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읽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지만, 이번 2020년 7월호는 과거와는 다른 기사의 흐름을 느꼈다. 지난 호들에서는 서로 다른 세계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는 잡지의 특성상 기사들의 주제가 크게 겹치지 않았는데, 코로나 19(COVID-19)의 영향 때문인지 이번 호에서는 공통된 주제와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이번 페이퍼에서는 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많은 기사들이 관광업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는 관광업이 발달한 프랑스의 산업구조 때문이라 여겨진다.
오늘날 관광업으로 발생하는 공해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 이 8%의 2/3이상이 여행을 위한 이동과정에서 배출된다... 규제, 세제, 직/간접 지원금에 대한 보상이 관광을 수익과 경제적 혜택 수치로만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없애고, 사회/환경 분야의 쟁점도 고려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 장려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 제네비에브 클라스트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느린 여행, 사회적 관광의 소환>(p8)
현지 차원에서 살펴보면, 관광은 확고한 보수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화나 변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토지세, 부동산세와 같은 탄탄한 지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사태가 불러온 생활 방식에 대한 방향으로 관광에 의해, 관광을 위해 세워진 틀과 규범들이 전도되기까지 했다. 이제 '관광의 대안적인 형태'보다 '관광에 대한 대안'이 화두다.- 필리프 부르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세계의 끝자락은 바로 가까이에>(p9)
공통적으로 기사들은 과거의 관광업이 친환경적이지 않은 산업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외자 유치를 위한 지원과 편의 추구가 불러온 환경파괴는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기존의 관광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들의 지적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인해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지만, 이번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한계상황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따름이다.
유로화 사용국가 중 3번째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적어도 300만명이 정식 계약서 없이 일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코로나 사태 동안 정부가 지급한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숙박서비스 분야의 피고용자 절반 이상이 유기 계약직이다. 시간제 근로자도 맣은 데 주로 여성과 청년, 이주 노동자들이다.- 제랄디나 콜로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관광 수입 위기에 몰린 이탈리아, 버틸 수 있나?>(p14)
관광업의 폐해는 환경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업의 기반이 되는 숙박업 등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또다른 그늘이다. 계약서 없이 불법으로 고용된 이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이번 사태에서도 바로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를 활용한 관광 기반 산업의 양적 성장은 막대한 관광수입이라는 밝은 면과 함께 난민 문제라는 어두운 면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각국의 국경통제로 긍정적인 영향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영향력만 남은 현 상황은 유럽 극우 세력 확장의 자양분을 제공하면서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와 같이 과거의 문제가 모두 드러난 시점에 어떻게 관광업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사회적 성공이 상징인, 유급휴가를 갈 수 있는 권리가 급속히 관광의 권리로 변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관광'이란 상품화된 '민주화'의 증거로 판매되는 휴가를 말한다. 소비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소비자 민주주의로 전락한다... 이국취향을 없애고 빅토르 세갈렌이 말한 '다름이라는 개념'을 일반화해서라도, 그런 취향을 우리 자신에 대해 갖도록 바뀌어야 한다. - 로돌프 크리스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세계화에서 벗어나 세계성에 눈뜨기>(p3)
코로나 19로 인한 강력한 여행 중단 현상과 함께 환경을 걱정하고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쾌적하고 유익하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휴식하자는 구조적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중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52%와 도미니크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97%가 관광 때문에 발생했다... '책임여행'에 대한 새로운 명령이 만들어지면 사회적 격리도 변하게 될까, 아니면 반대로 자유시간에 대한 세계 정책의 틀 안에서 관광을 생각하는 기회가 될까? 국토개발을 계획하고, 관광 형태와 관광객의 유입을 조율하고, 관광의 사회적 소명과 환경적 소명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히 나서야 한다.- 베르트랑 레오, 크리스토프 기베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대량관광에서 부르디외식 자유문화 또는 책임여행으로>(p11)
또 다른 지식인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차원의 접근법을 제안한다. 개인 차원에서 관광에 대한 인식 변화와 국가 차원에서의 산업 구조 조정이 그것이다. 사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에서는 국가 수준에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는 사태가 그만큼 긴박하다는 반증이겠지만, 이를 통해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질서 대신 빅데이터에 기반한 계획경제,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 속에서 '코로나 19'의 위험도와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이를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로 삼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좋거나 싫거나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우리는 갈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새로운 가치 기준이 적용되는 세계에서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도 변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17년 9월,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빅데이터의 혁명으로 계획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일부 논설위원들은 데이터 수집과 계산이 가능해진 오늘날, 20세기 중앙집권식 계획경제가 겪은 실패를 극복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터는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사기업들의 소유다. 데이터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그들의 인프라가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감독하에 사회적 효용성을 우선하도록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준다면, 데이터는 시장경제의 대안을 고안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변화를 일으키려 하며, 이 과정에서 국가를 민주화할 기회, 또는 간접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할 기회를 찾는다. 친환경 경제로의 변화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정치, 경제 시스템 또한 동시에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세드릭 뒤랑, 라즈미그 쿠쉐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친환경 경제, 21세기의 위대한 여정>(p16)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에 소개된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et ideologie>의 내용은 뉴노멀 시대의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진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상세 내용은 리뷰에서 보다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일단은 기사에 요약된 내용을 옮겨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피게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한 부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여러 석학들의 찬반(贊反) 의견인 <애프터 피게티>에 대한 답으로 보다 강력한 사회주의를 결합한 수정자본주의를 내놓았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
1) 모든 사회는 저마다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2) 각 사회의 지배계급은 지금의 불평등이 마치 "자연"스러운 것으로 믿게 하려 하지만 불평등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 산물이다.
3) 불평등은 지배계급에 의해 의도적으로 증폭된 것이므로, 얼마든지 인간의 의지에 의해 축소될 수 있다.
4) 인류의 역사는 불평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 반드시 위기를 겪어왔으며, 인간의 진보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나온다.
5) 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구조화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역할이다.
6) 1980년대 이후, 격하게 증가해 온 불평등은 폭발의 단계에 이르렀고, 나는 여기, 오늘의 모순에 답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참여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한글판으론 정확히 1,300쪽에 이르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여섯 줄로 요약해봤다.
그는 적극적으로 대안을 말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했고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마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자본을 사회가 고루 점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자.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종잣돈을 사회가 제공한다. 재원은 누진세 3종 세트가 마련해준다. 소유세, 상속세, 소득세에 과감한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불평등을 깨기 위해선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가 절반 가까이 참여하는 북유럽/독일식의 기업 공동 경영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를 정의로운 사회로 진보시켜왔던 것은 보편적 교육제도, 보통 선거, 공공의료서비스 등 평등의 확대였다.- 목수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피게티의 참여사회주의가 의미하는 것>(p32)
여러 지식인들이 제안한 대안들을 살펴보다 보니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 국가권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항하는 입장에 서 있던 사회주의 운동이 오늘날에는 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국제적 연대 대신 국가 단위의 사회주의 운동은 물론 코로나 19 이전부터 있었던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지게 된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계획경제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한 다면 이러한 상황뉴에서 개인은 국가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 ~ )의 <신공화주의 Republicanism>에서 말하는 비지배 자유의 개념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롤스와 드워킨과 함꼐 정리할 계획이다.
공화주의 사상에는 세 가지 핵심적 주제가 있다. 첫 번째 주제는 자유와 비지배의 동일시다. 여기에서 비지배란 타인의 의지에 종속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두 번째 주제는 법의 지배에 근거해 정치를 조직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때 법의 지배란 어느 누구 또는 어떤 집단에게도 최종적인 권력을 부여함이 없이, 시민들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 번째가 시민적 견제력의 회복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공식적 채널이든 비공식적 채널이든, 시민들은 정부 당국자들이 재직기간 동안 업무를 어떻게 수행했는지 공개적으로 설명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립 페팃, <신공화주의>(p5)
돌아보면 우리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래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에 기반한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경제의 호황 속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도 현 체제의 문제점을 말하려 하지 않았고, 문제점은 축적되어 COVID-19라는 '사라예보의 총성' 앞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듯하다. 질병의 위험보다는 여기에 부여한 '뉴노멀'이라는 의미가 우리의 마음을 더 두렵게 하는 상황에서 차분히 우리가 갈 길을 생각할 때는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