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르네쌍스

르네쌍스의 자본주의적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영리추구를 위한 노력과 이른바 '중산층의 미덕' 그리고 영리욕과 근면, 절약성과 정식성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새로운 미덕체계도 사실은 보편적인 합리화 과정의 또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꾸아뜨로첸또(Quattroccento,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쌍스)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합리적인 생활태도의 원칙이 금리생활자 이상으로 바뀌어가는데, 이때부터 시민계급의 생활은 봉건귀족의 생활방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p38)... 시민계급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느끼게 되자 초기의 시민적 도덕질서는 해이해지고 드디어는 날이 갈수록 향락적인 여가와 아름다운 삶의 이상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시민계급이 점점 비합리적인 생활양식을 취하게 되는 바로 그 무렵에 봉건영주들은 점차 견실하고 신용있는 상인의 경영원칙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궁정사회와 시민사회가 길의 중간에서 서로 만나게 된 셈이다.(p39)

꾸아뜨로첸또 예술에 중세적인 전통이 아무리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예술에서 시민계급의 정신과 고딕의 이념이 끊임없이 서로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확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세기의 중엽에 이르기까지는 반고딕적이고 반낭만적이요 사실적이며 비궁정적/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시민계급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정신주의, 인습주의, 보수주의의 경향 등은 로렌쪼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우위를 주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p54)

르네쌍스는 소상인이나 수공엉업자의 문화도 아니었고 큰 교양이 없는 시민계급의 문화도 아니었다. 르네쌍스는 오히려 다른 계층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문화를 독접하려고 했던 비민중적이고 라띤화된 교양 엘리뜨의 문화였다... 광범위한 대중들은 당시의 중요한 예술품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아는 경우에도 이러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데 부적합한 비예술적인 의미로 이해했으며, 자신들의 심미적 감정은 질이 훨씬 떨어지는 작품들로써 충족시켰던 것이다. 이때부터 앞으로의 예술발전에서 근간을 이루게 될 교양있는 소수집단과 그렇지 못한 다수대중 간에 메울 수 없는 깊은 간격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격차는 지금까지의 유럽 예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p73)

미껠란젤로에게서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 속의 어떤 마력적인 힘에 쫓기는 고독한 근대적 예술가, 즉 자신의 상념에만 사로잡혀 있고 그외에는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으며 자신의 재능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의 예술가적 사명 위에 어떤 높은 힘이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예술가의 완전한 해방이 이루어지고, 예술가는 르네쌍스 이래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가 된다.(p93)

르네쌍스의 엄격한 형식주의는 근대예술의 가장 중요한 저류로 남았다. 왜냐하면 엄격하게 형식주의적이고 전형적/규범적인 것을 강조한 예술양식이 근대의 근본적 흐름인 자연주의에 대항해서 그 위치를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르네쌍스 이후에는 또다시 비통일적이고 누가적(累加的, cumulative)/병렬적인 중세의 예술양식으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쌍스 이후 우리들은 하나의 회화나 조각품을 단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파악한 현실의 집약적 표현, 다시 말하면 광범위한 세계와 여기에 맞서 대항하는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로부터 생겨나는 하나의 형식구조로 이해하게 되었다. 예술과 세계 사이의 대극성(對極性)은 때로는 약화되기도 하였지만, 그후로는 한번도 소멸되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 르네쌍스의 진정한 유산이 존재하는 것이다.(p127)

매너리즘

매너리즘과 바로끄, 두 예술양식의 대립은 실제로는 발전사적인 대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학적인 대립이다. 매너리즘이 정신귀족적이고 전유럽적인 교양계층의 예술양식이었다면, 초기 바로끄는 좀더 민중적이고 감정을 좀더 중요시하며 나아가서는 좀더 민족적 색채가 짙은 정신경향의 표현이었다.(p145)

기사도의 문제성에 대한 세르반떼스의 태도는 완전히 매너리즘적 생활감정의 양면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현실세계에 적응하는 분별심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주인공 돈 끼호떼에 대한 그의 분열적 태도, 문학의 새로운 시기를 여는 그 태도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학에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구제자와 배신자, 성자와 신성모독자가 구분되어 나타났으나 이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동시에 성자이자 바보가 되어 있는 것이다.(p196)

영국의 상층 시민계급 및 중류 지방귀족과 왕실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사실은, 수백년에 걸친 불화와 압력 끝에 왕권이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 나서 이제 유산계급의 안전을 보장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통치자의 지배력 약화나 사회적인 위계질서의 동요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자산가들에게는 이제 질서의 원리와 권위 및 안전성의 사상이 부르즈와적 세계관의 근간이 되었다.(p201)

셰익스피어의 자연주의가 지닌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의 작품은 어디서나 개인적인 것과 관습적인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가장 세련된 것과 미개하고 미숙한 것 등 정반대의 특징들로 뒤섞여 있다. 그는 기존의 예술수단 가운데서 많은 것을 의도적으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받아들였지만, 그중 대부분은 아무런 비판이나 깊은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p222)... 그러나 그가 저지른 이러한 부주의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명하고 깊은 심리적 통찰력은 결코 손상받지 않는다. 그가 묘사한 여러 성격은 - 이러한 점에서도 그는 발자끄와 공통점을 지니는데 - 우리를 압도하는 내적 진실성과 파괴할 수 없는 실체감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억지로, 때로는 잘못 묘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물들은 의연히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갖는다.(p223)

바로끄

하나의 미술양식으로서 매너리즘이 전유럽에 골고루 퍼져 있던 분열된 생활감정을 반영한 것이라면, 바로끄는 본질적으로 좀더 동질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유럽 각 문화권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 세계관의 표현이다. 매너리즘은 고딕과 같은 범유럽적 현상이었는데, 바로끄는 이와는 달리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서로 상이하게 등장하는 다양한 예술경향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바로끄의 이차적 분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궁정적/카톨릭적 바로끄가 다시 감각주의적이고 기념비적/장식적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온 바의 '바로끄적' 양식과 이보다 더 엄격하고 한층 더 형식을 존중하는 '고전주의적' 양식으로 나뉘는 점이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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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3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에 읽었었는데.. 참 감탄스러운 책이었다는.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0-03-03 12:36   좋아요 0 | URL
비연님 말씀처럼 깊이 있는 내용을 독자들을 배려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한 명저라 생각합니다. 곁에 두고 몇 번봐도 좋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페넬로페 2020-03-03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3-03 13:2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다만, 제가 읽은 책은 예전에 구입한 구판을 뒤늦게 발굴해서 읽은 것이라 개정판으로 읽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