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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평점 :
이 책의 요지는 단순히 한 개체가 어떤 종(種)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차별하는 것이 일종의 편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떤 인종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개인을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부도덕하고 정당화될 수 없다.(p409) <동물 해방> 中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는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에서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근거 위에서 우리의 현실(동물 실험, 공장식 농장)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지점은 감정적 호소보다 이성적 논증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잔혹한 행동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부분이라 생각되고, 이 부분이 저자에게 높은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동물 해방>에 담긴 저자의 현대 문명 비판과 해결방안이 무엇인지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p346)... 벤담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생물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무단으로 이익을 배제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interest)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p37) <동물 해방> 中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은 이성적 사고나 언어의 관점이 아닌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본 최초의 사상가였다. 그리고, 이 관점을 피어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최근 연구 성과를 통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최근 뇌(腦)과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며, 오히려 간뇌가 발달한 동물이 느끼는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대뇌 피질이 더욱 잘 발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뇌 피질은 기본적인 충동이나 정서, 그리고 느낌보다는 사고 기능과 관련이 있다. 충동이나 정서, 그리고 느낌은 간뇌(間腦, diencephalon)가 주로 담당하며, 이러한 부위는 다른 종의 동물들, 특히 포유류와 조류에서도 발달이 두드러진다.(p43)... 동물들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이 느끼는 고통(또는 쾌락)이 인간이 느끼는 동일한 양의 고통(또는 쾌락)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p49) <동물 해방> 中
그렇다면, 저자에게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의 행동과 신경계통의 유사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고통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비교적 최근 출현한 동물이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인간 아닌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능력에 대한 두 가지 척도를 제시한 바 있다. 우선 그 생물의 행동이 척도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생물이 움츠린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고통을 피하려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 고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 생물과 우리의 신경계가 유사한지의 여부가 구획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진화 단계를 거슬러 내려감에 따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의 강도가 약해짐을 발견한다.(p297) <동물 해방> 中
이처럼 동물 역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는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물들이 놓여있는 환경은 어떤가? 동물 실험 도구로 사용되는 토끼, 비좁은 곳에서 사육되는 닭과 돼지, 신속한 도살을 위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의 모습이 <동물 해방>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근거로 더 이상 육류 소비를 하지 말 것을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안은 무엇일까?
[사진] 공장식 사육 (출처 : http://marathon.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749870)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현대 공장식 농장이라는 조건하에서 사육된 가축의 고기나 생산물을 구입하거나 먹지 말아야 할 도덕적인 필연성을 인식했길 바란다. 이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다. 이는 최소한 요건이다.(p295) <동물 해방> 中
이처럼 동물들에 대한 냉혹한 태도는 '인간(人間)' 중심의 사고와 경제(經濟) 논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採食)을 주장한다. 스스로 채식주의자(Vegetarian)이기도 한 저자가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행동 양식은 구체적이다.
동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운 요인들 중에서 극복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첫째, '인간 우선'이라는 가정과 둘째, 동물에 관한 문제는 그 무엇이건 인간에 관한 문제와 비교할 만큼 중대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가정이다.(p371) <동물 해방> 中
가축에서 온 고기를 식물성 음식으로 대체한다. 구할 수만 있다면 공장식 농장에서 온 계란을 방사한 닭의 계란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계란을 먹지 말라. 우유와 치즈를 두유, 두부, 또는 다른 식물성 식품으로 대체하라. 하지만 유제품이 들어 있는 모든 음식을 피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p305) <동물 해방> 中
[사진] 채식주의 식단(출처 : http://www.chooseveg.in/food-plate-in)
최종적으로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종(種)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에 나오는 많은 동물 학대 사례와 논증은 이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지만, 생생한 사례와 함께 제시되는 저자의 논증은 동물 학대가 바르지 않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 해방>을 통해 비록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현재 육가공 시스템의 문제점과 제약 업계의 동물 실험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다수가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scrition)이다.(p33) <동물 해방> 中
최근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구제역(口蹄疫, Aphtae epizoot), 조류독감(avian influenza, HPAI)의 문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공장식 사육 제도'다.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이 시스템 아래에서 가축들의 면역력도 딸어지며, 질병이 빠르게 퍼진다는 것은 대표적인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과 동물에게 지나치게 가혹다는 반대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업계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속에서 <동물 해방>은 공장식 사육제를 비롯한 동물 문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생산적이다.
그렇지만, <동물 해방>은 나름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그렇다면, 왜 육식만 금지해야 하고, 채식은 허용되는가?' 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이들을 고통스럽게 죽여서는 안되고, 먹어서도 안된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동물의 고통은 밝혀졌지만, 아직 식물의 고통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이 확인된 동물을 먹는 대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식물을 먹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입증(入證)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또한, 음식은 우리 인류 역사가 담긴 문화(文化)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각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온 음식 문화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금지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육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종 평등' 이라는 이름하에 또다른 획일화 강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장식 사육', '공장식 도축'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 다른 측면이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고통을 느끼는 기준이 우리 신경계와의 유사성 때문이라면 그 기준 자체가 인간 중심적인 기준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도 제시할 수 있겠다. 종(種) 평등을 주장하는 저자지만,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종일수록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기준 자체가 종 차별적인 주장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동물 해방>에 담겨진 저자의 주장에 대해 위와 같은 물음이 떠오르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육식(肉食) 위주의 식습관과 경제논리에 입각한 현재 축산업, 제약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동물 해방>은 독자들에게 여러 과제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