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란 무엇을 뜻하는가? 진보라는 것은 한눈에도 그 뜻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인간 사회의 부족한 것 중의 하나로 진보를 말할 때 이는 개선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그 뜻이 어느 정도 분명하다. 그러나 질서라는 말은 경우가 다르다... 질서를 가장 좁게 정의하자면 복종이라는 말과 통한다... 진보만이 가진 독특한 정신 요소, 그 진보를 절정에 이르게 해주는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독창성이나 창의력이다. _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표현 처럼 진보(進步, progess)를  개선(改善, frformation)으로 바라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전에 나오는 같은 의미를 갖는 독일어 Fortschritt 역시 동일하다고 볼 것인가?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은 점은 이에 답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같은 뿌리를 갖는 언어권 내에서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의미 차이를 알게 되면서, 특히 '개념어'에 해당하는 언어 사용과 번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일부 개념어(예를 들면, 문화 kultur / 문명 civilisation)들은 다른 유럽어권 언어와 다른 의미를 갖지만, 다행히 '진보'라는 단어에는 심하게 다른 요소는 없어 보인다. '진보'가 문화권의 영향보다는 서구 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단어이기 때문일까.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의 이론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해도 진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비슷한 틀 안에서 움직였다. "자연의 완성은 사실 세상의 시작에 내재해 있었다. 진정한 영광의 완성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것이다. 또한 영광의 완성은 시작과 끝을 매개하는 중간자다. 그래서 예수는 세상의 한 가운데로 온 것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39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말 속에서 우리는 신에 의한 창조된 세계, 피조물로서 자연과 인간의 법칙이 하나이며 순환적 세계관  -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 묵시록 22:13)" - 을 발견한다. 중세의 진보가 신의 절대적/영속적 시간 속에서 이뤄진 발전을 의마한다면, 근대 이후 '이성 理性'을 가진 존재로서 역사의 주체인 인간의 진보는 방향성과 영속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진보 개념의 관철에서 척도가 된 것은 이성과 현세적 시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지양이었다. 이성의 사용이나 이성을 통한 발견과 새로운 고안들은 시간과 함께 증가되었다. 결국은 이성 자체가 시간성을 띠게 되었다. 노화가 이전에는 노쇠의 진행 현상에 비유되었다면 이제는 이성의 사용의 확장으로 이해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52


 신의 시간이 영원(永遠)이라면 그 자체로 완성(完成)을 의미하기에 중세의 진보는 신이 만든 세계 내에서의 순환을 의미하겠지만, 시간의 한계를 갖는 인간에게 진보는 보다 직선적이고 상향(上向)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면에서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함께, 순환적인 자연의 법칙과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의 차이를 발견한다.


 홉스 Thomas Hobbes는 자연과학에서의 진보와 이를 좇지 못하는 도덕 간에 벌어진 괴리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는 도덕론에서 기하학적 정리처럼 규칙성과 예측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학문적 발전과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도덕적 수준의 비대칭에서 생겨난 이러한 요구는 이후에 진보에 대한 논의에서 단골 주제가 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91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에서도 '진보'에 대한 문제는 계속된다. 홉스(Thomas Hobbes,1588 ~ 1679)의 지적처럼 과학으로 대표되는 학문의 진보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윤리의 문제는 일반적인 '진보'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 또한, 개별 사건에서 발견되는 역사의 퇴보는 또한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진보'를 바라보자는 시각이 새롭게 제시된다. 개별 사건으로는 퇴보가 되었을지라도, 보다 큰 흐름 속에서 개선된다는 역사의 법칙은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는 이중의 역사 해석을 필요로 했다. 개별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의 관점에서는 위기와 혁명 자체도 크게 봤을 때 개선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현재에 나쁜 일로 타격을 받는 운명을 겪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p102)... 역사의 이중 해석이 개선과 합리적 발전이라는 가설을 성립하게 했다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과정에서 시간 경험의 차이가 또 다른 명제를 이끌어냈다. 가속화의 명제가 그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03 


 이로써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던 진보의 경험은 이제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야 했다. 종종 내걸던 진보의 법칙은 경험적으로는 결코 공통분모를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보의 행위자나 관련자는 시간상 서로 다른 단계에 있다고 평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개인을 초월한 경험적 명제는 부분적으로만 확인될 수 있었고 보편적 증거라는 것도 그때그때 다양한 관점에서 본 것이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23 


 아마도, 이러한 보편적 역사의 법칙으로서 '진보'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 Progress : Its Law and Cause>에 잘 나타난 듯하다. 그는 자연법칙의 진화(進化 evolution)를 인간 사회로 가져오면서 보편 법칙으로서 사회적 진화를 말한다.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 증가 속에서도 일어나는 진화, 그리고 진보. 20세기 대부분의 시기를 지배한 사회적 진화론의 논리를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한다.

 

 현재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처럼 태초로부터 모든 작용력들이 여러 힘으로 분해되어 영속적으로 더욱 복잡성을 창출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복잡성의 증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진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유익한 필수과정이다._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 p90


 코젤렉은 책의 마지막에서 '진보'라는 개념에는 언제나 정치적인 논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A보다 B가 더 나은 상태이니,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진보의 가치판단이라면, 그 근거는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면에서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젤렉이 서두에서 말한 진보의 포괄적 개념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과거에 있었던 진보를 통해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새 시대를 향해 질문을 던지게 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관점이든 관계없이 진보의 개념에는 예측의 잠재력이 내재하고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입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44


ps.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질서 = 복종' 이라고 했는데, 스펜서의 복잡성 증가는 복종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진보가 일어난다는 답도 포함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보는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와 관련된 개념이 되었고, 때로는 개별적인 영역 혹은 구체적 행위 일체와 관련되었다... 진보 자체는 주체적 개념으로 가끔 더 나빠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뜻한다. 또한, 진보는 비순환적 진행을 가리키며, 종종 가속화 Beschleunigung 를 의미한다.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사이에서 동요한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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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지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엮음, 황선애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 / 푸른역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의 주제는 ‘진보‘다. 과거보다 더 나아진 상태를 의미하는 진보는 개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진보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이 필요하다. 기준 시점 대비 비교 시점이 ‘개선‘되었다고 할 경우에 우리는 어느 요소에 가중치를 두고 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 GDP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듯이, 우리는 객관적으로 ‘진보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진보‘는 순수하게 역사적인 어떤 시간을 개념화해야 했다. 물론 이 ‘시간화‘는 이론적 어려움을 초래했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언어 사용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해결되었다... 진보는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와 관련된 개념이 되었고, 때로는 개별적인 영역 혹은 구체적 행위 일체와 관련되었다... 진보 자체는 주체적 개념으로 가끔 더 나빠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뜻한다. 또한, 진보는 비순환적 진행을 가리키며, 종종 가속화 Beschleunigung 를 의미한다.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사이에서 동요한다.... 이 모든 의미 규정들은 서로 보완하거나 지지하면서 ‘진보‘ 개념을 정립시켰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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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선발대의 도착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흥분을 안겼다. 소시민들은 그들대로의 기대감이, 돌연한 사이에 삶의 지향을 바꾼 이들에겐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계급에겐 힘센 '내 편'의 출현이란 기쁨이 밀려왔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09


 <인천상륙작전>에는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철구 아버지와 친일파에서 우익으로 과거를 세탁하고 변신한 철구 삼촌. 지배계급이 아닌 이들에게 닥친 해방 전후는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과 같았다.  


 치솟는 물가, 범죄와 부정부패는 해방 직후 민생을 괴롭힌 주요 문제였다. 해외 동포들의 귀환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경제 파탄이 가속화되었고 장치는 과잉되어 있었으나 민생을 돌볼 틈이 없었다. 물가 불안의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기 직전 화폐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재한 일본인들의 귀국 자금을 마련하려고, 당시 통화량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화폐를 만들어 뿌렸다. 일제가 퇴각하는 순간까지 화폐를 찍어내는 등 수탈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일본인이 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2>, p55


 패전 직후 화폐를 남발한 일제의 금융정책 농단과 미군의 쌀가격 통제로 인한 실물경제의 실패는 경제적 불안을 가져왔고, 좌우 이념 대립은 정치적 불안을 깊게 했다. 여기에 미군정의 상황 인식과 대처는 해방 이후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와는 달랐기에 갈등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58 


 이같은 정치경제 배경 하에서 1950년을 전후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경과 한국정부의 무리한 북진 정책 추진은 북측에 충분한 전쟁의 빌미를 주었음을 알게 한다. <인천 상륙 작전 4>에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 ~ 3권을 통해 그 이전 이야기를 일반 시민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보다 생생하게 당시를 증언한다. 다만, 인천을 고향으로 둔 형제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연결시켜 보여주기에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은 아쉽지만(철구 아버지의 고향은 인천, 철구 어머니의 고향은 팔미도라는 설정, 철구 아버지가 한강 인도교 폭발로 실종되고, 철구 삼촌이 도피하면서 노근리를 지난다는 설정 등)흥미와 역사적 교훈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일반인의 눈 높이에서 이보다 잘 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쟁으로 향한다...


 남한은 이승만의 허풍에 가까운 북진통일론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전쟁에 무방비 상태였다. 당시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 해안 경찰대 4천, 경찰 4만 5천 명이었다. 탱크와 기갑차량은 전무했고 여섯 대의 항공기가 전부였다. 15일 동안 국방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보급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13만 명의 지상군(실전 경험자 포함)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3>, p164


 육군 정보국에서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군은 바로 그날 비상경계를 해제했다. 때는 주말.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한 상태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2시.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파티에는 전방부대 사단장들까지 초청되어 밤새 술판이 벌어졌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4>, p23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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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만 해방
을 인식해 왔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미군정을 실시하던 미군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방 정국의 리더들이
너무 안이하게 광복과 자주 국가 건설
을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 얼마나 컸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1   좋아요 1 | URL
그럿습니다. 우리의 독립항쟁에 대해 태평양 건너의 미국은 거의 알아주지 못한 반면, 함께 항일연군을 구성했던 중국 또는 일본과 적대했던 소련은 이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있었기에,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 지식인들이 ‘빨갱이‘란 명분으로 몰렸던 것이 해방 이후 인재 부족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