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욥」(8:7)

「성경」을 읽지 않는 이들도 아는 유명한 구절.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욥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으며, 직접 읽었을 때 혼란을 겪게된다.

많은 사람들은 욥기의 목적이 고통(악)의 문제를 논하고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능력이 하느님의 본성안에서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느냐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리라고 기대하면서 욥기에 접근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것이다.(p225)

이에 대해「구약성서의 이해 3」의 저자 앤더슨은 우리가 「욥기」에 대해 갖는 오해를 지적하고 지혜 문힉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욥기」의 핵심을 이해하는 길을 본문에서 제시한다.

욥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너무나 피상적인 이해만 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마음에는 욥이 신앙인의 모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는 산문으로 된 서문과 결문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이 책의 주요 부분은 운문으로 씌여졌는데 여기서의 욥은 인내심의 전형과는 아주 다르다. 그는 자기가 난 날을 저주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폭풍우같은 분노를 몰아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저항한다. (p217)

「구약성경」내에서도 신명기계와 역대기계 역사서 저자들의 시대상황, 집필 목적에 따라 역사관의 차이를 보이듯,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된 「욥기」는 서로 다른 저자들이 작품 안에서 같은 인물을 다른 성격으로 그려넣는다. 산문 안에서 차분한 욥과 운문 안에서 절규하는 욥.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한 욥의 행동과 생각은 차이가 있기에 우리는 마치 욥의 자아분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고,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과연 이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인 ‘욥‘의 모슴인가. 저자는 이러한 혼돈을 걷어냈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운문 부분의 저자와 서문과 결문의 저자는 같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설 부분의 저자는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데 반해 운문 부분의 저자는 신에 대한 일반적 용어인 엘로아(Eloah) 또는 샷다이(Shaddai)란 말을 쓴다. 또한 해설은 매력적인 우화식으로 씌어진 데 반해 운문 부분은 잠언이나 전도서의 지혜문학에 가깝다.(p219)

저자는 「욥기」를 통해 세 친구들의 정통주의 자세가 아닌 욥의 프로메테우스적인 도전과 회오리 바람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통한 자신의 무지와 겸손을 통해 비로소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말하면서 「욥기」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길을 제시한다. 마치 「욥기」안의 욥이 의로운 자신의 삶의 한계를 인정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화해와 길이 열리듯, 독자들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기존 의식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지혜의 지평이 보이는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예언자다운 방식으로 욥기의 저자는 이단의 창조적인 힘을 대변했다. 신앙은 가끔 신학적 교의를 과감하게 파괴하고 미지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항 수 있기 때문이다.(p227)

욥기의 열쇠는 욥의 회개에 있다. 맨 처음부터 근본적인 문제는 하느님과 욥의 관계였다. 이 시의 절정은 마지막에 가서 이루어지는데 그때에 자만심에 기초를 둔 그릇된 관계가 인격적인 신뢰와 헌신의 관계로 바뀐다.(p233)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욥기」는 단순히 의인이 축복을 받는다는 주제의 단순한 축복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넘어섰을 깨 비로소 지혜서의 최고봉이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라 해석된다. 이와같은 「욥기」에 대한 현대 해석에 대해 과연 교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교부 주해 구약 성경」에서 확인해 봐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0-10-10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유원작가님의 고전읽기 시리즈를 읽고 욥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학과 철학적 접근도 그렇고, 파우스트의 원형질같은 문학적 접근도 그렇구요!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겨울호랑님께서 좋은 글로 도와주십시요!ㅎ 즐건 주말되시구요!

겨울호랑이 2020-10-10 19:28   좋아요 1 | URL
.... ‘파우스트의 원형질‘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제게 막시무스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ㅜㅜ 막시무스님께서도 좋은 주말 되세요! ^^:)

레삭매냐 2020-10-10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에 담긴 패러블은 정말
옳바른 가르침이 없다면 위험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10-11 06:5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전체 흐름에 대한 이해없이 부분 발췌 인용, 이해는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