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후반기 대작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 간략하게나마 입문서를 통해 전체 틀을 살펴보자.

 

 브로델은 19세기 들어 자리를 잡게 된 산업 자본주의가 '진짜' 자본주의이고 이전의 상업 자본주의는 '가짜'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시각에 반대합니다. 상업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는 없으며, 19세기 이전이든 이후이든 19세기 중에든 금융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상업 자본주의는 늘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제계 econoie monde(經濟界)'는 브로델이 초반의 주저 <지중해>를 저술할 때 다루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후반의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5 ~ 18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도입한 삼층집 모델과 함께 생각해보면, 삼층집 모델을 지리적 공간에 횡적으로 펼치고 그 공간에 '중심부-중간부-주변부'라는 계층적 지배/종속 관계를 더한 것이 경제계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p188)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해제 中


 브로델의 입문서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La Dynamique du Capitalism>에서는 상업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가 다르지 않으며, 산업자본주의는 상업 자본주의의 한 형태임을 말한다. 그리고, 브로델이 이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계' 속에서 '층'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음을 기억해 두고, 바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결론으로 넘어가자. 인상적인 결론이라 영어판의 본문도 함께 옮긴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economie de marche)" 사이의 구분이 완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종국적으로 정치적 차원에서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p864)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It is in the end at the political level that the distinction - to my mind beyond doubt - between capitalism in its various guises and 'the market economy' takes on its full significance.(p628)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시장경제는 '경쟁'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자본주의는 '독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소수의 대기업이 독과점을 행하는 상층구조와 중소기업이 경쟁을 이루는 하부구조. 브로델에 따르면 이들 모두가 시장경제를 형성하는 층(層 tier)이다.


 케인즈는 불완전 경쟁을 이야기했다 ; 현재의 경제학자들은 한층 더 나아간다. 그들이 볼 때에는 시장가격과 독점가격이 따로 있다. 즉 독점영역과 "경쟁영역(secteur concurrentie)"이라는 두 개의 층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립성의 이미지는 오콘너나 갤브레이스 모두에게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경쟁영역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제일 상층에는 독점이 있고 그 아래에 중소기업들에게 알려진 경쟁이 있는 것이다.(p86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Keynes was already writing about imperfect competition. Today's economists go even further and distiinguish between market prices and monopoly prices, that is they see a two-tier structure, a monopolist sector and a 'competitive sector'. This two-stage model is to be found in J.O'Connor's writing as well as in Galbraiths's. Is it therefore wrong to describe as the 'market economy' what some people would call the 'competitive sector'? At the top come the big monopolies, while underneath them competition is confined to small or medium-sized concerns.(p629)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이러한 관점에서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시장경제와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전체 결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판 6권, 영문판 3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의 수많은 실증 분석은 이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다만 경제의 하층(下層)이 상당히 두텁게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상관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여튼 그것이 존재하며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회적인 것의 총화이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타당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p86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But it is not my intention to list exemples, simply to point out that there is a sort  of lower layer in the economy - it may be small or large, and we may call it what we like, but it exists and is made up of independent units. So we should not be too quick to assume that capitalism embraces the whole if western society, that it accounts for every stitch in the social fabric.... It is still possible then to use the three-tier model whose relvance to the past has already been discussed. It can still be applied to the present. And our statistics which not find room anywhere for the 'basement' of the economy, give us only an imcomplete picture. This is enough to make one think again before assuming that our societies are organized from top to bottom in a 'capitalist system'.(p630)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사실, 자본주의만큼 많은 이들이 사용하면서도, 그 정의가 다른 단어도 없을 것이다. E.K. 헌트 역시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History of Economic Thought : A Critical Perspective>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하고 결론없는 토론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브로델의 관점을 개념어(keywords)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Capitalism 자본주의 : Capitalism'이 특정한 경제 제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영어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이며, 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 그 단어의 등장 시기와도 거의 일치한다.(p69)...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 일반이 아니라 특정의 역사적 경제 제도를 지시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고, 이러한 변천 자체가 이 어의의 전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자본'이나 '자본가' 또한 처음에는 모든 경제 제도에 적용되는 전문 용어였다. 이후 19세기초 '자본가'의 용법은 역사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의 여러 기능을 기술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자본주의'란 발전도상에 있는 부르주아사회의 산물이다.(p70) <키워드> 中


 레이먼드 월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 ~ 1988)의 <키워드 Keywords: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설명은 (시장경제를 경제 제도 일반으로 본다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을 받아들이는 브로델 관점에 가깝다. 


 결국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구분을 받아들인다면 정치가들이 변함없이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가들의 그런 생각은 독점에 대해서 완전한 자유를 인정치 않고서는 시장경제를 보존할 수 없다든지 이 독점을 모두 '국영화하지" 않고서는 처치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p869)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Finally, if we are prepared to make an unequivocal distinction between the market economy and capitalism, might this offer us a way of avoiding that 'all or nothing' which politicians are constantly putting to us, as if it were impossible to retain the market economy without giving the monopolies a free hand, or impossible to get rid of monopolies without nationalizing everything in sight?(p632)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를 섞어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용어로 자본주의만이 시장경제체제의 전부인 것인양 오해를 한다. 특히, 지난 시절 개발독재방식으로 이루어진 수출주도형 국가경제 안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 대기업주의 = 시장주의'의 경직된 사고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2020년 3월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 비중이 KOSPI200 기준 30% 넘는 대기업 종송경제를 갖는 것을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브로델은 분명 비판할 것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2세대 아날학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 ~ 193)은 <인간행동 Human Action>과 <사회주의 Socialism>에서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특정한다.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징표는 하나의 의지만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의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휘자는 성유(聖油)를 바른 왕이거나, 그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통치하는 독재자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 또는 지도위원회일 수도 있다. 모든 생산요소의 사용이 오직 하나의 기관에 의해 지휘된다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다. 하나의 의지만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지휘하며, 행동하고, 명령을 내린다. 나머지 모두는 명령과 지시에 복종할 뿐이다.(p1352) <인간행동론 3> 中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라 할 미제스의 주장에 따르면 대기업과 소수의 기득권의 의지만이 작용하는 현재의 한국경제(부동산을 포함하여) 상황이야말로 반(反)시장주의적인 사회주의 경제라 할 것이다. 


 모든 현상은 움직임을 가져오고, 움직임은 양 방향성을 갖는다. 우리가 시장경제라는 하나의 실체를 본다면, 자본의 집중이라는 구심력(求心力, centripetal force과 분배라는 원심력(遠心力, centrifugal force)의 균형 속에서 이를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사건의 지평선(事件의 地平線, event horizon)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움직임이 블랙홀(Black hole)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너지는 무에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에, 입자/반입자 쌍의 둘 중 하나는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하나는 음의 에너지를 가질 것이다. 음의 에너지를 가지는 쪽은 짧은 수명의 가상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입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항상 양의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이다.(p136)... (블랙홀)에서 밖으로 방출되는 복사의 양(+)의 에너지는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는 음(-)의 에너지 입자의 흐름과 균형을 이룰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면 그 질량은 감소한다. 블랙홀이 질량을 상실함에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의 넓이는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블랙홀의 엔트로피 감소는 방출된 복사의 엔트로피에 의해서 보상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은 결코 위배되지 않는다.(p137)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中

 

 COVID-19를 맞이하여 최근 30여년간 진행되오던 세계화(世界化)의 움직임에도 큰 변화가 생겼고, 통합되던 세계가 다시 분화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주도-대기업 중심의 경제 대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시장경제로의 복귀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리는 대안경제와 사회적기업, 그리고 이를 우리나라에 이루기 위한 시민운동가 박원순 이해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서없는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도덕경 80장 道德經 80章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p314) <왕필의 노자주> 中


PS. 쓸데없이 글이 길어는 것을 보니 내가 충격을 많이 받긴 했나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끝내고 나서 상세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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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12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문??

겨울호랑이 2020-07-12 11:02   좋아요 0 | URL
이런 잡동사니 주제의 논문이 있을까요? ㅋ 그냥 끄적여 봅니다...

나와같다면 2020-07-14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으나

겨울호랑이님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사고의 뻣어나감 까지 전해지는 듯 합니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 2020-07-14 04:45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님 말씀대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서인지 참 생각도 많아지고 정리도 안 되네요...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다시 정리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