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프랑스인들은 독일인에 비해 온건하다. 당신들은 기껏해야 왕을 참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왕은 당신들이 머리를 자르기 전에 이미 머리를 상실했다... 막시밀리앵 드 로베르스피에르를 이마누엘 칸트와 비교한다면, 그것은 로베스피에르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p165)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 ~ 1856)의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Zur Geschichte der Religion und Philosophie in Deutschland>에서 프랑스 대혁명(Revolution francaise, 1789 ~ 1799)에 필적할 만한 독일혁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프랑스인들에게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에서 하이네가 말하는 독일 혁명은 어떤 것일까. 그 이야기는 프랑스와 독일의 차이로부터 시작된다.


 일찌기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가 <갈리아 원정기 Commentarii de bello Gallico>에서 밝혔듯이,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은 그들의 선조들인 갈리아 인들과 게르마니아 인들만큼 다른 민족이었기에 독일의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네는 독일 혁명이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보았을까?

 

 21 (1) 게르마니족의 관습은 갈리족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종교적 업무를 주관할 드루이데스들도 없고, 제사에도 관심이 없다. (2) 그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은 태양신, 불의 신, 달의 여신처럼 눈으로 볼 수 있고 확실히 이익을 가져다주는 존재들뿐이다. 다른 신들에 관해서 그들은 소문조차 듣지 못했다.(p196)... 24 (1) 전에는 갈리족이 게르마니족보다 더 용감하여 먼저 공세를 취하는가 하면, 인구 과잉과 경작지 부족으로 레누스 강 동쪽으로 이민단을 보낸 적도 있었다... (6) 패배하는 데 점점 익숙해진 갈리족은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한 뒤에는 자신들이 용기에서 게르마니족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5 (4) 이쪽 게르마니아에는 설사 60일을 걸었다 해도 이 숲의 동쪽 끝에 이르렀다거나 또는 이 숲이 어디서 끝나는지 들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p199) < 갈리아 원정기> 中


 하이네는 독일 혁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와 철학에서 혁명 원리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지적했듯 사상의 부재는 가져온 프랑스 혁명의 실패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독일 혁명은 종교와 철학의 완성자가 있었기에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이네는 주장한다. 먼저 종교를 살펴보자.

 

 자유로운 정부를 형성하는 작업은, 즉 자유와 억제라는 이 반대 요소를 조정하여 하나의 일관된 작품 속에 가두는 일은 많은 사려, 깊은 성찰, 현명하고 강력하며 결합하는 정신을 필요로 한다.(p375)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中 


 독일에서는 혁명의 원리가 토속적이며 독일적인 철학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한, 그리고 그러한 철학의 힘으로 보편화되지 않는 한, 어떠한 혁명도 불가능하다.(p100)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독일 철학은 전 인류의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와 같은 방법론적인 민족은 개혁으로 시작해서 이를 바탕으로 철학을 세우고, 오직 이를 완성한 이후에야 정치적 혁명으로 이행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238)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정신주의는 물질을 파괴하고 정신을 찬미하는 사유이고, 감각주의는 정신의 지배에 맞서 물질의 자연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사유이다.(p54)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독일에서 가톨릭에 대한 투쟁은 다름 아닌 정신주의가 일으킨 전쟁이었다. 정신주의는 지배라는 타이틀만을 가지면서 법적으로만 지배했고, 반면에 감각주의는 오랜 은신처를 기반으로 현실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실제로 지배했다... 17 ~ 18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가톨릭에 대한 투쟁은 독일과는 반대로 감각주의가 일으킨 전쟁이었다.(p55)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는 종교 혁명의 완성자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를 제시한다. 하이네가 바라본 루터는 단순한 종교 혁명가가 아니라, 독일어 성경을 보급을 통해 독일 정신을 세운 선구자다. 루터의 독일어 보급 이후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 1679 ~ 1754)에 의해 비로소 독일어로 철학책이 씌어질 수 있었기에, 루터의 업적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인간 본성과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자연적 이성은 천성적으로 미신적이고 앞서 주어진 법과 행위에 의해 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울어져 있고, 여기에 추가해서 모든 지상의 입법자들 관행에 의해 같은 생각으로 길들여져 있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이 행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들을 이끌어주고 가르침 받은 자, 즉 신께 순종하는 자들로 만들고 그 자신이 우리 마음에 그가 약속한 것처럼 법을 새겨주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는 한, 행함은 우리에게 속한다.(p350)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中


 앞에서 나는 우리가 그를 통해 어떻게 가장 위대한 사유의 자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서술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는 단지 운동의 자유만이 아니라 운동의 수단도 가져다 주었다. 말하자면 그는 정신에 육체를 부여했다. 그는 사유에 언어를 입혔다. 그는 독일어를 창조했다.(p74)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종교가 철학에 도움을 바라는 순간부터 종교의 몰락은 피할 수 없다. 종교는 자신을 옹호하려 애를 쓰며 지껄여대다가 점점 더 깊이 파멸로 빠져들었다.(p135)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종교가 철학에 자리를 내주고 난 후, 독일 철학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에 의해 완성되었다. 하이네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보다도 높게 평가한 헤겔 철학은 <역사 철학 강의 Vorlesungen u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혁명을 세계사적 사건으로서 살펴보아야 한다. 형식적인 자유의 대립과는 별도로 이 혁명은 그 내실로 볼 때 세계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모든 라틴국가(로마 가톨릭 세계) 즉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이르는 곳마다 자유주의는 파산한다.(p430)... 라틴 제국에 대립하는 것으로서는 특히 프로테스탄트 제국이 있다... 독일은 프랑스군의 침략을 받을 뻔했으나 국민의 힘으로 그 압박을 물리쳤다. 명목뿐인 왕국은 완전히 소멸하고 몇 개의 주권국가가 탄생했다. 봉건제도는 폐지되고 재산과 개인의 자유가 근본원리가 되었다. 고매한 군주를 갖는 것은 국민에게는 커다란 행복이지만, 강력한 이성에 지탱이 된 대국에 있어서 그것은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갖지 않는다.(p433) <역사 철학 강의> 中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이 잇따라 교체하는 가운데 세계사가 그와 같은 발전과정을 더듬고 거기에서 정신이 실제로 생성되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틀림없는 변신론(辯神論)이며 역사 가운데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사실이다.(p434) <역사 철학 강의> 中


 헤겔이 칸트와 피히테를 훨씬 능가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칸트처럼 명민했고, 피히테처럼 힘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근본적으로 평화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헤겔은 라이프니츠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다.(p230)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발전하는 역사의 흐름에서 이를 주도하는 민족은 교체되는 것이 신의 섭리이며, 과거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라틴 제국의 패권은 독일을 포함한 프로테스탄트 제국으로 교체되는 것이 필연임을 주장하는 <역사 철학 강의> 를 통해 하이네는 독일 민족의 위대한 혁명의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독일 혁명을 예고하는 결연한 문장을 읽다보면 우리는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의 결론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의 마지막을 읽다보면, 약소국의 슬픔과 밝은 미래에 대한 간절함 또한 느낄 수 있다.


 독일의 천둥소리는 물론 독일적이다. 그것은 매우 민첩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온다. 하지만 천둥은 울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 프랑스인들이 언젠가 그 천둥소리를 듣게 될 때, 세계사에서 결코 울린 적이 없는 그런 천둥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p241)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 中

 

 나의 목소리에는 아득한 옛날부터의 여러분의 조상들, 물밀듯이 밀려오는 로마인의 세계 지배에 맨몸으로 대항하여, 지금은 외국인의 악랄함에 맡겨져 있는 여러분의 산하와 평야의 독립을 위해 피 흘려 싸운 조상들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고 생각하라.... 또한 우리들은 신의 세계 계획에 의해 신성해지고 고무받은 사람들로 생각된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 中


  이처럼 하이네의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에서는 루터 이후 독일 종교와 철학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왔으며, 독일 민족의 혁명이 멀지 않았음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독일 사상의 흐름 외에 강대국 프랑스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약소국민의 슬픔이 잘 나타나, 아픈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 중 하이네나 피히테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 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 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 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 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 (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 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己未 獨立 宣言書(기미독립선언서)  원문> 中


PS. 라인강의 간격이 현해탄만큼 넓다는 것을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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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12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득 요즘 호랑이님의 도서 목록이 빡세(?)다는 생각을 했는데, 좀만 더 생각해보니 이분은 사시사철 그래왔던 분이시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12 09:38   좋아요 1 | URL
에고, 제 독서 스타일이 다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향이 있어 syo님께서 빡세다는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나이가 들면 독서가 넓이가 아닌 깊이가 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보면 부족함이 많아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독서 목록 빡센 것으로는 syo님만한 분도 없을 것이라 쑥쓰럽네요 ㅋ 감사합니다.

syo 2019-07-12 09:45   좋아요 2 | URL
아, 호랑이님께서 ˝깊이가 없다˝고 말씀하셔서 깊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한참을 생각합니다..... 혹시 무슨 사전 보세요? 제 거랑 너무 다른 것 같아서ㅎㅎㅎ

대뜸 한 마디만 툭 던지고 예의도 갖추지 않았었네요. 좋은 페이퍼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9-07-12 10:36   좋아요 1 | URL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syo님의 재치는 따라갈 수 없네요. 그런 재치와 자유로움이 참 부럽습니다. 이제 시헙도 잘 마무리하셨으니, 좋은 글 부탁드려요. 즐거운 금요일, 주말 시작하세요!

2019-07-12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2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4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4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7-12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 나라들이 붙어 있다보니 참 옥신각신할 일이 많았던 거 같은데 1차 세계대전도 사실상 유럽 내전이었잖아요. 민족주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만들기에 적절한 방법이었겠지요. 이게 효과가 좋은지 전세계적으로ㅎㅎ;;

겨울호랑이 2019-07-12 18:40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누구를 위한 민족주의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주의 뿐 아니라 다른 사상도 누군가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