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의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p24) <선거제도의 이해> 中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첫 투표인 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도 끝나고 본투표일을 며칠 앞둔 지금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선거제를 정리하는 페이퍼를 통해 선거제도를 정리해본다.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A Comparative Introduction>에서는 선거제도를 '대표'의 두 개념을 기준으로 '비례제'와 '반비례제' 선거제도를 구분한다.
선거제도가 낳을 수 있는 결과(output)를 기준으로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즉,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 비례적(non-proportional)'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은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p25) <선거제도의 이해> 中
대표(representation)라는 용어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표의 '축소판(microcosm)' 개념과 '주인 - 대리인(principal-agent)'개념이다. 전자는 비례대표제 옹호론자들, 그리고 후자는 비(非)비례적 선거제도 옹호론자들과 관련 있다.... 대표의 축소판 개념은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중시한다. 그러나 주인 - 대리인 개념이 중시하는 것은 의회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이다. 주인 - 대리인 개념에 의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한다... 두 관점 모두 전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서로 양립할 수는 없다.(p33) <선거제도의 이해> 中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된다. 21대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의 경우 '소선거구' 하에서 '1인 선출 상대 다수제'의 방식으로 선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합의된 점은 선거구 크기(district magnitude)가 선거 결과의 비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의 유형화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선거구 크기에 기초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p27) <선거제도의 이해> 中
1인 선출 상대다수제(single-member plurality : SMP)의 미덕은 단순함(simplicity)에 있다. 후보는 당선되기 위해서는 '최다 표(plurality of vote)'를 얻어야 한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과반수 혹은 절대다수 표를 획득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어느 후보의 득표수보다 적어도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된다.(p38)... 상대다수제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정부를 탄생시키며, 그만큼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낳는다고 주장된다... 상대다수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거구의 대표성이다.(p39) <선거제도의 이해> 中
소선거구에서 1인을 선출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철저한 반(反)비례성 선출방식이다. 다수의 후보가 지원할 경우 사표(死票)는 그만큼 증가하게 되고, 소수의 열성지지자들만으로도 당선이 가능하기에, 조직력에서 우위에 있는 정당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지역구 선거는 대표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치뤄진다.
기본적으로 선거구 크기가 클수록 선거 결과의 비례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법칙이 비례대표제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다수제나 절대다수제에서는 실제로 이 관계가 역으로 나타난다. 즉,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의원 수가 많아질수록 비례성은 낮아진다.(p41) <선거제도의 이해> 中
이 제도의 단점은 단순함이 공정함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제도의 단순성은 군소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안전하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선거구라는 덫에 걸려 있는 유권자들에게 공정성의 훼손을 의미할 수 있다.(p51) <선거제도의 이해> 中
그렇다면,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여 다수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유권자의 표의 비율이 거의 누락없이 의석 수로 전환되기에 비례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면, 대표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비례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선거구로 만드는 것이다. 한 국가를 작은 선거구로 쪼개기 시작하면 비(非)비례적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든 비례적 선거제도에서 기본적인 규칙은 다음과 같다. 즉, 선거구 크기가 클수록(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대표의 수가 많을수록) 비례성이 높아진다.(p126)... 전국을 하나의 단위로 선출한 대표가 갖는 문제점은 유권자와 대표의 접촉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특정 선거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원의 지리적 위치는 도시 지역, 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을 위험성이 있다. 이로 인해 인구의 많은 부분은 대표되지 못하게 된다.(p127) <선거제도의 이해> 中
비례대표제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후보자 공천권을 갖는 지도부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때문에, 지역구에서 거대정당에게 밀리는 소수정당의 지도부에게 이 방법은 매력적인 투표방식이다. 때문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갖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특히 폐쇄형에서와 같이, 유권자가 어떤 정치인이 당선되는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선거구 크기가 커서 유권자가 후보 개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경우에 그렇다.(p149) <선거제도의 이해> 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방식에도 단점이 있다. 개별 유권자들은 누가 자신을 대표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정당이 명부를 작성하며, 유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당이 제시한 명부를 고르는 일뿐이다. 유권자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 내 후보 선정 과정에 개입하는 방법 외에는, 명부에서의 후보 순위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p134) <선거제도의 이해> 中
현실에서는 상대다수제가 갖는 대표성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대표성, 공정성의 장점을 살린 혼합형 선거제도가 널리 채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53석의 지역구 대표와 47석의 비례대표제를 혼용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이번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수 배분방식에서는 기존과는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제도가 되었다.
혼합형 선거제도는 이상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1인 선출 상대다수제와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하나의 제도 안에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p153) <선거제도의 이해> 中
47석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중 17석을 기존의 방식으로 선출하되, 30석에 해당하는 비례대표는 연동형의 방식으로 선출한다는 것으로 이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모델로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도입한 제도는 의석수가 30석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일 제도와 차이가 있다.
독일 선거제도의 기본적 취지는 선거 결과의 비례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정당의 경우 선거구 선거에서는 유리할 수 있으나, 최종 결과에서도 그 같은 혜택을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의 3단계 계산 원칙은, 한 정당이 정당 투표 득표율로 배분받은 의석 총수에서 그 정당이 획득한 선거구 의석 총수를 빼는(subtract) 것이다. 독일 선거제도를 때로 '추가의석(additional member)' 선거제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차감을 통해 각 정당이 얻게 될 초과 의석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p164)... 전체 의석 배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선거구 투표가 아니라 정당 투표다.(p170) <선거제도의 이해> 中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간단히 정리하면 1) 정당은 자신이 획득한 지지율만큼 의석을 확보할 수 있되, 2) 자신이 얻은 지역구 의석을 반납하지 않는다. 즉, 비례성을 포기 하지 않는 방식이기에, 독일 선거에서는 의석수가 결정되지 않게 된다.
[독일] 한 정당이 얻는 의석수 = Max(의석 총수* 정당투표 지지율, 정당 획득 선거구 의석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갖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제도. 때문에, 의석수를 늘리려는 소수정당의 욕심에서 무리하게 연동형 요소를 도입한 이번 선거제도를 통해 지역구의 게리맨더링이 아닌, 제도의 게리맨더링을 발견한다.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은 교활한 전략으로 비(非)비례적 제도에서 주로 활용되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 의석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선거구 경계를 다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특정 정당 지지자들은 작은 부분으로 분산시켜 여러 선거구에서 소수 집단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상대 정당이 대정당이어서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그 정당이 차지할 수 있는 의석을 최소화하도록 선거구를 설계하는 것이다.(p316) <선거제도의 이해> 中
비례제가 극단주의 정치인과 정당에게는 더 유리한 제도라는 점은 틀림없다.(p343)... 비례대표제에 대한 마지막 비판은 비례대표제가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p345) <선거제도의 이해> 中
아쉬운 점이 많았던 미진한 선거 개혁이었고 부족함이 있는 제도지만, 본선거를 몇 일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100% 표시한다면 이를 왜곡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라며 선거제도 관련 페이퍼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