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도 역시 해석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 중요한 것과 우연한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중요성에 관한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며, 그 기준은 또한 그의 객관성의 기준이기도 하다 : 따라서 역사가도 당면한 목적과의 연관 속에서만 그 기준을 찾아낼 수 있다.(p182) <역사란 무엇인가> 中


 E.H.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 ~ 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에서 역사(歷史 history)란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닌,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재구성되었음을 강조했다. 카 이후 역사가들의 주관적 해석이 역사적 사실 못지 않게 중요함을 인정받았지만, 역사가들 사이의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이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부작용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2019년 초 다시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5.18 민주화 운동'과 비극적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역사책들을 통해 역사가의 해석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광주, 5월 18일 ~ 5월 26일 : 누가 먼저 폭력을 불렀는가?

 

커밍스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 이하 한국현대사 - >에서는 시위대의 계엄 철폐 요구에 대해 공수부대의 무차별 학살로 대응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바라본다. 이에 반해, 이영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전에 광주 지역에 유언비어가 퍼졌고, 시위대의 폭력시위로 인해 공수부대의 실탄 사격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정리하면, 커밍스는 공수부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석하는 반면, 이영훈은 시위대의 폭력이 먼저 였음을 강조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사실은 변함없지만, 역사가들의 해석에 따라 이들은 때론 피해자가, 때론 가해자가 되버리는 것이다.


 5월 18일 광주 거리에 약 500명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다. 약물을 복용했다고 여겨지는 정예 공수부대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학생, 여성, 어린이 가릴 것 없이 길을 막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월 18일 광주 시내에는 악성의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광주 시민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19일, 분노한 학생과 시민의 시위대는 공수부대에 화염병, 돌, 보도블럭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저지선으로 굴러 보냈다.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장갑차를 탈취하려 했으며, 그에 맞서 공수부대 장교가 위협사격을 하였다.(p398)... 전남도청, 조선대, 전남대를 제외한 광주시 일원이 군경의 통제를 벗어나 시위대에 점거되었으며, 광주세무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칼빈 소총이 시위대에 탈취되었다. 공수부대는 시위의 진압을 포기하고 전남도청과 조선대로 집결하여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경찰관과 부대원의 사망에 자극을 받은 공수부대의 장교들은 실탄 지급을 요청하여 분배 받았다.(p399) <대한민국 역사> 中


2. 5.18 민주화 운동에서의 미국 역할


 5.18 민주화 운동에 있어 논란이 많은 부분은 미국의 개입 여부다. 이에 대해 커밍스는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미국 장성이 사령관으로 있는 한미연합사에 있는 만큼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반면, 이영훈은 <대한민국역사>에서 해당 부대의 작전권은 한국군에 있었다는 미국정부의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하며, 미군은 관련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적 사건은 하나이지만,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독자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의도와는 관련없이.


 시민 수습대책위원들이 미국대사관에 개입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위컴 장군에게는 5월 22일 한국군 20사단을 DMZ의 임무에서 면제하도록 허용하는 일이 맡겨졌을 뿐이다... 미국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은 면할 수 없었고 전선부대 이탈을 허용함으로써 카터의 인권정책은 난자당한 꼴이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는 광주에서 사태가 전개된 당시부터 미국의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그에 대해 1989년 6월 미국정부는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정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성명서에서 미국정부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처음부터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 한미연합군 사령부 설치를 위한 1978년의 협정은 미국과 대한민국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자국의 부대에 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을 보장하였다는 사실, 그에 따라 한국군은 이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발포된 계엄 업무의 수행을 위해 20사단의 작전통제권을 회수한 적이 있다는 사실, 이후 동 사단의 3개 연대 중 1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부에 반납되었지만 나머지 2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은 반납되지 않았다는 사실, 1980년 5월 20일 한국군은 20사단 1개 연대의 작전통제권을 다시 회수하였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미국 책임론을 부정하였다. 이처럼 광주 유혈참극에 대한 미국 책임론은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지만...(p402) <대한민국 역사> 中


 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위를 논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으므로, 사실에 대한 판단은 넘기도록 하자. 대신,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이처럼 동일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함에도 불구하고 역사가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E.H카는 그것은 역사가의 해석에 따라 인과(因果) 관계, 상관(相關) 관계 설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앞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다... 역사가와 그의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와 똑같이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성격을 가진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의 해석은 원인에 대한 그의 선택과 배열을 결정한다. 원인의 등급화, 즉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어느 일련의 원인들 혹은 또 다른 일련의 원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가려내는 것이 그의 해석의 핵심이다.(p156) <역사란 무엇인가> 中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중요한 사건을 골라내어, 이들을 대상으로 의미(意味)를 부여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역사가가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서 결과적으로 왜곡한다면 유지기(劉知幾·661∼721)로부터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문서를 농락하고 비행이나 과오를 미화하는 일도 있었으니, 왕은 王隱과 우예 虞預는 헐뜯고 서로 모욕했으며 배자야 裵子野와 심약 沈約은 분란을 매듭짓고 사과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판단으로만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다른 이의 화복을 자신의 붓끝으로 좌우했으니 이야말로 편찬자의 추악한 행태이며 사람이라면 함께 미워해야 할 짓이라고 하겠다.(p429)... 무릇 역사서의 곡필과 무함이 한두 가지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죄를 논하자면 잘못이 이미 크다고 할 수 있다.(p434) <사통> 中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가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를 한국 현대사를 통해 깊이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다소 관련성은 떨어지나, 개인적으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인물은 로메로 대주교다. 산살바도르 대주교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다 반대파의 피습으로 세상을 떠난 로메로 대주교의 삶과 군부통치 하의 산살바도르의 배경이 80년대 한국사회를 떠올리게 해서일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살바도르>와 로메로 대주교의 삶을 다룬 <로메로>는 로메로 대주교의 총격 장면에서 사건이 교차하는데, 관객들은 이 영화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모습과 함께 우리의 가슴아픈 현대사도 함께 바라보게 된다...

 

 농지개혁과 더불어 자행된 테러의 가장 두드러진 희생자는 산살바도르의 대주교인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Oscar Arnulfo Romero)였다. 수년간에 걸쳐 군부와 치안부대의 인권유린을 공격한 오스카르 로메로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1980년 2월 2일의 설교에서 그는 "모든 평화적 수단이 고갈되었을 때, 교회는 봉기를 도덕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선언했다. 3월 23일 토지개혁에 따른 탄압에 대응하여, 그는 병사들에게 비무장 민간인들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산살바도르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군 장교로 추정되는 사람의 총격으로 사망했다.(p411) <라틴아메리카의 역사(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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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p29) <신화의 힘> 中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 ~ 1987)과 빌 모이어스(Bill Moyers, 1934 ~ )는<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을 통해 '신화(神話, Myth)'가 현대 우리 삶에서 주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단순한 옛날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 신화가 과연 '잠재력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p41) <신화의 힘> 中 


 자연은 곧 우리의 본성이고, 신화에 등장하는 멋진 시적 표현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외부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어서, 신화적 이미지를 읽으면서도 그것을 우리 자신과 관련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내면의 세계는, 외면의 세계와 접하는 우리의 요구와 희망과 에너지와 구조와 가능성이 반영된 세계입니다. 외계는 우리가 드러나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바로 이 외면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 외면의 세계와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합니다.(p118) <신화의 힘> 中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신화의 역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의례(儀禮)를 통해 사람들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내면 세계를 표현하게 되는데, 사회적으로 신화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한, 외면의 표상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 내면을 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도 신화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화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이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허상(虛像)이 아닌 실상(實像)을 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삶의 근원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모험을 하는 이를 캠벨은 '영웅(英雄, hero)'라 부른다.


  우리는 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졌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원형이에요. 우리 삶의 시작에는 두려움도 없고 욕망도 없어요. 그냥 시작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다 존재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두려움과 욕망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움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한 점으로 돌아가보세요. 이 한 점이 바로 요체랍니다.(p394)... 이 발화점은 존재의 모습이 확정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선악과는 무관하고, 공포도 없고 욕망도 없는 순수무구한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삶의 모습입니다.(p395) <신화의 힘> 中


 우리 삶의 에너지는 바로 무의식의 심층에서 솟아오릅니다. 우리 삶은 어디에선가 쉴새없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내어보내는 곳, 이곳이 바로 무궁무진한 에너지의 근원인 것입니다.(p393)<신화의 힘> 中 

 

 캠벨에게 영웅은 세상을 구원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화해시키는 노력을 하는 이,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벗어나 초월하는 존재가 캠벨이 말하는 영웅이며, 영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작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p89)...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p91)...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p92)<신화의 힘> 中


 영웅의 시련에서 핵심은, 자신을 버려서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준다는 겁니다. 이것만 알면 이 자체가 바로 궁극적인 시련이라는 걸 깨달아낼 수 있지요. ...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인 겁니다.(p234) <신화의 힘> 中


 시련과 이의 극복을 통해 영웅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도달된다. 모든 시공간( Time- Space)을 넘어선 영원(永遠) 속에서 영웅의 모험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자신안에서 서로 다른 두 세계(몸-마음, 필멸-불멸, 삶-죽음 등등)을 통합시키고 만물이 하나됨을 진정으로 알았을 때 끝나게 된다.


 속세의 근원은 영원입니다. 영원은 스스로 이 세상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신에 관한 기본적인 신화적 관념이 바로 영원입니다. 신은 하나여도 속세에 내려와서는 여럿으로 나뉘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지요. 그런데 영원이라는 것은 모든 생각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p102)...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p405)  <신화의 힘> 中


 '초월자'라는 말의 본뜻은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p126)... 무엇이든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p127) <신화의 힘> 中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이 만물이라는 것은 이승에서는 선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고 악한 것으로 판별될 수도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이면을 꿰뚫어보아 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속세적 욕망이나,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놓여납니다.(p301)... 필멸(必滅)의 팔자와, 우리 안에 있는 초월적 영생불사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p409)... 형이상학적 깨달음이란 '우리'라고 하는 존재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 '우리'라는 것은 한 생명의 두 측면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실재는 모든 생명을 동일시하고 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p211) <신화의 힘> 中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신화'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며,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근원을 깨닫고 자신을 변모(transformation)하는 도구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의 사회적 기능과 개인적 기능은 서로 보완적으로 작동하지만, 때로는 충돌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캠벨은 다음과 같은 말로 '깨달음'을 강조한다. 깨달음을 통해 우리 삶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신화가 현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된다.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p34) <신화의 힘> 中


[사진] Darth Vader(출처 : www.starwars.com/databank/darth-vader)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대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짜 괴물 같은 힘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속한 시대의 역사를 사는 법을 익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p265) <신화의 힘> 中


 마지막으로, 가면(mask)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다스베이더(Darth Vader)가 쓰고 있는 '가면'은 이어지는 캠벨의 신화 4부작의 핵심어(key word)이기도 하다. '가면'을 통해 무형(無形)의 존재가 유형(有形)의 존재로, 영원의 존재가 현세에 임하면서 축제가 생명력을 얻는다는 <신의 가면> 속의 가면과 스타워즈(Star Wars)의 가면은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캠벨의 저작에 흐르는 일련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축제에서 가면은 그것이 표현하는 신화적 존재의 참된 환영(幻影, apparition)으로 숭배되고 경험된다. 가면을 만든 것은 사람이며 그것을 쓰고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신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의례가 행해지고 있는 동안 그 신과 동일시된다.... 그러한 신의 환영은 구경꾼과 행위자의 감정에 실제적인 힘을 미친다.(p35) <신의 가면 1 : 원시신화> 中


 

 위에서 보듯 <신화의 힘>은 캠벨의 신화학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이기에, 신화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신화의 힘>의 대담 내용은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경우 <The Power of Mtyh>은 좋은 대본집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Episode 1,2 편은 조회가 되지 않기에 3편부터 시청해야 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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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프로타고라스> 강독 첫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강독에서는 특히,소피스트의 역할과  아테네의 정체(政體)를 배경으로 새롭게 <프로타고라스>를 접근하여 새롭게 <프로타고라스>를 바라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하 페이퍼에서는 강의 내용을 다른 책의 내용과 함께 정리해보려 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궤변철학의 영역에서 플라톤이 벌이는 경합입니다. 이는 변증술의 사용이라든가 시인들을 해석하는 일 등등에서 그가 더욱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대화편에는 이전의 대화편들에서와 같은 신랄함과 예리함은 없습니다. 이 대화편 역시 전적으로 일반인을 위한 것으로서, 궤변철학이 가장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서조차 그것에 대한 경의의 도를 낮추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중요한 대화편도 아닙니다.(p192)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 中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프로타고라스>에서 보여지는 다른 대화편에 비해 치밀하지 못한 구성,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5 ? ~ 410)을 압도하지 못하는 주인공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70 ~ BC 399)의 논변 등은 이러한 니체의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지만, <프로타고라스>를 당시 정치상황과 함께 바라본다면 어떨까? 새로운 관점에서도 니체의 부정적인 평가는 유효할 것인가? 이를 알아 보기 위해 아테네의 민주정(demokratia)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로버트 달(Robert Alan Dahl, 1915 ~ 2014) 교수의 <민주주의 On Democracy>가 잘 소개하고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 본다. 

 

 아테네 정부는 복잡하여 여기에서 적절히 묘사하기가 곤란할 정도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모든 시민이 참여할 자격을 갖고 있는 의회(assembly)였다. 의회는 소수의 주요 관리들 - 장군들 -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공적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을 선발하는 주된 방법은 자격을 갖춘 시민들은 모두 똑같이 선출될 확률을 가진 추첨제였다. 조사에 의하면, 보통 시민들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통치관으로 선출될 기회를 생애에 한 번은 가졌다고 한다.(p29) <민주주의> 中


 추첨제와 투표제에 의해 유지되고 되었던 아테네의 민주정에서 실권은 장군들(Strategos)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많은 아테네 젊은이들이 명예와 재물을 좇아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민주정은 이러한 젊은 인재들의 공급이 화수분처럼 이어졌을 때 유지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궤변론자로 알고 있는 소피스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던 이들이었을까? 


 소피스트 Sophist란 원래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장 중요한 과목은 변론술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신(一身)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선(善)을 도모하고, 언론이나 행위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청년들에게 가르친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만을 가진 데 불과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힌 것이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中


 정리하면, 소피스트는 민주제도 하에서 인재공급을 담당하던 민주정의 중추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던 이들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가  <국가 Politeia>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이 추구하는 정체는 철인(哲人)에 의한 정체다. 결국,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바로 민주정을 비판하는 <국가>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철학적 입장들, 즉 덕이 곧 앎이라거나(知德合一) 개별 덕들이 사실은 동일한 하나의 것이라거나 (德의 單一性) 누구도 자신이 아는 것과 달리 행동할 수 없다거나(자제력 없음의 불가능성)하는 입장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증이 제시되는 곳이 다름 아닌 <프로타고라스>이다.(p24) <프로타고라스> 中

 

 그렇다면, 이들이 펼치는 논쟁 주제인 '교육(敎育)을 통해 덕(arete)를 기를 수 있는가?' '덕은 단일한가?' 등은 바로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으로 정리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프로타고라스>는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민주정과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철인정치체제의 체제간 논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프로타고라스>를 바라봤을 때, 왜 처음에 이 대화편이 이해가 안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된다. 민주정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소크라테스보다 프로타고라스 논리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정치철학으로서 <프로타고라스>의 구체적 모습은 다음 수업에 소개될 것이기에 기대감을 품고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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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4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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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7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7 2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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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0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9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도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한 정치경제학에서 가치라는 단어는 언제나 교환가치를 의미한다. 이것을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그의 후예들은 교환가능한 가치(exchangeable value)라 불렀는데, 이는 교환가치(exchange value)로 써야한다.(p24)... 교환가치는 가격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는 한 물건의 가격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돈으로 표현된 그 물건의 가치를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의 가치, 즉 교환가치는 그 물건의 일반적인 구매력, 다시 말해서 그 물건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 전체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역량을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p25) <정치경제학원리 3>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는 <정치경제학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서 가치(價値, value)를 가격(價格, Price)과 구별하여 사용한다. 가치와 가격 모두 시장(市場, market)을 매개로 형성된다고 했을 때, 화폐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 사회에서 교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 ~ 1950)는 <증여론 Essai sur le don>에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문명의 사례를 통해 시장 형성 이전의 교환행위를 분석했다.

 

 시장가치(市場價値, valeur venale)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에 감정가치(valeur de sentiment)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은 단지 상업적인 것만이 아니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 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p249) <증여론>


  사회생활이라는 특수한 생활에서는 우리 사이에서 아직도 일컬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빚이 남아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접'은 언제나 돈이 더 많이 들고 큰 것이다... 초대는 제공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빠지면, 그것은 나쁜 징조, 질투와 '저주'의 조짐 또는 표시였다.(p253) <증여론>


 증여(또는 선물)하는 행위가 사회 생활의 기초라는 모스의 분석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직장 회식(會食)문제, 역사적으로는 조공(朝貢) 외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증여론>과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스의 의견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모스의 분석에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셜 살린스(Marchall Sahlins)는 <석기시대 경제학 Stone age Economics>에서 모스의 <증여론>에 대해 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음을 비판했다. 

 

 하우는 비록 영(靈)이라고 하더라도 퍼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 자체가 저절로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재화 자체가 위험스러운 것이 아니라 재화를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행위가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속인 사람은 다름아닌 정당화될 수 있는 공격에 노출된다는 의미에서 위험하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사회는 교환관계와 교환형태를 통해 타인을 희생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자유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런 사회이다. 라나피리가 제시하는 요지는 호혜성을 초월한다.그것은 선물이 적절하게 보답되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보답이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234) <석기시대 경제학> 中


 살린스에 따르면 원시시대에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이익을 따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는 원시시대 인간은 이타적 존재라는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은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과 맞닿아 있는 반면, 모스는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견해에 가까운 것으로 대조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원시교역의 경제적 균형은 자율적인 개인이나 기업이 구매자와 판매자로서 대등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오히려 그것은 공동체 내부 경쟁을 금지하고, 서로에게 관대성의 의무를 지고 있는 파트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끌어모으며, 관대하지 않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제도적 배열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유사한 '가격'을 도출한다.... 원시적 교역체계는 재화의 가용성과 효용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교환율을 통해 이들 개인을 거래 관계 속으로 끌어들인다.(p383) <석기시대 경제학> 中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사실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진술은 하나의 유용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수렵채집민이 풍요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비극이고 인간은 무한한 욕구와 희소한 수단 사이의 항구적인 불일치하에서 힘겨운 노동의 원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p26) <석기시대 경제학> 中 


 교환의 동기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는 두 저자(모스, 살린스)지만, 이들 모두 민속지학(民俗誌學, ethnography)의 관점에서 교환과 원시 시대의 경제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 1892 ~1957)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Man makes Himself>에서 이들의 방법 자체를 비판한다.

 

 현존 야만인들이 선사시대 수준의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조직, 신앙체제, 친족체계 등이 선사시대와 비슷한 수준이고, 그 이후 변화 발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p76)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과 도시혁명>에서는 교환 행위를 개인과 공동체 내부의 관점 분석하기보다 '도시-비도시', '정주생활지 - 유목생활지' 사이의 교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중심지- 주변부' 관계로 교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폐쇄계(closed system)의 교환에서 개방계(open system)의 교환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신석기 혁명이 정점에 달하자 정주생활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반 건조지역에서 정주생활에 적합한 곳은 제한적이었고 이에 충적대지와 소택지를 중심으로 한 관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p157)... 충적대지의 정착민의 경우, 잉여농산물은 풍부한 반면에 축산물, 어류, 사냥 고기, 그리고 귀금속 등이 부족하기에, 그들 주변의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과의 교역으로 그 부족분을 보충하였다. 이에 자연스럽게 신석기시대의 자급자족적 경제는 상호의존적 경제체제로 변모해 나갔다.(p165)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육상운송에서 바퀴달린 수레의 사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퀴는 도자기 생산을 위한 녹로에도 사용되어 기계 산업의 길을 열었다.(p179)... 문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고, 이런 문자로 경험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고대인의 사고에 침투해 들어갈 수 있다.(p263)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中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혁명을 도시혁명으로 이끈 요인 중에 바퀴와 언어를 언급했는데, <말, 바퀴, 언어 The Horse, the Wheel and Language>는 이와는 달리 중앙유라시아 초원 유목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변경은 경제적 필요가 공공연한 적대감을 막아줘 귀중품들을 상호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평화로운 교역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고, 혹은 문화적 오해와 부정적 선입견 및 양자를 연결하는 제도의 부재로 인해 증폭된 불신의 장소로 그려질 수도 있다. 농경적인 유럽과 초원 사이의 변경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즉 인정사정없이 대립하는 농경과 목축 사이의 경계로 여겨졌지만, 이는 잘못된 선입관이다.(p346) <말, 바퀴, 언어> 中


 <말, 바퀴, 언어>의 저자 데이비드 W.앤서니(David W. Anthony)는 '농경민족 VS 유목민족'의 관점에서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 협조하는 관계였음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석기 시대 경제학>의 살린스와 통하는 바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참나무에 의하면 서기전 3760년 이후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가 돌아왔지만, 그때는 다뉴브 강 하류 하곡과 발칸의 문화가 극적으로 변한 뒤였다. 서기전 3800년경 이후 나타난 문화들은 가정의례에서 여성상을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더 이상 구리로 된 나선형 팔찌나 국화조개로 만든 장신구를 차지 않았다.(p334)... 야금술, 채굴, 토기 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제작 기술은 양이나 기교 면에서 급격히 퇴보했고 토기 및 금속 물품은 양식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고유럽의 종말은 서기전 6200년 스타르체보-크리슈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된 전통을 단절시켰다.(p335) <말, 바퀴, 언어> 中


 앤서니는 환경적인 요인 또는 알 수 없는 어떠한 요인에 의해 고유럽 문명이 종말을 고했고, 이러한 농경 문화의 쇠퇴 속에서 기마 유목 민족의 등장은 새로운 지원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전쟁으로 더욱 악화한 흉작이 좀더 유동성 있는 경제 체제로의 이동을 촉진했을 것이다. 이런 이동이 일어나자 초원의 목축 부족은 꾀죄죄한 이주자 혹은 경멸스러운 습격자에서 탈피했다. 요컨대 새로운 경제 체제가 요구하는 가축 자원을 풍부하게 거느린 족장이자 후원자로서 더 큰 가축 떼를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을 습득한 이들로 탈바꿈한 것이다.(p378) <말, 바퀴, 언어> 中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교환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학원리>를 통해 '교환가치'과 '가격'을 구분했다. 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교환이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모스는 이에 대해 '증여'를 통한 관계 유지로 설명한 반면, 살린스는 '함께 살아가려는 동기'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이들의 의견 모두는 공동체 내애세 교환을 분석한 반면,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 혁명을 통한 도시화를 통해 교환을 바라보면서 거시적으로 교환과 그 영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앤서니는 이같은 전통적인 '중심부-주변부' 관점에 반대하고, 상호협조적인 관계로 문명간의 교환을 바라보고 있다.


 <말, 바퀴, 언어>를 통해 우리는 유목민족의 문화가 결코 농경민족의 문화보다 열등한 문명이 아닌 서로 대등한 문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훈족의 아틸라(Attila, AD 406 ~ 453)로 대표되는 '야만 유목 민족'이라는 우리의 편견을 이제는 버려야할 때가 아닐까.

 

 문명과 문명권 인식에 관한 잣대로 유목기마민족들이 창조한 제반 문화 요소를 가늠해 보면, 그들 역시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권을 이루어놓았음을 갈파(喝破)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들 공유의 결과물(結果物)인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 문명의 공영에 기여하였다... 요컨대 그들의 문화는 문명 구성 요소에서의 독특성(상이성)과 문명의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됨으로써 문명권 형성의 제반 요인들을 구비하였던 것이다.(p227) <고대문명교류사> 中


  해류(海流)에서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곳에 어장(魚場)이 형성되는 것처럼,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가 만나는 곳에서 활발한 교역이 일어났으며 그 중심지가 바로 중앙아시아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세계열강들이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게임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의 서진> <그레이트 게임> <현대 중동의 탄생>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소 늘어진 페이퍼가 되버렸지만, '교환'이라는 주제로 <국부론>으로부터 <중국의 서진>을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을 정리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말, 바퀴, 언어>에서도 '증여'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만, 모스의 <증여론>과 다른 증여의 역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계급사회에서의 '증여'는 상대적으로 평등산 시기의 '증여'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도/유럽 공통조어 사회의 종교와 사회 구조는 모두 맹세로 구속되는 약속에 기초했는데, 그 약속이란 후견인(또는 신)이 피후견인(또는 인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소와 말을 선물로 줄 것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 의무를 보증하는 맹세는 원칙적으로 고 유럽 텔 출신의 피후견인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p378)... 인도, 유럽 공통조어 사용자들은 훌륭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선물과 명예 그리고 예상치 않은 약탈/노획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성취에 기초해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p379) <말, 바퀴, 언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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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09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를 볼 때마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서적이 늘어나는것 같아서 즐겁기도 하고 부담도 됩니다! 항상 좋은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즐건 주일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19-03-09 22:55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께 즐거운 부담을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감사의 말씀 전하며, 막시무스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0 0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보한스 2019-03-16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움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9-03-16 11:32   좋아요 0 | URL
바보한스님께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9-03-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