들을 달성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3>, p145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2019)은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에서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영국과의 헤게모니(hegemony) 투쟁에서의 패배에서 찾는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 1754 ~ 1763), 인도에서의 플라시 전투(The Battle of Plassey, 1757) 그리고 후대 아프리카에서의 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 1899)에서 보듯 세계 전역에서 프랑스는 영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었고, 나폴레옹 제국의 붕괴 이후에는 신생 강국 프로이센(Prussia)으로부터 2인자의 위치도 위협받는 처지에 몰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는 <미슐레의 민중 Le Peuple>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희망을 민중으로부터 발견한다.


 하나의 민중 ! 하나의 조국 ! 하나의 프랑스 ! 결코 두 개의 국가가 되지 말기를 기원하노라. 단결이 없으면 우리는 파멸한다. 어찌 이것을 보지 못하는가? 모든 조건의, 모든 계급의, 모든 당의 프랑스인들이여, 한 가지만 기억하라. 당신들에게 이 지상엔 단 하나의 확실한 친구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프랑스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8/144


  민중에 대한 나의 오랜 연구 기간을 통틀어 언제나 나에게 충격을 주어왔던 그들의 중요하고 가장 현저한 특징은 결핍의 무질서와 비참한 악덕 속에서도 풍요로운 감정과 선한 심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네. 그런데 부유한 계층에게서는 그것을 거의 찾을 수 없었지. 게다가 누구라도 이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네.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에 누가 고아들을 입양했는지 아는가? 가난한 사람들이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2/144


 <미슐레의 민중>은 '프랑스 민중'과 국가 '프랑스'를 연결시킨다. 그는 헤게모니 전쟁에서 패배하고 1848년 혁명전야의 혼란 속의 프랑스 정세를 프랑스 민중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산업화 시대 속에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쇠락해가는 프랑스의 모습에 다름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는 민중들의 모습에는 분명 미래 프랑스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육체적 허약함과 정신적 무능,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무능의 감정이다. 기계의 모든 움직임에 맞추면서 기계 앞에서 허약해진 이 사람은 공장주는 물론, 부지불식간에 그의 일감을 잃게 만들어 그의 빵을 빼앗아갈 수 있는 천 가지의 원인들에게도 종속하게 된다... 이들의 악행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극도로 육체에 의존하게 되어 본능적인 삶을 요구하게 되며 그것은 육체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어 결국 무능한 정신과 공허한 영혼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31/144


 이런 희망의 싹을 민중들은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의 모습은 절망적이었다. 드러난 부정적인 면 대신 드러나지 않은 긍정적인 면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미슐레는 현재 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주목하고, 이들에게 신념을 심어줄 것을 주문한다.


 프랑스가 다시 신념을 갖고 그 미래를 염원하기 위해서는 그 과거로 되돌아가 본연의 천재성에 천착해야 한다. 그 일을 진지하게 마음으로부터 하려 한다면 이 연구를 통해 확립된 전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로부터 미래가, 즉 프랑스의 사명이 당신에게 흘러나오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온전한 빛 속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당신은 믿을 것이고 믿는 것을 사랑할 것이다. 신념은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15/144


 구체적으로 미슐레는 본문에서 공립학교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신념을 불어넣어 줄 것을 주장한다. 민중들이 국립학교에서 국가에 대해 배우고, 자신의 신념을 세울 때 비로소 프랑스는 과거 프랑스 혁명 시대의 영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미슐레의 민중>을 관통하는 주제다. 


 어린이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조국의 영향을 미칠 기관이란 학교로서 언젠가 세워질 위대한 국립학교이다. 나는 진정으로 모두가 공유하는 학교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모든 계급의 모든 어린이들이 1~2년 동안 나란히 함께 앉아서 어떤 특정 교과를 배우기 이전에 프랑스에 대해서만 배우는 곳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17/144


 이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대단히 강력한 것 두 가지를 갖고 있다. 프랑스는 원칙과 전설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가장 원대하고 가장 인간적인 관념과 동시에 가장 많이 따르는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은총이라는 교리 속에 묻혀 있던 이 원칙, 이 관념을 인간의 언어로는 형제애라고 부른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09/144


 <미슐레의 민중>은 이처럼 변화된 프랑스의 힘을 공립교육과 우정(박애)으로부터 찾지만, 사실 이들 모두는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이다.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 1743~1794)가 제안한 공교육에 관한 개혁안, 프랑스 대혁명의 주요 이념인 '박애'를 생각해 본다면, 결국 미슐레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통한 자본시대 극복을 강조했음을 알게 된다. 

 

 "Liberte, Egalite, Fraternite ou La Mort." '자유, 평등, 박애, 그것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이 과격한 문구가 프랑스의 국가적 이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개념이다. 애초에 인간 사회는 평등하지 않으며 누구나 배타적 자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데, 이 두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융합시킬 제3의 개념이 박애로 알려진 'Fraternite'인 셈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7> <자유, 평등, 그리고 능력주의>, p5


 평등과 자유의 고결한 친구들이여, 여러분의 힘을 한데 모아, 공권력으로부터 이성의 빛을 퍼뜨릴 수 있는 교육을 얻어내도록 하라. 그럴 생각이 없다면, 여러분이 기울인 고귀한 노력의 모든 결실이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라.(p61)... 공권력은 자신의 첫 교육이 맺은 열매를 우연 속에 방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자상한 권위의 보살핌에 이어 이제 성인들에게는 공권력의 도움이 주어질 것이며, 그러한 도움은 성인의 독립적인 이성이 열렬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리라. _ 콩도르세, <콩도르세, 공교육에 관한 다섯 논문>, p144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다수 민중을 '목적'이 아닌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 파악한 점,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인류의 차원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프랑스만의 사상으로 한정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미슐레의 주장은 시대퇴행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폴레옹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그의 글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모한 돌격 전술을 감행한 프랑스 지휘관들의 무모함을 떠올린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여기에 최근 폐지가 예정된 프랑스 엘리트층의 산실이었던 국립행정학교(ENA)와 관련된 프랑스 사회의 논쟁은 그가 강조한 공립학교 교육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게 된다. 


 [관련기사]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38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한계가 명확해 보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빛을 어벤져스(Avengers)가 아닌 평범한 대중들로부터 찾으려 했다는 점만은 분명 그가 평가받을만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미슐레의 민중>이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중심으로 민중을 인식했다면, 산업국가 영국의 민중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들의 삶은 칼 마르크스 <자본 1>과도 연계된 부분인만큼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은 삶을 비추고 삶에 끌릴 뿐 고립에 의해서는 소멸한다. 삶이 자신과 다른 삶과 섞이고 다른 존재와 연계될 때 그것은 더 큰 힘과 행복과 풍요속에 존재하게 된다.(p53)... 단순한 사람들은 삶에 공감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훌륭한 재능을 갖게 된다. 그것은 최소한의 흔적만으로도 그들은 삶을 충분히 직시하고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8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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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7-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역사학자 카가 쓴 <새로운 사회>라는 책에서 프랑스 혁명이 없었으면 지금 세상이 더 좋아졌을거란 문장을 보고 충격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유는 책 끝에 얘기해 준다고 하는데 넘 기대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6 21:04   좋아요 1 | URL
저도 말씀을 듣고 보니 매우 기대가 되어 책을 담아 갑니다.미끼용 멘트가 아닌 의미 있는 통찰이 담겨있었으면 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7-16 21:17   좋아요 1 | URL
다른 사람도 아닌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대학자 카인데 미끼는 아닐거라 믿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6 21:28   좋아요 1 | URL
전체는 아니겠습니다만, 대체로 영국과 프랑스 역사 학자들은 대체로 상대국의 역사 평가에 박한 듯 합니다. 혹시 카의 평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물론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있는지 알겠지만요.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