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축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축일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놀라운 축일입니다. 그날을 모든 축일의 머리요 어머니라고 불러도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무슨 축일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태어나신 바로 그날 입니다.... 그런즉, 한 근원에서 여러 강물이 시작되듯이,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이 모든 축일이 비롯합니다.(p98)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AD 349 ~ 407)<교부들의 성경 주해 : 신약성경4> 中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우리에게 기독교의 명절로만 여겨지고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에서 성탄절(聖誕節)로 큰 축일임은 분명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동지(冬至)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막연하게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동지를 맞아 크리스마스와 동지와의 관계에 대해 <아시모프의 바이블>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성탄 축일이 12월 25일로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 목자들이 심한 추위 속에서 그리고 어쩌면 한껏 쌓인 눈 속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중요한 것은 루가와 마태오가 어떤 방식으로도 성탄일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12월 25일인가? 그 해답은 천문학과 로마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p364)<아시모프의 바이블 : 신약, 로마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가다>中


 우리에게 SF 작가로도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는 자신이 저술한 성경 해설서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명을 위와 같이 시작한다. 그를 따라가기 전 먼저 우리는 고대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동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 새해는 봄에 시작하는 것이 더 좋을 텐데 어째서 추울 때 시작하는지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오.(150)... 그러나 그분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다음 두 행으로 요약해서 말했습니다. "동지는 묵은 태양이 새 태양으로 바뀌는 날이라 태양도 한 해도 똑같이 그때 시작되는 것이라오."(163) <로마의 축제들 제1권>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 ~ AD 17)는 <로마의 축제들 Fasti> 속에서 야누스(Janus)의 입으로 위와 같이 동지에 대해 말한다. 한 해의 시작이 동지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고대 로마에서 동지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쉽게 <로마의 축제들>은 1월부터 6월까지의 축제를 설명하기에, 동지에 행해지는 로마 축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아시모프의 바이블>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동지는 '태양의 탄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을 기념하는 큰 명절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3일 동안(나중에는 7일 동안)동지를 축하했다. 이 축일은 옛 로마의 농경신인 '사투르누스 Saturn'를 기리는 뜻으로 '사투르날리아 Saturnalia'라고 불렀다. 사투르날리아에는 죽음을 유예받고 되살아난 것을 기념하는 축일답게 그야말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축제와 잔치와 노래와 선물 주고받기를 위해 모든 공사(公事)가 중단되었다.(p365) <아시모프의 바이블 : 신약, 로마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가다>中


 이와 같이, 고대 로마에서 동지는 한 해의 시작이었고, 어둠에서 빛이 탄생한 큰 명절이었다. 동지가 가지는 위와 같은 이미지는 어두운 세상을 구원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이미지와도 잘 맞았지만, 결정적으로 신앙(信仰)의 확산, 복음의 전파라는 현실적인 필요가 '크리스마스=동지'가 되는 것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 시대의 처음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는 페르시아에 뿌리를 둔 태양 숭배의 한 형태인 미트라 신앙 Mithraism과 경쟁해야 했다. 미트라 신앙에서 동지는 당연히 큰 명절이었고, AD 274년에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12월 25일을 태양탄생일로 지정했다.... 지도자들의 판단에 따라, 그리스도교는 교회의 기본교리에 배치되지 않는 선에서 이교도 풍습에 순응했다.... 성탄일이 그렇게 정해지자, 개종자들은 몸에 밴 사투르날리아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도 그리스도교에 귀의할 수 있었다. 그들은 태양 Sun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Son을 기쁘게 영접하기만 하면 되었다.(p366) <아시모프의 바이블 : 신약, 로마의 바람을 타고 세계로 가다>中


 결국, 우리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일반 대중들의 속(俗)에서의 즐거움과 교회 교리의 성(聖)이 결합된 결과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동시에, 이교도 풍습에 대한 배척이 아닌 포용이 초기 기독교 확산에 긍정요인이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지가 유럽이나 중동(中東) 아시아만의 명절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전통 문화에서도 동지는 매우 중요한 명절이었고,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였다. 또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국왕에게 전문(笺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가 아버지 김노경(金魯敬)을 따라 청나라를 방문해서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을 만나고 청나라 문물에 눈을 뜨게 된 계기도 동지사 파견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동지사 파견을 통해 이루어진 인적 교류와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겠다. 지금은 비록 옹심이 넣은 단팥죽 먹는 날 정도로 알려진 동지이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는 이들도 기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여전히 동지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명절임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일년 중 가장 밤이 긴 이 날을 지내고 이제는 낮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찬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지 날 깊은 밤,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2019년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이번 글을 갈무리한다.


PS. 크리스마스가 동지라면, 교회력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은 하지(夏至)에 해당하는 6월 24일이다. 이는 예수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임신 개월을 고려하여 계산한 결과이지만, 교회에서는 이 역시 의미가 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 30)'의 구절처럼 하지 이후 점점 짧아지는 해는 교회에서 바라보는 세례자 요한의 존재를 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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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3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sulemono 2018-12-23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3 08:58   좋아요 1 | URL
wasulemono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oren 2018-12-23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어제 오전에 산책을 겸해 정발산 아래에 있는 여래사(如來寺)라는 절에 갔다가 수많은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웬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절로 모여드는지, 법당에 올라가 봤더니 오백은 족히 넘을 듯하고, 천 명 가까이 될 지도 모르는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그곳을 뺴곡히 채우고 예불을 올리고 있더군요. 절을 찾을 때마다 너무나 한가하고 고요한 모습만 봐온 터라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더군요.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를 앞둔 교회를 빼닮았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 하고 아무한테나 물었더니, ‘오늘이 동지잖아요. 일년 중 큰 행사날이지요.˝ 하더군요. 동지가 불교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날인 줄도 어제 처음 알았는데, 바로 그 동지가 크리스마스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까지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자세히 알게 되니, 동지가 꽤나 흥미로운 날이구나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3 14:2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불교에서도 동지가 중요한 날이었군요. 저도 oren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화권마다 크고 작은 명절이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 의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oren님, 포근하고 행복한 일요일 오후 되세요!

2018-12-23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