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가 생각한 공리주의의 이론적인 약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의 증가와 그 사회의 정의로움이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한 사회의 부의 증가가 곧 그 사회의 정의로움으로 나갈 수 없을까?(p65)... 공리주의는 일단 사회 재화를 키우는 데는 일익을 담당했지만, 그로부터 발생한 사회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이것이 바로 롤스가 공리주의를 공격하는 요지다. 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66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은 '정의'에 대한 롤스(John Rawls, 1921 ~ 2002)의 의견과 이에 대한  매킨타이어(Alasdair Chalmers MacIntyre, 1929 ~ )의 비판을 간략하게 정리한 입문서다. 책은 '정의 Justice'에 대한 롤스의 논리를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매킨타이어의 입장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중심이 롤스에 다소 치우친 감이 있지만 (그래서 '불편부당'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의 내용을 잘 요약정리한 입문서라는 점에 좋은 평가를 하고 싶다. 먼저 롤스의 이론을 살펴보자. 롤스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은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인데,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롤스는 수많은 정의관을 대조, 평가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원초적 입장'이다... 원초적 입장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공정한 조건에서 정의원칙을 선택하는 상황이다. 원초적 입장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현실에서 실제로 선택하는 상황이 아니라, 사유를 통해 가상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정의원칙을 선택하는 상황이다. 둘째, 이러한 선택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정의관들에서 그 도덕적 우열을 따져보는 데서 선택이 이루어진다. 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77


 '무지의 베일'은 원초적 입장의 공정성을 최종적으로 확보하는 계기다... '무지의 베일' 아래서 원초적 입장의 공정성은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선택이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불편부당함(impartiality)'이라 한다.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불편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의 선택이 당사자들이 이해관계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83


마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가 사고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을 고안해낸 것처럼, 로스는 사고실험을 통해 이상적인 낙원인 엘리시움(Elysium)과 같은 이상 사회를 생각해 낸다. 사익(私益)을 추구하지 않고 절대적인 사회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그런 이상사회를 꿈꾸는 롤스의 이론안에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이데아 Idea'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데아를 통해 보편타당한 법칙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롤스와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 사이에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죄수는 빛을 찾기 위해 죄수 자신이 보고 있던 흐릿한 모습을 버리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면, 롤스의 이론에서는 정의의 이데아를 위해 흐릿한 베일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소 차이가 느껴진다.


 롤스의 정의관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근본원칙에 기초한다. 1) 모두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평등권과 자유권이 구비된 최상의 체제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2) 사회,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받아들여진다. 첫째는 모두에게 직무와 직위가 열려 있는 공정한 기회 균등이 조건 하에서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이 가장 높은 쪽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p98)... 제1 정의원칙은 정치적 자유를 규정, 규제하는 원칙이다.... 제2 정의원칙은 정의로운 체제 내에서 원활한 사회/경제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원칙이다.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99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에서는 롤스의 정의관을 '자유'와 '평등'의 조화에서 찾는다. 다만, 롤스에게 '평등'은 절대적인 평등이 아니라, 차등원칙에 따른 평등으로 이를 통해 '양 量'에 치우친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롤스 정의관의 특색은 자유와 평등 문제를 결부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개인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오직 '자유'를 강조할 뿐 평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정의' 문제의 독특성을 보지 못한다.(p118)... 차등원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사회협동을 진작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모두가 상호 호혜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장려한다.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125


 이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비판은 무엇일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상적인 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제시한 롤스의 사상이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만 강조하고 있다는 매킨타이어의 비판 속에서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라는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공동체주의자들로 일컬어지는 일군의 철학자들은 현실에서 도덕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으로 바라보았다.(p132)... 롤스에 대한 매킨타이어의 주된 논지는 지나치게 인간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p133)... 그들은 현실의 관심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동떨어져 있다. 오로지 개인의 진정한 관심에서만 정의원칙을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개인상은 서구 전통과 동떨어질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전통에서만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매킨타이어는 생각했다. 이렇게 볼 때, 원초적 입장은 결코 인간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134


 매킨타이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초적 입장은 근대인의 이상에 바탕을 둔 이성적인 절차일 뿐이다. 원초적 입장이 표방하고 있는 도덕적 관점은 서구 근대사상에서 나타난 이성의 합리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에는 서구 역사상에 나타난 도덕적 이념이 다르다는 사실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145


 정리하면, 롤스가 '무지의 베일'로  '원초적 입장'의 상황에 처한 개인들의 선택을 '정의'의 이데아로 삼는다면, 매킨타이어는 이러한 선택이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문화적 전통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들의 관계 속에서 각각 이상과 현실을 강조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文化)'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의 철학을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와 칼 융(Carl Gustav Jung, 1875 ~ 1961) 심리학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개별 리뷰를 통해 별도 정리하도록 하고, '정의'를 둘러싼 롤스의 매킨타이어의 내용 요약을 마무리짓도록 하자...


 롤스는 정의개념을 결국 개인과 사회제도를 연결시켜주는 핵심 개념으로 본 반면, 매킨타이어는 이러한 연결고리가 매우 추상적인 인간을 전제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결국 그 강조가 서구 근대철학의 전통을 전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p148)... 롤스의 가정은 옳음의 관점이 각 개인의 삶의 구체적 내용과 방향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고, 매킨타이어의 가정은 그 울음의 관점이 보편타당한 영원의 진리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구체적인 가치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정당화된 합리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_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 정의로운 삶의 조건>,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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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15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리시움>이란 영화가 생각나는데요, 그 영화에서도 자유와 평등이 균일하게 추구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모순되지 않은 사회가 진정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15 23:11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영화 <엘리시움> 속의 사회는 공중에 떠있다는 점에서만 유토피아일 뿐 극단적인 자유와 불평등이 적용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이상향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어쩌면, 선택받은 엘리시움 시민들 사이에서는 평등이 적용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경우에는 조금 이상하지만 자유와 평등이 그 사회 내에서는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9-15 22:55   좋아요 1 | URL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균일하게 추구될 수 있다는 공허하고 근거나 구체적 방법 없이 그냥 주장하는 책은 많이 봤습니다. 그렇지 않은 책, 혹시 아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꼭 읽어보고 싶어드리는 청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5 23:15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책은 대부분 북다이제스터님께서도 읽으셨을 거라 생각되기에 선뜻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이 상세하게 이들간의 관계를 다룬 책으로 생각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9-16 05:35   좋아요 1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꼭 읽어보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16 07: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9-16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니 정의롭다는 것도, 최선이라는 것도 헷갈리더군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현명한 판단이란 건 아예 없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겨울호랑이 2020-09-16 15:27   좋아요 1 | URL
페크님 말씀처럼 사람의 가치란 상대적이라 어느 것이 최선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