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사 - 국망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거울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2
박은식 지음, 김태웅 옮김 / 아카넷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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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 망국의 처참함이 한민족보다 더 심한 것이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은 망망하고 쇠잔한 숨길은 깜빡깜빡 희미하여 아픔을 울부짖고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을 스스로 그칠 수가 없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가 있으나 역사는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痛史)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p27) <한국통사> 中  


 박은식(朴殷植, 1859 ~ 1925)은 <한국통사>를 통해 한국 근대의 아픔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정신을 보존할 수 있다면 다시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한국통사>에서 말하는 나라의 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라의 혼과 백


 역사가 보존된다는 것은 나라의 혼(魂)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최대이며 최고의 나라를 들어 논한다면, 중국의 혼은 문학에 의탁하였고, 돌궐의 혼은 종교에 의탁하였다. 이는 혼이 강한 나라이다. 선비, 거란, 몽고와 같은 나라는 바야흐로 번성할 때는 능히 큰 땅을 정복하여 위엄을 천하에 떨쳤지만, 무력이 한 번 쇠약해지자 나라의 수명도 다하게 되었다. 이는 백(魄)이 강한 나라이다. 대개 국교(國敎), 국학(國學), 국어(國語), 국문(國文), 국사(國史)는 혼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錢穀), 군대(軍隊), 성지(城池), 선함(船艦), 기계(器械) 등은 백에 속하는 것으로, 혼의 됨됨은 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그 나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다. 오호라! 한국의 백은 이미 죽었으나, 이른바 혼이란 것은 남아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p310) <한국통사> 中


 사람이 죽으면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나라 역시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특히, '혼'이 '백'보다 더 중요하기에, 우리가 역사를 통해 '혼'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부흥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한국통사>에서 역사의 아픔을 기록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 민족 모두가 우리 조상의 피로써 골육을 삼고 우리 조상의 혼으로 영각(靈覺)을 삼고 있으며, 우리 조상은 신성한 교화가 있고 신성한 정법(政法)이 있고, 신성한 문사(文事)와 무공(武功)이 있으니. 우리 민족이 다른 것에서 구함이 옳겠는가. 무릇 우리 형제는 서로 생각하고 늘 잊지 말며 형체와 정신을 전멸시키지 말 것을 구구히 바란다.(p27)  <한국통사> 中


 아픈 역사의 시작


 과연, 이러한 아픈 역사의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저자는 이러한 시원(始原)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 ~ 1898)의 배움이 부족한 것에서 찾고 있다.


[사진] 경주 척화비(斥和碑)[출처 : 위키 백과]


 무릇 그 자리는 할 만했고, 재주도 할 만 했으며, 시운 또한 할 만했는데, 꼭 필요한 것은 배움이었다.  옛날과 지금을 두루 통하고 안과 밖을 관찰할 만한 학식으로 그 힘센 팔을 걷어붙이고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여 문명 열강과 같이 바다와 육지로 함께 달리며 여유로워야 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배움이 없어 국내를 다스리는 데는 사사로운 지혜를 임의로 사용하여 움직임이 많고 거동이 지나쳤으며, 국외를 대하는 데는 배척을 주장으로 삼아 문을 닫고 스스로 소경이 되었다. 마침내 변란이 매우 가까운 데서 발생하여 화가 나라에 미쳤으니 반도 중흥의 기운도 기어코 회복되지 못하였다. 아! 애석하도다. 아픈 역사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p57) <한국통사> 中


 세계 혁명사의 경험


 지도자가 배움이 부족하여 스스로 외부와 단절하고 고립의 길을 택한 결과로 근대 이후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인 박은식은 <한국통사>를 통해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점진적이며 꾸준한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을 기술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김옥균(金玉均, 1851 ~ 1894)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이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고 급진개혁을 추구하였으나, 결국 3일 천하로 막 내리게 된 갑신정변. 이의 실패 원인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이런 거사야말로 비록 폭발적이고 열렬한 행사라고 말할지라도 실은 하늘의 때[天時]를 따라야 하고, 인심에 응해야 하며,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하고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종 기관을 차례대로 설치하거나 종교를 좇아 인심을 끌어내든가 혹은 학설로 말미암아 솔선하여 주장하거나 언론으로 인심을 고취한다든다, 문자로 정치의 이치[政理]을 발휘해서 공중(公衆)의 사상이 점차 여기로 기울게 해야 한다. 그 후에 정치 방면에 들어가 맹렬히 급격한 수단을 사용하되, 찬성하는 자가 많아지고 반대하는 자가 적어졌을 때 새로운 정치를 세워야 아무런 방해물이 없게 된다. 비록 하루 동안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실은 수십 년의 오랜 시일을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세계 혁명사의 경험이다.(p126) <한국통사> 中  


 급진적인 개혁보다 지속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은 여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당시 독립당(獨立黨)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지점에서도 드러난다. 


 무릇 사람의 작업도 늘 마음에 두고 오래 지나도 게을리하지 아니하며 면밀히 힘을 기울이는 자는 비록 약할지라도 반드시 성공을 거둘 수 있으나,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성사시키겠다고 하여 미친 듯이 뛰어 달리는 자는 비록 강할지라도 반드시 패한다. 하물며 독립당은 본래 강력한 힘도 없는데 빨리 성사하려 함에 있어서랴.(p196) <한국통사> 中  


 결국, 저자는 지도자의 배움이 부족한 것에서 시작된 우리 역사의 불행을 바로 보고, 이러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후손들로 하여금 우리의 혼(魂)을 잘 보존할 것을 강조하고 이를 일깨우기 위해 <한국통사>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픈 역사를 돌아봐야하는가?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는 우리의 혼을 바로 세울 수 없는 것일까?


 고통의 의미


 살다보면, 몸이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혹시 내게 잘못된 생활 습관은 없는지, 내가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 것이 진정한 고통의 의미라 생각된다.


 <한국통사>에서 통(痛)은 '아픔'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라의 고통 역시 몸의 고통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 후에야 아플 통(痛)이 통할 통(通)으로 바뀌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끝나는 지점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 혼은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반성과 꾸준한 준비에서 나옴을 우리는 최근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한국통사>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라 여겨진다. 


[사진]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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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1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8-05-0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우리 역사에서 ‘痛‘자는 발붙일 없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5-01 11:25   좋아요 0 | URL
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아픔은 없어야 겠지요...

AgalmA 2018-05-02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을 바로 세우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민족이나 국가에 일치시키는 건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되기 쉽죠. 이게 현대에서 큰 문제점이기도 하고요. 경제적 이득을 꾀하면서 국가주의를 앞세우는 많은 나라들 보십시오. 민주주의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죠.

겨울호랑이 2018-05-02 13:55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민족이나 국가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개인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사회로 변질되어간 수많은 사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부분과 전체의 조화. 쉽지 않은 과제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