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리랑 3 (개정판) 아리랑 (개정판) 3
조정래 지음 / 해냄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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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사와 일곱 개의 궁에 속해 있는 농도 전부를 궁장토(宮庄土)라고 불렀다. 그러나 궁장토가 전부 궁중의 땅이거나 왕실의 재산이 아니라는 것은 농사를 짓지 않는 포수나 백정도 다 아는 일이었다. 궁장토 중에서 궁중의 토지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궁중의 토지를 유토(有土)라고 해서 논 없는 농사꾼들에게 소작을 내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 개인들이 농토이면서 각 궁에 속해 세금만 내는 논밭은 무토(無土)라고 불렀다. 그 무토는 사유지이니까 얼마든지 사고팔고 하는 거래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다만 궁토로서 그저 세금만 꼬박꼬박 잘 내면 그만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3>, p98/260

통감부에서는 그 역둔토에 속한 개인들의 농토도 모두 국유지로 둔갑시켜 버렸던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억지 춘향이를 만든 농토의 7할 이상을 통감부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겨준 것이엇다. 소유권이 동척으로 넘어간 것이고, 동척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땅부자가 되어버린 것었다.(p98)... 합방이라는 것이 되기도 전인 그해 4월이었다. 대물림해 온 사유지가 주인도 모르게 국유지로 둔갑한 날벼락은 혼자만 맞은 것이 아니었다. 그 피해자는 수두룩했다._조정래, <아리랑 3>, p107/260

<아리랑 3>에서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土地調査事業, 1910 ~ 1918) 초기의 혼란한 모습과 수탈의 초기 모습이 잘 그려진다. 중앙정부의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지방의 규약인 향약(鄕約)에 기반한 관습법들이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고, 새롭게 성문법이 강요되면서 빚어지는 혼란 속에서 자작농은 소작농으로, 소작농은 유랑민으로 내몰리면서 민중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간다.

옛날부터 여기 김제 만경 사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들녘이 넓어 논들이 많으니까 사또한테도 생기는 게 많아 자리가 좋기로 명이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사또로 오자면 누구나 뒷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됐지요. 뒷손을 쓰고 여기 사또로 온 것까지는 좋은데, 그 사또들이 또 거짓말처럼 산골이나 오지로 쫓겨가게 됩니다. 그 연고인즉, 자기네가 뒷손 쓴 돈이 아까워 급하게 본전을 빼려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다 보니 시달리다 못한 백선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지요._조정래, <아리랑 3>, p126/260

그렇지만, 사실 민중들의 삶이 어려웠던 것은 일제의 수탈 때문은 아니었다. 특산물
과 같은 이권(利權)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정한 청탁이 따르고, 본전을 챙기려는 이들의 마음은 조선시대 지배층도 마찬가지였다. 감귤의 산지 제주도에서 탐관오리들의 등쌀이 못이긴 이들이 감귤이 열리지 않도록 밤중에 뜨거운 물을 버렸다는 이야기나 어느 지방이나 전승되어 온 소년 장수 설화 등은 식민시대 이전의 민중이 삶도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음을 잘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의병을 일으켜 지키려고 했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500년 왕조 조선(朝鮮)이 아닌 자신과 함께 어울어져 살아갔던 이웃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몸은 고되더라도, 열심히 살면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키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으로 농토를 빼앗긴 이들이 양반들과 함께 일제에 맞선 것이었으리라. 이와는 반대로, 지방의 유림들 중 상당수는 복벽운동(復壁運動)으로 왕조의 부활을 목표로 했으니, 이미 구한말 의병운동 때부터 분열의 씨앗은 이미 심어져 있었던 듯하다...

"나라 뺏긴 것이야 우리 잘못이 머시가 있어. 우리야 골병들게 땅 파서 오만 세금이란 세금 우로 바치고 아래로 뜯김서 산 죄뿐인디. 다 양반이란 놈덜이 우리헌티 알궈가고 뜯어간 세금으로 배꼽이 요강꼭지가 되게 배때지 불리고, 100리고 200리고 땅 늘쿼감스로 세금이라고넌 땡전 한 닢 안내고 사는 것도 모지래서 나라꺼정 팔아묵은 것 아니여. 근디 시상이 이리 뒤집어졌어도 양반이란 것덜언 땅얼 한 치도 안 뺏기고 지화자 얼씨구나 태평세월로 잘만 살아가덜 않냔 말이여. 어찌보면 왜놈덜보담 더 못된 종자덜이 양반이여, 양반.(p107)... 돈 있고 권세 있는 것덜이 어디 조선사람이간디. 맘이야 벌써 다 왜놈 되야부러 우리 겉은 가난허고 못난 인종덜이나 조선사람으로 남았제."_조정래, <아리랑 3>, p20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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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에는 어떤 이야기가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려면 공연 장소까지 가야 했다. 상황은 100년 전인 1780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실연實演의 압제는 막을 내렸다. 대중은 움직이는 사람들을 녹화한 것을 보게 되었으며, 마치 마술을 부린 듯 실린더나 디스크에 가두어 놓은 가수나 연주자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얼마 뒤에는 그런 소리가 사람들 집에 놓인 상자에서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사람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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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영웅이 나란히 일어나니 반드시 세상에 명령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 천하의 혼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지혜로운 자가 마땅히 상세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할 바입니다.(13/73) - P13

무릇 일에는 진실로 이것을 버리면 저것을 얻는 경우가 있으며 큰 것을 가지고 작은 것을 바꾸어도 좋으며, 안전한 것을 가지고 위험한 것을 바꾸는 것도 좋고 일시적인 형세만 저울질 하여서 근본이 공고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면 좋은 것입니다.(29/73)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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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중엽부터 ‘자본의 시대‘ 마지막인 벨 에포크(Belle Epoque)까지 배경으로 하는 서순의 「불안한 승리」. 서순은 이 기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를 앞도하며 대중화되고, 선진체제로 자리잡았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그렇지만, 1914년 이후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완전하고 불가역적이지 않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서순의 「불안한 승리」는 조용히 불안한 체제의 시작과 경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리뷰가 될지, 페이퍼가 될지 아직 미정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상세하게 정리해보자...




실체를 갖춘 내부의 적이 부재하고 여러 나라에서 잇따라 반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자본주의의 지배가 난공불락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불안의 여지가 존재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확장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은 계급투쟁이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혁명적 열망,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다. 주요한 장애물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서구식 소비자 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생태적 한계다. 서구가 직면한 문제는 나머지 지역도 서구처럼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374/493)
- P374

자본주의는 다르다. 자본주의 역시 생각이 없고 정치와 통일성도 전혀 없지만, 변화는 자본주의 고유의 동학, 고유의 역사의 일부다. 변화는 자본주의 자체 안에서부터 나온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성공 기준은 체제의 생존이며, 이 생존은 다시 끊임없는 변화에 의존한다.(359/493)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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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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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대기실에서 꺼내 든 책.

책에서 개그맨 김제동이 아닌, 인간 김제동의 삶과 생각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다만, 방송에서 순발력 넘치는 재치 있는 방송인의 모습을 기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촌철살인의 날카로움 대신 ‘하쿠나 마타타‘를 들려주기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특히, 정치적으로 그와 의견이 다른 이들의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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