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친족법‘과 ‘국가법‘의 대항으로 본 헤겔, ‘남성의 법‘과 ‘여성의 법‘ 다툼으로 본 이리가레이, ‘죽음을 향한 숭고함, 아름다움‘으로 본 라캉의 해석과는 또 다른 버틀러의 해석.
버틀러는 ‘안티고네‘라는 인간 자체에의 균열을 통해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마치 「판관기」속의 삼손이 데릴라에 의해 블레셋인들에게 잡힌 후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건물을 무너뜨리듯,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우리는 기존 양성적 질서를 넘어선 ‘버틀러의 주장‘을 발견한다. 이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근친상간의 금기가 자기 내부에 스스로의 균열을 안고 있는 만큼, 그것은 근친상간을 단순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근친상간을 사회적 해체에 꼭 필요한 어떤 유령으로서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유령 없이는 사회적 관계가 나타날 수도 없는 그런 것으로 말이다. 따라서 《안티고네》라는 드라마에서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는, 금기 그 자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즉 금기를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무엇인가를 빼앗는 권력 작용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금지하고 있는 그 죄 자체를 자리바꿈(displacement) 함으로써 자신을 증식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자는 말이다. 근친상간의 금기와 그에 대한 무서운 비유는 근친상간이야말로 친족에 가장 중추적 가능성이라는 것을 감추는 친족계보를 그려낸다. 그러면서 규범의 한가운데에 ‘일탈(aberration)‘을세워두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제기하는 문제는 근친상간의 금기가 사회적으로 존속 가능한 친족 일탈의 토대가 될 수도 있는가 하는 점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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