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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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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단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만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선택 행위다. 선택의 결과,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시야의 범위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결코 한 가지 물건만 보지 않는다. 언제나 물건들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타인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자신 역시 가시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 된다.(p11)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존 버거(John Berger, 1926 ~ 2017)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에서 작품 제작(製作) - 감상(鑑賞) - 소비(消費)라는 예술 시장의 모습를 통해 '보는 행위'의 의미를 살펴본다. 여기에서 저자는 '본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주된 방법으로 설명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진] 다른 방식으로 보기(출처 : https://www.bfi.org.uk/news-opinion/sight-sound-magazine/features/image-lib-john-berger-ways-seeing)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p9)...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p10)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그렇다면, 제작 단계에서 작품은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까.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는  누드(nude)라는 표현 양식 안에 숨겨진 사회의 모습을 지적한다. 예술 작품 안의 불평등한 관계는 불평등한 사회관계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p76)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소유자)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보통 여자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우리 문화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여자들의 인식을 형성한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p75)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그렇다면, 사회(또는 문화)는 '본다'라는 행위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이는 감상 단계에서 잘 드러나는데, 작자의 의도가 관객에게 전달되며 주관성과 객관성의 혼합으로 작품 안의 표현이 사회 인식으로 바뀌게 됨을 밝힌다.


 벌거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평범성이라는 요소가 개입하게 된다. 이 평범성이란 단지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 되기까지 타인은 어쨌든 신비스러운 존재다.(p70)... 우리의 시선이 성기로 옮겨 가면 곧바로 그것의 형태 자체가 보는 사람을 일방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 버린다. 즉 타인의 존재는 가장 기본적인 성적 범주인 남성 혹은 여성으로 축소되거나 격상된다.(p71)... 벌거벗은 몸이 최초로 드러나는 순간, 하나의 신비감이 상실됨과 동시에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신비감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 과정은 '주관적인 것 - 객관적인 것 - 두 가지가 결합된 힘'으로 진행된다.(p71)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이와 같이 제작 단계에서는 사회가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면, 감상 단계에서는 작품이 사회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에 외부요인이 추가되면서, 예술 작품은 다양화된다. 구체적으로 책에서는 유화(油畵)와 같은 기법, 광고(廣告)와 같은 수단 등이 제시되는데 이들은 자본(資本 capital)의 영향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유화(oil painting)라는 용어는 기법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기름에 물감을 섞어서 그리는 기법은 일찍이 고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템페라 기법이나 프레스코 기법으로는 묘사하기 힘든 삶의 특정한 정경을 그리기 위해 기법을 특별하게 개발하고 완성시킬 필요가 생겼을 때, 비로소 미술형식으로서의 유화가 탄생한 것이다.(p98)...자본이 사회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유화는 사물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 마치 모든 것이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모두 서로 교환 가능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유화는 모든 사물을 동등한 대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p102)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광고는 미래 시제로 얘기하지만, 그 미래의 달성은 끊임없이 연기된다... 광고의 진실성이란 광고가 내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주는 환상이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품는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p169)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이와 같은 (예술) 작품의 다양화는 우리에게 그만큼의 이미지를 제공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원작 - 복제품'의 관계가 된다. 소비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들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 ~ 1940)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barkeit>의 리뷰 몫으로 넘기도록 하자.


 이미지는 재창조되었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 사진이 사진을 찍은 사람의 무한히 많은 시각들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비록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긴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p12)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현재의 복제 기술이 해낸 것은 예술의 권위를 파괴하고 예술을 그 어떤 보호영역으로부터 떼어낸 것이다. 이제 예술 이미지는 마치 언어처럼 우리 주위를 둘싸고 있다. 예술 이미지는 삶의 주류에 합류했는데, 이제 예술 자체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삶을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p39) <다른 방식으로 보기> 中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이처럼 '보기'라는 행위안에 담긴 의미를 예술 작품의 제작 부터 소비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제시한다. 여러 작품 사진과 함께 제시되는 이러한 예시는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한다. 이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우리에게 '보기'라는 행위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기에 한 번 읽을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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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7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5-07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은 책인데 헌책방에서 만날 수가 없네요.

2019-05-07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5-07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좋은 책이었습니다.
미술 보기도 이데올로기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5-07 23:42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간결하게 설명한 좋은 책임을 저 역시 느꼈습니다. 아울러 존 버거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5-07 23:50   좋아요 1 | URL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요, 파시즘처럼 이데올로기가 없는 현상 이해가 과연 세상에 존재조차 가능한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9-05-07 23:53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로서는 더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먼저 답을 얻으시고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