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상을 지배해왔고 또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좀더 세련되지만 거친 많은 도덕을 편력하면서, 나는 어떤 특질이 규칙적으로 서로 반복되거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결국 나는 두 가지 기본 유형이 드러났고,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즉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이 있다.(p275) <선악의 저편> 中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는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Jenseits von Gut und Ba''se.Zur Genealogie der Moral >에서 도덕(道德)을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으로 구분한다. 니체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음 - 나쁨'의 대립의 이분법 구조와 '선 - 악'의 대립은 결코 같지 않다. 앞의 경우가 '주인도덕' 이라면, 뒤의 경우는 '노예도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고귀한 인간은 그와 같이 고양되고 자부심 있는 여러 상태이다. 고귀한 인간은 그와 같이 고양되고 자부심 있는 상태의 반대를 나타나는 인간들을 자신에게서 분리시킨다... 사람들은 이러한 첫번째 종류의 도덕에서 '좋음'과 '나쁨 schlecht'의 대립은 '고귀한'과 '경멸할만한'의 대립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 -'선 gut'과 '악 bose'의 대립의 유래는 다르다.(p275) <선악의 저편> 中


 노예도덕은 본질적으로 유용성의 도덕이다. 여기에는 '선'과 '악'의 저 유명한 대립을 발생시키는 발생지가 있다 : - 즉 힘과 위험, 경멸을 일으키지 않는 일종의 공포, 정교함, 강함이 악에 포함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노예도덕에 따르면 '악인'이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주인도덕에 따르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선인(善人)'이며, 반면 '나쁜' 인간은 경멸할 만한 인간으로 느끼게 된다.(p278)... 노예도덕이 우세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언어는 '선함'과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를 서로 접근시키려는 경향을 나타낸다.(p279) <선악의 저편> 中.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공포'를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다. 주인은 '공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행동을 부끄럼이 없는 방향으로 결정하지만, 노예는 공포를 통해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다. 주인은 '힘에의 의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겨내는 선택을 하는 반면, 노예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니체는 이러한 노예의 문제가 '언어(言語)'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칸트나 헤겔의 고상한 모범에 따르는 저 철학적 노동자들은 그 어떤 거대한 가치 평가의 사실을, 즉 지배적인 것이 되어, 한동안 "진리"라고 불렸던 이전의 가치 정립과 가치 창조의 사실을 확정하고, 논리적인 것의 영역에서든지 정치적인 것의 영역에서든지 예술적인 것의 영역에서든지, 이것을 일정한 형식에 밀어 넣어야만 한다.(p188)...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이자 입법자이다. 그들은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며, 그들의 창조는 하나의 입법이며, 그들의 진리를 향한 의지는 -힘에의 의지이다.- (p189) <선악의 저편> 中


 철학한다는 것은 일종의 최고 수준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 인도, 그리스, 독일의 모든 철학적 사유 행위가 놀랄 정도로 가족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된다. 언어 유사성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는 공통된 문법 철학에 힘입어 철학 체계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배열되도록 처음부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다.(p40) <선악의 저편> 中


 <선악의 저편>에서는 노예도덕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민족이 제시되는데, 바로 유대민족이다. 오랜 기간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은 유대민족과 유일신앙(唯一神仰)은 '선 - 악'의 도덕을 유대민족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유대인 '예수'를 통해 '선 - 악'의 도덕은 노예도덕은 정점에 달하고, 유대인 '니체'에 의해 부정되는 노예도덕을 보면, 유대민족은 '노예도덕'의 처음(alpha)이자, 마지막(omega)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대인들 - 타키투스 Tacitus 나 고대 세계 전체가 말한 바로는 '노예로 태어난' 민족, 그들 스스로 말하고 믿기로는 '모든 민족 가운데 선택된 민족' - 이 가치의 전도라는 저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 그 덕분에 지상에서의 삶은 몇천 년 간 새롭고 위험한 자극을 받아왔다 : 그들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시작된다.(p152) <선악의 저편> 中

 

  '노예(slavery)'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베르디의 오페라의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떠올리게 된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지만, 니체에게 있어 <노예들의 합창>의 주제는 노예 도덕에서의 해방이었을까.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 ~ 1901)의 초기 오페라들은 로시니, 벨리니, 특히 도니체티의 전통 위에 만들어졌다. 첫 성공작인 <나부코 Nabucco>(밀라노, 1842)는 성경에 나오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여기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날아가라 내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는 이후 외국 지배에 항거하는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p135)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하)> 中


 '주인도덕'과 '노예도덕'과 그 안에 담겨있는 '좋음 - 나쁨' , '선 - 악', '언어'의 문제는 니체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낯선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도올 김용옥 교수가 TV 강의 <노자 도덕경>을 통해 대중에게 니체 철학의 일부를 소개했다.  왕필(王弼, 226 ~ 249)의 주(註)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노자(老子, BC 601 ~ ?) <도덕경 道德經> 해설은 대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알기 쉬우면서도, 죽은 신을 대신하지 못한 서양철학의 한계를 동양철학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니체 철학을 보다보면, DNA의 나선구조를 연상하게 된다.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안티 크리스트>를 통해 기독교를 부정하고,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1813 ~ 1883)와 예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후에 <니체 대 바그너>를 통해 바그너를 부정했으며, 유대인으로 태어나 <선악의 저편>을 통해 유대인의 사상을 비판한 니체의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는 '자기 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주 : 니체가 유대인이라는 내용과 유대인의 사상을 비판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니체는 '노예도덕'을 통해 기독교를 비판했지만, 유대민족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고 이는 후에 바그너와 사상적으로 결별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본문의 내용 일부를 수정합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부정을 통해 추구한 '생명(삶)'. 그리고, 이를 위한 '힘에의 의지'가 최대의 상대인 '신(神)'마저 죽였을 때, 부정할 수 없는 상대가 없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영화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트루먼이 요트를 타고 스튜디오 끝에 도달했을 때 상황이 여기에 비길 수 있을까. 스스로 바깥을 향해 나갈 출구를 찾지 못한 트루먼. 그것이 니체철학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진] 영화 <트루먼 쇼> 中 (출처 : http://standplaatswereld.nl/re-viewing-the-truman-show/)


PS. 니체의 부정을 하나 더 추가하자. '플라톤은 싫지만, 플라톤이 싫어했던 민주주의도 싫어요.' 


  "그러니까 민주 정체는 이런 점들을 그리고 그 밖에도 이것들과 유사한 점들을 갖고 있겠으며, 또한 즐겁고 무정부 상태(anarchos)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에게도 평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isotes)을 배분해 주는 정체인 걸로 보이네." 내(소크라테스)가 말했네.<국가 Politeia> 제8권 558c


 가장 숭고한 무리동물의 욕구에 따르고 아부했던 종교의 도움으로, 우리는 정치/사회 제도에서조차 언제나 이러한 도덕이 좀더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민주주의 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운동의 유산을 상속한 것이다. 그러나 조급한 사람과 앞에서 언급한 보능에 시달리는 병자나 중독자에게는 속도가 아직도 너무 느리고 졸릴 정도라는 사실, 이것은 현재 유럽 문화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무정부주의자의 개들이 더욱 광포하게 으르렁거리며 더욱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p162)... 유럽의 민주화는 가장 미묘한 의미에서 노예 근성을 준비하는 인간 유형을 산출하는 데 이르게 된다.(p240) <선악의 저편> 中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사상 중 언어에 기반한 이데아(idea)론에는 반대하지만, '주인도덕'을 강조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니체의 사상에서 스파르타(Sparta)의 정치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니체의 부정은 완전 부정이 아닌 부분 부정이었으며, 그의 파괴가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 ~ 1950)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만일 니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정신없는 글'이라 욕할 정신없는 페이퍼를 이만 줄인다. 진짜다.

 

 기업가 이윤은 절대로 소득분야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가 기능이 수행되자마자 기업가의 손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것은 새로운 일의 창조와 관련이 있고, 발전가치 즉 장래 가치체계의 실현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발전의 총아임과 동시에 희생이다. 발전 없이 기업가 이윤은 없고 기업가 이윤 없이는 발전이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기업가 이윤 없이는 재산형성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덧붙여 설명해야 한다.(p231) <경제 발전의 이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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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8-31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 철학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데요, 유일하게 동의하는 부분이 ‘노예도덕’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9-08-31 18:02   좋아요 1 | URL
니체 철학이 고대 그리스 문화, 기독교 문화에 기원한 것이라 동양사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서양인들이 느끼는 만큼의 충격은 안오는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한 ‘노예도덕‘에서 벗어나 ‘주인도덕‘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처음부터 유일신앙을 가지지 않은 다른 민족들은 주인으로 살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노예‘라는 속성이 ‘선-악‘의 구분을 가져다 주는 유일신앙의 문제라기 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기제‘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31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이 맞습니다.
종교 문제는 아닌거 같습니다.
노예에 빠질수도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 모두 사람이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8-31 19: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여러 조건들(사회적, 경제적 제약)에 의해 제약된 선택이 대부분이기에 진정한 주인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예와 주인의 어느 사이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9-09-0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팥쥐 2019-09-16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대인으로 태어나 <선악의 저편>을 통해 유대인의 사상을 비판한 니체의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는 ‘자기 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 위 본몬내용 중-

니체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니체는 유대인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유대인 차별주의자와 경혼하자 결혼식에 불참하며 하나 뿐인 동생과 완전히 결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16 19:07   좋아요 0 | URL
팥쥐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먼저 니체가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팥쥐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맞습니다. 그리고, 니체가 유대인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그너의 반(反) 유대주의성향에 실망한 것으로 알고 있어, 니체가 유대인이라고 단정지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한, 니체가 노예도덕으로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기에, 반유대교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페이퍼를 작성했습니다.

팥쥐님 말씀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니, 니체가 유대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내용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니체 사전>을 보니 니체는 유대 민족에 대해 고귀한 민족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팥쥐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

막시무스 2020-08-23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이진경쌤의 선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에 관한 강의서를 가이드로 니체의 책을 읽어 나가려고 했는데 이 페이퍼 보니 그냥 니체로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ㅎ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시원한 저녁시간되세요!ㅎ

겨울호랑이 2020-08-23 18:32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입니다만, 막시무스님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초이스 2021-07-2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자에 관한 서평이어야 하는데 웬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