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러시아 혁명 1917 ~ 1929 The Russian Revolution 1917 ~ 1929>을 통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농업 국가인 러시아의 공업화 과정과 여기에서 빚어진 갈등을 밝히고 있다.

 

 애초에 마르크스는 선행하는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확립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전한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이런 토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레닌은 경제적/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를 기대했다. 혁명이 곧바로 국제적 성격을 띨 것이라는 가정하에서만 이 딜레마를 피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체가 경제적으로 후진적이고 수적으로 미약한 한 나라에서 혁명을 통해 도입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의 통일된 프롤레타리아트가 일으킨 혁명의 결과로 예상한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러시아 혁명은 혼성되고 양면적인 성격을 띠었다.(p273)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에 따르면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2단계 혁명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렇지만, 1917년 당시 러시아는 농업국가였으며, 마르크스의 혁명 도식에서 벗어난 국가였다. 이는 온건파인 멘셰비키(Mensheviks)와 볼셰비키(Bolcheviks)가 대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멘셰비키가 부르주아 혁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레닌(Vladimir Ilyich Ulyanov, 1870 ~ 1924)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제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거쳐 정권을 확고하게 장악한 레닌과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해야 했다.


 소련의 산업, 특히 중공업은 비효율적인 고비용 생산 부문인 반면, 농민 노동을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는 농업은 상대적으로 저비용 생산 부문이었다. 자본이 최대 수익을 얻는 방법은 농업에 자본을 투자해서 수출용 잉여 농산물을 증대시켜 산업의 궁극적 발전을 위한 자본재를 비롯한 산업재 수입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자본이 부족하고 미숙련 노동 잉여가 넘처나는 소련 같은 나라에서 합리적인 경로는 자본집약적인 자본재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닌 노동집약적인 단순 소비재를 생산하는 산업에 우선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p165)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의 현실은 산업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련 인구의 다수가 농민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은 경공업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소련이 직면한 현실은 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르크스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소련 내부에서 빠른 산업화와 국제적인 혁명의 확산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위해 이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결코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첫째 조건은 농민이 도시와 공장에 필요한 식량을 임금 수준에 견디기 힘든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으로 공급하고, 농민 시장을 위한 소비재 생산에 전용되는 산업 자원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p196)... 공공연하게 공언된 둘째 조건은 노동의 생산성을 임금보다 빠르게 증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산업 팽창에 필요한 재원을 일부나마 산업 이윤 자체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198)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산업화된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농촌은 저렴한 노동력과 식량을 꾸준히 제공할 수 있어야 했으며, 도시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 이상의 생산성을 결과로 내어야 했다. 그리고, 이 구조가 선순환(善巡還)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촌 생산력의 증대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 경공업 보다 중공업의 발달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소련은 경제 권한의 집중과 반(反)시장주의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 중, 둘째 요소인 반 시장주의가 소련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전시공산주의는 두 개의 주요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편에는 중앙집중적인 통제와 관리, 소규모 생산 단위의 대규모 단위로의 대체, 통일된 계획 조처 등 경제적 권한과 권력의 집중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상업적/금전적 형태의 분배로부터 이탈, 무상이나 고정 가격의 기본 재화와 서비스 공급 도입, 배급, 현물 지불, 가정된 시장이 아닌 직접 사용을 위한 생산 등이 있었다.(p54)... 그런데 전시공산주의의 둘째 요소, 즉 '시장' 경제를 '자연' 경제로 대체한 것은 그런 기초가 전혀 없었다.(p55) <E.H. 카 러시아 혁명> 中


 통화는 또다시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다. 불확실성과 경계의 분위기 속에서 곡물은 가장 안전한 가치 저장물이었다. 비축물이 있는 농민들로서는 이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p186)... 신경제정책이 토대를 두었던 믿음, 즉 국가에 대한 자발적인 농산물 인도와 시장의 자유 판매를 결합한 체계로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산산이 무너졌다.(p192)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소련의 반 시장주의 정책의 실패는 다음의 내용을 통해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1985)는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zation and Capitalism>를 통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구분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브로델에 따르면 소련 지도부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련 경제는 시작부터 문제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된다.

 

 레닌이 "제국주의(imperialisme)"라고 부르는 것(또는 달리 말하면 20세기 초에 새로 탄생한 독점자본주의)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단순한 자본주의의 병존이 그것이다. 나는 갤브레이스와 레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내가 "경제(economie)" - 또는 시장경제 - 라고 부른 것과 "자본주의(capitalisme)"라고 부근 것 사이의 영역 차이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중세 이래 유럽에서 언제나 지속되던 상수(常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 시기의 모델에 세 번째의 영역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contre-marche)의 영역이 있다. 바로 이곳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p32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교환의 세계 上> 中 


 국가는 언제나 계급 지배와 억압의 도구였다.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와 국가의 존재는 양립할 수 없었다. 레닌은 직접 만든 경구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자유란 없다. 자유가 존재하게 된다면 국가란 없을 것이다."(p1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시장경제는 인류 역사를 통해 꾸준히 존재해온 양식이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한 1920년대의 소련 경제 정책을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등을 추진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러한 실패로 말미암아 1924년 레닌 사후 소련을 이끌게 된 스탈린(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 1878 ~ 1953)은 국제주의를 포기하게 되었다. 국가를 부정한 마르크스 - 레닌의 이론 대신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E.H. 카가 서술한 소련의 1920년대는 마무리 된다.


 그때까지 일국사회주의는 신경제정책의 연속으로 간주됐을 것이다. 신경제정책 또한 국제 혁명의 암울한 전망에 등을 돌렸고, 러시아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제 스탈린은 자급자족하는 러시아, 즉 근대화된 산업과 농업을 통해 변형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러시아라는 아주 다른 개념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었다... 일국사회주의는 현홍적인 장기적 전망이었고, 바야흐로 경제 상황에서 감지되기 시작하던 여러 변화와 들어맞았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그 주창자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자급자족의 조건으로서 중공업 장려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후진적인 러시아 경제의 자원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함축했다.(p11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코민테른의 결정은 사실상 소련 공산당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을 외국 공산당에 강요할 수 있고 실제로도 강요했지만, 해당 국가에서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대가를 치렀다. 노동자들은 동떨어진 외국의 권력이 자의적이고 때로는 전혀 부적절한 지시를 내리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 1920년대 말에 서구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수와 영향력이 쇠퇴하고 동조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p267)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몰두는 스탈린에게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일국사회주의 덕분에 스탈린은 사회주의에 관한 주장들을 러시아 민족주의와 조화시킬 수 있었다. 소수민족이나 작은 나라에 대한 스탈린의 처리 방식에서 민족주의는 쉽게 국수주의로 변질됐다.(p251)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저자는 E.H.카는 <러시아 혁명 1917 ~ 1929>를 통해 소련의 신경제정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집단화는 토지 혁명을 완성했는데, 이 혁명은 1917년에 농민들이 지주 토지 강탈로 시작됐지만 오랜 경작 방식과 농민의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남겨 높았다(p238)... 지난 12년 동안 농업은 여전히 경제 내에서 준 準 독립적인 고립지대로 남았고, 자체의 궤도를 따라 기능하면서 그 궤도를 변경하려는 외부의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이것이 신경제정책의 본질이었다.(p23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농민국가에서 공업국가로의 변신과 국제 혁명의 필요성 때문에 빚어진 '농촌 - 도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1920년대 소련의 경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소련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것이 1937년 이루어진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러시아 혁명과 우리 역사의 거리는 지리상의 거리보다 짧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출처 : http://webzine.nuac.go.kr/tongil/sub.php?number=1779)


 이처럼 <러시아 혁명>은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 후 10여년에 걸친 소련의 경제사를 '도시 - 농촌'의 대립 관점에서 짧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밀도있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독립운동 당시 고려인 이주 사건 외에도 1960년대 이후 우리의 경제발전사의 모델을 제시하는 등 우리 역사에 미친 직간접적인 영향 때문일 것이다. 농촌의 억압을 통한 도시 발전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소련 경제사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최근 한계에 부딪힌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한계점 역시 이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역사책을 읽는 이유라고 한다면, 비록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조금 넘겼지만,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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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24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에 반대하는 스탈린
이 레닌의 후계자가 된 것이 소련에게는
그야말로 대재앙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공산주의 역사발전 이론에서 아직 공업화가
덜 된 러시아에서 PT혁명이 발생했다는 점도
넌센스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독일 정도 되는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반대로
파시즘 국가가 되어 버렸으니.

푸틴 짜르 시절에 마치 다시 예전 제정 러시
아 시대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8-08-24 14:3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물론 마르크스 혁명론이 절대 진리는 아니겠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결과만을 추구하다보니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보다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문제 인식 공유가 먼저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2018-08-24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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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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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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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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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2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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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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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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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6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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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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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8-27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의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전 사회주의가 실패하지 않았다 봅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보고, 현실 사회주의는 쿠바도 있죠.

저 또한 스탈린을 비판하는 쪽에 가깝고, 레닌과 트로츠키보다 당연히 저평가하는 쪽이기는 하나 스탈린식 경제개발은 설사 트로츠키였다 하더라도 했을거라 봅니다. 내전으로 인한 경제 사정이 워낙 안좋았으니까요. 다만 일국사회주의와 국제사회주의라는 국제적인 측면에선 달랐을 거라 보고, 트로츠키의 경은 스타하노프 운동과 같은 짓은 안했겠죠.

참고로 전 사회주의자입니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제 심장을 뜨겁게 만드네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8-27 20:24   좋아요 1 | URL
^^:) 인류 사회가 지속되는 한 ‘평등‘과 관련한 논의는 계속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주의의 많은 요소들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제도 안으로 들어올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마르크스를 ‘예언자‘로 생각하고 사회변혁의 공식 틀에 맞춰서 움직이려고 했던 것은 유물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면서 베들레헴에서 예언자가 나와야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군요. 저는 성향이 보수적인 편이라 사회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주의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사상이나 이념도 분명 한계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