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구체화되어 있는 모든 장소들은 종교적, 정치적, 상징적 성격과 아울러 역사 및 족보 편찬의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그 기억의 주요한 측면들이 '유산(heritage)' 이라는 기호(記號) 아래 재편되어 나타나는 것은, 그런 기억이 펼쳐지는 바로 그 시대에 그것 자체가 스스로 시대를 초월한 하나의 의례처럼 표현되는 것에 관심을 쏟으며, 시간적으로 유한한 자신의 흔적을 초시간성 또는 초자연성의 낙인으로써 확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 속에는 아직 민족은 없지만 민족적 신성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이후에 나타난 민족적 기억의 온갖 형태들에 그러한 성격을 물려줄 것이며, 또 그런 신성성이 그 기억에 영속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2 : 민족>, p494
<기억의 장소 Les Lieux de Memoire>는 민족적 기억(memoire nationale)과 사람들의 행동이 상호작용을 통해 특별한 표상과 뚜렷한 상징물로 남은 물질적, 비물질적 장소를 통해 프랑스 역사를 삶 속에서 발견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기억들이 현재적인 것이라면, 역사는 과거의 산물이며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는데, <기억의 장소>에서는 장소 속에서 이들을 펼쳐낸다. 특히, <기억의 장소 1 : 공화국>에서 '전사자 기념비'는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잘 남겨진 기억의 장소로, 우리는 애국심의 전형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역사의 자취가 남겨진 장소에서 찾는 현재의 의미 또는 기억. 때로는 역사와 기억의 가치가 일치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경우에는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억의 장소>는 장소를 통해 역사와 기억의 대화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자신의 의무를 다했던 시민들을 기념하는 것은 각자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권고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공민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수행했던 사람들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되고, 역으로 국가(la cite)를 위해 죽은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공민적 의무의 위대함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억하는 이 일은 곧 공민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일이었다.(p226)... 교육하지 않고 기념하지 않는 공화국은 죽은 공화국,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더 이상 죽으려고 하지 않는 공화국이다._ 피에르 노라 외, <기억의 장소 1 : 공화국>, p227
<기억의 장소>의 주저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 1931 ~ )는 기억은 곧 삶이고 언제나 살아있는 집단에 의해 생겨나 끝없이 진화해 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조선시대의 조상묘(祖上墓) 재발견 역시 집단 기억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기억의 장소>의 기억 집단은 국가, 민족인데 반해 <조상의 눈 아래에서>는 가문(家門), 문중(門中) 이라는 정도일까.
기억의 문화는 조상숭배의 본질적 요소였다. 추모적인 실천행위로서, 조상숭배는 주요 선조의 무덤이나 가모에서 공동의 출계에 대한 기억을 의식화했다. 직계의 재구성을 위한 문서적 증거가 없었을 때, 조상의 묘는 유력한 기억 환기 장소로 기능할 수 있었다. 이런 통찰이 주요 조상의 무덤을 찾으려는 노력의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옛 무덤들은 관리가 되지 않았을 경우 서서히 사라졌기 때문에, 자손들은 "산양과 소가 짓밟고 다니는" 곳이 선조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358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 ~ ) 교수는 <조상의 눈 아래에서>를 통해 15세기까지 조선 사회에서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조상묘가 친족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16세기부터 '조상 장지'를 찾아내고 보호하는 일이 중요해졌음을 지적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성묘가 과거 기억의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해진 족보상의 관계에 따라 남계친을 가묘 앞에 모이게 하는 당내와 대조적으로, 문중은 명백하게 '결사체적 associational'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특정 조상의 모든 남계 후손을 포함했고 그들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었다. 공동자산의 혜택은 적어도 처음에는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었을 터이다. 그렇지만 걸출한 선조의 무덤에서 개혁된 의례를 과시적으로 봉행하는 것이나 대종을 확실하게 지원하는 것은 단지 극진한 효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조상의 위세를 이용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전자가 직계라는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수직적인 친족관계를 강조했다면, 후자는 평등한 형제관계라는 토착적 전통을 떠올리는 친족의 수평적 측면을 만족시켰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356
이러한 기억이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는역사적 과정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 1597)과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 ~ 1598),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으로 인해 흔들리는 사회질서에 대한 반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나, 여기에 더해 문중의 이익이라는 경제적 문제도 관여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하게 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유교 본연의 정신을 강조하고 흔들리는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자한 조선 후기 지배층의 노력 뒤에는 결국 그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숨은 의도가 있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가문의 '직계'는 강조된 반면, 이들을 제외한 이들 - 여성, 서출 등 - 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고, 기억이 만들어 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평소 여러 곳에서 각자의 삶은 살던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데 모이고 화합을 다지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이라면, 이러한 명절의 후유증을 겪는 이들도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계로 연결된 친척들이 결국 특정 장소 한 곳에 집중적으로 매장됨에 따라, 묘지는 점차 비남계친에게는 폐쇄되었다... 남계친과 비남계친의 무덤들이 종종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이따금 후손들 사이의 장기적인 토지 분쟁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중요한 묘지의 발견을 지연시켰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361
주요 조상의 장지를 보호하려면 당연히 새로운 부계 친족모델에 일치하도록 묘지를 정비해야 했다. 비남계 후손과 서출은 명시적으로 배제되었다. 정리된 묘역의 조성은 분명히 '직계'의 의미를 후손의 마음에 심어주는 추가적인 수단이었다. _ 마르티나 도이힐러, <조상의 눈 아래에서>, p363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해 성묘를 다녀왔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선조들을 생각하고, 이들의 후손들이 한데 모여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것. 이것은 분명 역사를 기억하는 작은 노력이라 여겨진다. 동시에, 시대에 따라 이제는 지키기 어려운 전통들(가문에 따라 다르겠지만)에 대해서는 후손들이 함께 고민하고 고쳐나가야하지 않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전통으로 내려져 온 것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심한 갈등과 본목을 가져다 준다면, 이제는 그것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전통(傳統)이란 존재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기에.
전통을 발명해낸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 가정하듯이 과거에 준거함을 특징으로 하면서 다만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공식화되고 의례화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_ 에릭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p25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 ~ 2012)이 <만들어진 전통 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말한 바처럼 오늘날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끊임없이 재해석된 최근의 결과물임을 생각해본다면, 맹목적인 전통 유지가 아닌 전통 인식에 대한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을 맞아 누군가에게는 '우울한 연휴'가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조상님들이 원하시는 바는 아닐것이다. 기억은 곧 삶이고 언제나 살아있는 집단에 의해 생겨나 끝없이 진화해 가는 것이라면, 명절에 대한 인식도 꾸준히 바뀌어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과거 명절보다는 나아졌지만, 명절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traditions)'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다.(p19)... '만들어진 전통'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통상 공인된 규칙에 의해 지배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의례나 상징적 성격을 갖는 일련의 관행들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들은 특정한 가치와 행위 규준을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내포한다. 기실 그런 관행들은 가능하다면 언제나 역사적으로 기념하기에 알맞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확립하려고 든다. _ 에릭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