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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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집단이며, 하나의 권위이며, 하나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하나의 종족이라 함이 옳습니다. 이웃 일본을 세세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입니다.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은 이 같은 집단 심성에 의해서입니다. 바로 반일 종족주의 때문입니다.(p21)

이영훈은 「반일종족주의」에서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근대사와 현대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조망한다. 초반에는 저자의 전공인 한국 근현대사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그래프와 함께 분석하는 저자의 해석은 일견 반박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의 문장을 보자.

자본금 규모를 보면 일본인 회사가 압도적으로 컸으며, 대규모 자본이나 근대적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에서는 일본인이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인이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조선인은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자본과 기술의 축적이 일천했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었지만, 이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p60)

저자의 말처럼 본문의 그래프 상에서 보여지는 조선 공장수와 회사수는 분명 매우 빠르게 증가한다.하지만, 이러한 수의 단순 증가가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조선이라는 제국의 한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통계의 착각으로 볼 수도 있다. 한반도에 한국인의 절대인구가 일본인 수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며, 많은 인구에서 더 많은 기업이 생겨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의미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당시 일본제국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편이 더 맞는 분석이 아닐까. 같은 시기 일본 제국 전체 통계에서도 그런 추세가 나온다면 저자의 분석이 맞겠지만, 조선인의 수가 압도적인 지역에서 단순 양 비교는 무의미하다 여겨진다. 아니면 일본 본토와 조선의 1인당 GDP 수치 변화는 어떨까. 정말 ‘내선일체‘가 1910년대 이루어져 근대화가 되었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식민지 조선이 일본의 경제수준에 근접한 통계가 있음직하다. 그런 통계를 제시해야 수탈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 수 있지 않을까.

초기의 이런 실증분석과 함께 책에는 이 책을 반대하는 이들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논리도 함께 제시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와 저자들의 주장이 섞여 있어 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조선인의 높은 재해율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조선인을 험한 곳으로 고의로 떠밀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입니다. 더 나아가, 그 한 세대 앞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그 조상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입니다.(p87)

오늘날, 일제에 대한 협력과 북한 정권에 대한 협력 중에서 더 중대한 과오는 어느 쪽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p224)

그렇지만 정말 저자의 주장대로 과거사에 책임을 묻는다면 반일종족주의에 빠졌다고 비난받을 것이기에(저자는 일본기업이나 일본정부의 배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맞지 않아 선뜻 이해가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책에는 다른 문제도 있는데, 이는 적절한 근거 제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문장을 얼버무리기도 하여 독자들의 신뢰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한국 사회가 유난히도 물질주의적인 것은 이미 여러 연구자가 여러 지표로 지적하고 있는 바입니다.(p20)... 더 자세히는 소개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같은 백두산 인식은 19세기 말까지 면면하게 이어졌습니다.(p142)

이처럼 「반일종족주의」는 실증사학자의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근거 제시가 부족하며, 저자의 개인견해가 많이 들어간 책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책 자체가 커다란 모순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경제사를 가르쳤던 저자의 자기 고백에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다‘라고 외친 어느 크레타인의 일화가 생각난다...

이 나라의 국민이 거짓말을 일삼고,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나라의 거짓말하는 학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나라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은 거짓말의 온상입니다. 이 나라의 대학은 거짓말의 제조공장입니다.(p14)


「반일종족주의」의 역사관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뉴라이트 사관에 기반한 학자들의 프로파간다를 잘 보여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며 간략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 리뷰를 마무리한다...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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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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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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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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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0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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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19-12-28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라이트식의 일본제국주의 시대 한반도 경제에 대한 해석과 논리전개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올해 읽긴 그른 것 같고 내년에나 펼쳐볼 수 있겠군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01:12   좋아요 1 | URL
Comandante님 감사합니다. 일반적의 상식과 다른 논리 전개지만, 통계 데이터를 제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그들의 논리의 모순된 점을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독서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12-28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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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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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28 1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겨호님의 리뷰로 만족하렵니다.

이런 책들이 베셀이 된다는 게 비극
이라고 생각합니다.

1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자년에도 열심히 달려 주시기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13:47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내용의 책은 안 된다 생각됩니다. 읽을 책도 많은데 말이지요. 레삭매냐 님께서도 연말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12-31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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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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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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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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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7: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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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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