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리스인 조르바 - 열린책들 세계문학 021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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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비겁하게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서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82

니코스 카잔자키스 (Nikos Kazantzakis, 1883 ~ 1957)의 <그리스인 조르바 Zorba the Greek>의 '나'는 꿈과 이상에 가득찬 이성(理性)의 인간이다. 삼단논법의 논리학과 함께 불교의 자비심을 가지고, 갈탄 사업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기를 갈망하는 근대의 인간이다. 그런 근대 인간의 전형인 '나'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물인 조르바를 만나면서 새로운 충격에 빠지고,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 <그리스 조르바>의 큰 줄기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11

이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조르바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했다. 먹고 마시면서 대화는 생기를 더해 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36

많은 이들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절대 자유', '영혼의 투쟁'을 말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듯 어색하게 되버린 '나'의 변화에 더 눈이 간다. 조르바와 함께 지내며 새로운 충격을 받지만,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와의 만남처럼 각자의 삶을 바꿀 정도로 이르지는 못한다.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조르바의 춤 zorba dance'을 '나'는 배우려고 했지만, 결코 조르바에게서 그 의미까지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 의미를 깨달았지만 선택하지 못한 쪽이었을까.

"두목, 이런 말을 해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암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은 보지 않았어요."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149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 이후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절뚝절뚝 걸을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요.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37

'내'가 조르바에게서 배운 것은 '절대 자유'지만, 절대 자유를 느끼는 영혼은 육체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불확실해질 수 밖에 없었고, 불안함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안정감을 위해 나는 이성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동경하는 삶을 눈 앞에서 보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수 없는 나. 사실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인생의 문제라는 점과 운명이 던져주는 문제에 좌절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와 선조 격인 그리스 비극(悲劇)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된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영원히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85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9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혼을 신뢰하지 않는다. 영원한 구멍가게 주인인 이성이 영혼을 비웃고 있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p148

우리에게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그리스인 조르바>지만, 영화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그건 안소니 퀸(Anthony Quinn, 1915 ~ 2001)이라는 배우의 압도적 연기에 몰입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별도로 있지만, 내용이 길어질 듯하니 이는 다른 페이퍼를 통해 풀어가도록 하고 일단은 주제 정도로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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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21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저는 이 대목을 오래 좋아했는데, 겨울호랑이님의 리뷰를 읽으니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

겨울호랑이 2020-09-21 18:10   좋아요 1 | URL
제가 원하는 것을 많이 선택하지 못해서 그 부분이 더 크게 보인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지막은 신앙 고백이 되버리네요. ㅋ

하나 2020-09-21 18:1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계속 조르바 좋아하는 거 같고요. ㅋㅋ) 겨울호랑이 님도 웃기셔 ㅋㅋㅋ 요즘 북플 지성과 유머감각 필수인가 봐요! (분발해야지 🔥)

겨울호랑이 2020-09-21 18:17   좋아요 1 | URL
제가 보기엔 하나님(?)의 작명 센스가... 즐거운 저녁 되세요! 감사합니다. ^^:)

하나 2020-09-21 18:19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좋은 저녁 되세요!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조르바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

막시무스 2020-09-21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르바 너무 조아합니다!ㅎ
다음 페이퍼도 기대잔뜩 모드로 기다릴께요!ㅎ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20-09-21 18: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어려운 페이퍼가 될 듯 하니 마음을 비워주심이.... 행복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