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프로타고라스> 강독 첫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강독에서는 특히,소피스트의 역할과 아테네의 정체(政體)를 배경으로 새롭게 <프로타고라스>를 접근하여 새롭게 <프로타고라스>를 바라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하 페이퍼에서는 강의 내용을 다른 책의 내용과 함께 정리해보려 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궤변철학의 영역에서 플라톤이 벌이는 경합입니다. 이는 변증술의 사용이라든가 시인들을 해석하는 일 등등에서 그가 더욱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대화편에는 이전의 대화편들에서와 같은 신랄함과 예리함은 없습니다. 이 대화편 역시 전적으로 일반인을 위한 것으로서, 궤변철학이 가장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서조차 그것에 대한 경의의 도를 낮추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중요한 대화편도 아닙니다.(p192)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 中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프로타고라스>에서 보여지는 다른 대화편에 비해 치밀하지 못한 구성,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5 ? ~ 410)을 압도하지 못하는 주인공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70 ~ BC 399)의 논변 등은 이러한 니체의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지만, <프로타고라스>를 당시 정치상황과 함께 바라본다면 어떨까? 새로운 관점에서도 니체의 부정적인 평가는 유효할 것인가? 이를 알아 보기 위해 아테네의 민주정(demokratia)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로버트 달(Robert Alan Dahl, 1915 ~ 2014) 교수의 <민주주의 On Democracy>가 잘 소개하고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 본다.
아테네 정부는 복잡하여 여기에서 적절히 묘사하기가 곤란할 정도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모든 시민이 참여할 자격을 갖고 있는 의회(assembly)였다. 의회는 소수의 주요 관리들 - 장군들 -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공적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을 선발하는 주된 방법은 자격을 갖춘 시민들은 모두 똑같이 선출될 확률을 가진 추첨제였다. 조사에 의하면, 보통 시민들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통치관으로 선출될 기회를 생애에 한 번은 가졌다고 한다.(p29) <민주주의> 中
추첨제와 투표제에 의해 유지되고 되었던 아테네의 민주정에서 실권은 장군들(Strategos)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많은 아테네 젊은이들이 명예와 재물을 좇아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민주정은 이러한 젊은 인재들의 공급이 화수분처럼 이어졌을 때 유지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궤변론자로 알고 있는 소피스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던 이들이었을까?
소피스트 Sophist란 원래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장 중요한 과목은 변론술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신(一身)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선(善)을 도모하고, 언론이나 행위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청년들에게 가르친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만을 가진 데 불과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힌 것이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中
정리하면, 소피스트는 민주제도 하에서 인재공급을 담당하던 민주정의 중추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던 이들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가 <국가 Politeia>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이 추구하는 정체는 철인(哲人)에 의한 정체다. 결국,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피스트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바로 민주정을 비판하는 <국가>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철학적 입장들, 즉 덕이 곧 앎이라거나(知德合一) 개별 덕들이 사실은 동일한 하나의 것이라거나 (德의 單一性) 누구도 자신이 아는 것과 달리 행동할 수 없다거나(자제력 없음의 불가능성)하는 입장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증이 제시되는 곳이 다름 아닌 <프로타고라스>이다.(p24) <프로타고라스> 中
그렇다면, 이들이 펼치는 논쟁 주제인 '교육(敎育)을 통해 덕(arete)를 기를 수 있는가?' '덕은 단일한가?' 등은 바로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쟁으로 정리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프로타고라스>는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민주정과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철인정치체제의 체제간 논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프로타고라스>를 바라봤을 때, 왜 처음에 이 대화편이 이해가 안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된다. 민주정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소크라테스보다 프로타고라스 논리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정치철학으로서 <프로타고라스>의 구체적 모습은 다음 수업에 소개될 것이기에 기대감을 품고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