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서의 목적이 참된 학문과 옳은 실천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논리학자들이 보여준것같이 가르침에는 개념과 판단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 사람들이 판단에 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논증적, 변증술적, 수사학적 방법, 이 세 가지가 있다. 그리고 개념을 형성하는 방법에는 대상자체를 상상하거나 또는 그것의 상징을 상상하는 두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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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논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9
아베로에스 지음, 이재경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본성은 동의에 이르는 방법이 서로 다른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한 부류의 사람들은 논증을 통해 동의에 이르게 된다. 논증적인 사람이 논증을 통해 동의에 이르게 되는 정도만큼 확고하게, 어떤 이는 수사학적 논변을 통해 동의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우리 신의 종교는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부른다. _ 아베로에스, <결정적 논고>, p27/226

성스럽고 고귀한 신, 예언적 사명, 그리고 내세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긍정이 그 예증이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원리는 세 가지 부류의 징표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해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인식하도록 명해진 동의에 이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사학적, 변증술적, 논증적 징표다. _ 아베로에스, <결정적 논고>, p49/226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 Ibn Rushd, 1126 ~ 1198)의 <결정적 논고 Fasl al-maqa'l>는 알 가잘리( Al Ghazali, 1058 ~ 1111)의 철학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론이다. 인간 이성(理性)으로 신의 뜻을 알 수 없기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로 대표되는 (그리스)철학으로 결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가잘리의 논리에 대해 아리스텔레스의 사상적 후계자인 아베로에스는 역반론을 펼친다. 아베로에스는 신의 부름을 세 징표로 해석하는데,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변증론> , <범주, 명제론 - 오르가논 - >에 각각 대응하는 점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성서와 연관되어 세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결코 해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들은 수사학적 부류다. 그들은 압도적인 대중이다. 왜냐하면 건전한 지성을 가진 누구도 이런 종류의 동의에서 면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류는 변증술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지 본성에만 의해서든 아니면 본성과 습관에 의해서든 둘 중 어느 한쪽에 의해서 변증술적인 해석을 하는 이들이다. 또 하나의 부류는 어떤 해석에 정통한 이들이다. 이들은 본성적으로 그리고 훈련, 즉 철학에서의 훈련을 통해 논증적 해석을 하는 부류다. 이 해석은 대중은 물론 변증술적 부류에게도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_ 아베로에스, <결정적 논고>, p64/226

서로 다른 수준에 있는 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진리(신)에 이르는 길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따라 수사학, 변증학, 논증학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개방되어야 하나,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하나이어야 하고, 핵심(核心)은 바로 논증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철학'이 유일함을 아베로에스는 밝힌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 아베로에스의 <결정적 논고>는 '철학'이 결코 이슬람의 가르침에 벗어난 이교도의 학문이 아니라, 율법의 명령으로 신의 뜻을 찾는 정도에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신앙과 이성을 화해시킨다. 아베로에스는 오직 철학을 통해 <꾸란>의 우의적 해석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경전과 생활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아베로에스의 조화는 '철학을 중심으로 한 신학의 조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는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양대 종교의 '신앙과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하게 된다...

아베로에스, 아퀴나스, 시제 모두 진리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의견은 일치한다. 철학과 신학은 상이한 방식을 사용할지라도 동일한 실재와 연결되어 있다. 철학과 신학이 그러한 실재를 기술하기 위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상이한 사상 체계는 불필요하다. 오직 하나의 진리만 있을지라도 그 진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근될 수 있으며, 철학과 신학은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p171)... 아베로에스의 합리주의는 인간 이성만이 모든 존재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 위에 정초해 있다. 반면 아퀴나스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넘어서는 진리가 있다고 전제한다.. _ 아베로에스, <결정적 논고>, p148/226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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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주군이 제를 멸망시키고 너그럽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여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죄가 후손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옛날에 정해진 규정이 있다. 잡역에 종사하는 무리는 다만 정상적인 법과 달리하여 한 번 죄에 따라서 배치되면 100세대가 그것을 면하지 못하여 벌(罰)이 끝이 없으니 형벌이 어떻게 조치되는 것인가! 무릇 여러 잡호(雜戶)를 다 풀어서 서민으로 삼도록 하라." 이로부터 다시 잡호는 없게 되었다.

주의 주군은 성품이 절약하고 검소하여 항상 무명옷을 입었고 무명 이불을 덮고 잤으며 후궁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매번 군사를 움직일 때마다 직접 진지 안에 있었고, 산과 골짜기를 걸어서 지나니, 다른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하였으며, 장수와 병사를 어루만져 은덕을 갖게 하고, 밝게 살피고 과감하게 결단하며 법을 아주 엄격하게 사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장수와 병사는 위엄을 두려워하였으나 즐겨 그를 위하여 죽으려고 하였다.

"이 주(州, 서주)는 회수 남쪽을 잡아당겨 허리에 두르고 강한 도적[陳]과 이웃하고 있으니, 자신을 위하여 계획하려고 하면 용이하기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

다만 충성과 의리의 절개를 이지러트려 어길 수 없는데, 하물며 돌아가신 황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야 어찌 뒤를 이은 군주에게 죄를 얻어서 갑자기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바로 여기에서 죽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천년 후에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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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될지 예상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구석기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그들은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 우리 종이 다른 사람 종들을 정복할 무기를 생각해낸 이래로 우리는 지능을 과하게 강조해왔다. 우리는 지능을 토대로 확고한 구분선을 긋고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잔인한 고통을 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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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국인 우익(于翼)이 간하였다.
"국경을 서로 침략하면 서로 이기고 지는 일이 있는데, 다만 군사와 군비를 덜어내고 큰 계책에는 이익 되는 것이 없습니다. 계엄을 풀고 우호를 계속하는 것만 못하며, 저들이 게을러져서 대비하지 않도록 하고, 그런 다음에 사이를 틈타서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나가면 일거에 빼앗을 수 있습니다."
주의 주군은 그 말을 좇았다.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죄 있는 사람은 죽이는데, 이것은 인군(人君)의 임무입니다.

공자께서는 ‘덕(德)으로 원수에게 보답하는 사람이 무엇으로 덕을 베푼 사람에게 보답하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루겸을 위하는 것이라면 의당 사양하여 받지 않고 그를 유사에게 돌려서 법과 형벌을 바르게 하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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