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모두 인간성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은 도덕적 논쟁이 아니라, 공통된 도덕적 확신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러한 언명이 꼭 같은 생각을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는 같았다. 그 언명들이 가리키는 바는, 인간 각자의 삶에는 도덕적 해를 끼치지 않고는 착취되거나 침해될 수 없는, 그 자체로 귀중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1880~1945년의 자유주의자들은 부당한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동등한 시민들 사이에서의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인간 진보의 질서라는 매력적인 이상을 물려받았다. 물질적 진보, 교육의 확산, 절제와 타협이라는 중간 계급 가치들의 수용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지배자 없는 질서라는 자신들의 꿈이 결국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국가적 통일성은 1880~1945년 내내 자유주의 질서에의 기대를 위협할 정도로 계속 지리멸렬했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제국은 다양한 신분의 뒤얽힘과 상충하는 권위들 때문에, 그리고 자유주의 원리에 대한 많은 도전 때문에 비통일성이 한층 더 심각했다.

경제적으로, 민주주의와의 타협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맞닥뜨린 대가였다.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협상의 윤곽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만약 소수가 다수와 몫을 나누어야 한다면, 다수는 소수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그런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묻어두었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한참 후퇴해 보통선거권을 인정했고, 다수에 의한 통치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다수의 지배가 갖는 한계들에 대한 탐구를 결코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전략적 후퇴의 첫 번째 요소는 인민 주권에 대한 자유주의의 암묵적 합의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국민에 의한 정부는 특히 대의代議 representation, 정확히 표현하기articulation, 관료화bureaucratization, 절연insulation이라는 제약을 받아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하바라따 1 - 1장 태동: 신과 아수라와 인간과 영물들의 탄생 마하바라따 1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저 옛날 천상 선인들이

네 베다를 저을 한쪽에 올리고

다른 한쪽엔 바라따를 올린 뒤 무게를 가늠했다네.

위대함과 무거움, 둘 다 바라따 쪽으로 기울었다네.


그때부터 바라따는 마하바라따로 불렸다네.

이렇게 위대함과 무거움 때문에 

마하바라따로 부른다는 어원만 알아도

죄에서 해방된다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67


 위야사의 <마하바라따 1 : 태동>는 <베다 Veda>를 능가하는 <마하바라따 Mahabharata>의 시작이다. 어둠에서 생겨난 빛, 브라흐마(Brahma)로부터 생겨간 세상의 창조로부터 시작되어 소멸로 이어지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브라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마하바라따 1>에서 가장 인상깊게 가슴으로 들어온 주제다.


 천지에 빛이라고는 없이 온 사방이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을 때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다. 멸하지 않는 생명의 씨였다. 사람들은 이를 세상이 시작되는 신비로운 근원이라 일컬었다.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참다운 빛이요 영원불변의 브라흐마라 했다. 있기 힘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라 했으며, 거동은 한 점 흠결 없이 조화롭다 했다. 현재하고 은재하며, 드러나 보이지 않는 미묘한 근원이라고도 했다. 거기에서 생명의 어버이, 이 세상의 하나뿐인 주인이자 조상인 브라흐마가 나셨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41


 움직이거나 아니 움직이는 것이나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유가(yuga)의 끝이 오면 온 천지에서 다시 모조리 소멸하게 된다. 철이 바뀌면 그에 따른 온갖 징후들이 나타나듯 유가의 처음이 오면 이런 존재들 또한 그런 징후를 보이게 된다. 존재의 바퀴는 이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생성과 소멸의 근원이 되어 시작함도 다함도 없는 이 세상을 굴리는 것이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44


 존재하거나 아니 존재하는 것, 행과 불행 이 모든 것은 시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시간은 만물을 익게 하고, 생명을 거두어들입니다. 다시 시간은 생명을 태워 없앴던 저 시간마저 궤멸시키지요. 시간은 좋고 나쁜 것 가리지 않고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 변화시키며, 만 생명을 줄이고 다시 늘입니다. 시간은 만 생명 안에서 공평히 움직이고, 온 생명을 평등하게 놓아줍니다. 과거의 존재도 미래의 존재도 또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모두 시간의 창조물임을 알아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63


 선(善)하게 태어난 자신을 삼가고, 주위를 해치지 않으며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생성과 소멸의 반복 속에서 브라만이 지켜야 할 영원의 덕목임이 <마하바라따 1>에서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반복되어 말해진다. <마하바라따>에서는 이처럼 도덕과 윤리가 강조된다. 개인적으로 이에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 <일리아스>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BCE 8세기라는 거의 같은 시기에 문명과 야만을 상징하는 두 작품이 아닐까.


 브라만이 선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베다의 진리요 또한 베다나 베당가의 가르침을 아는 자은 모든 생명에게 두려움을 주지도 말아야 하오.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 그리고 용서하는 것은 브라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이이서, 베다에 통달하는 것보다 우선하여 이루어야 할 일이오. 크샤뜨리야의 율법은 당신이 따라야 할 덕목이 아니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140


 뭇 생명을 다정히 대하고, 베풀며, 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 이 세 가지보다 더 나은 일은 삼계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부드러운 말을 하고 거친 말을 삼가고,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고, 늘 베풀고,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399


 <마하바라따>는 CE 4세기 경 처음으로 텍스트로 기록되었지만, 최초 이야기의 시작은 BCE 8~9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같은 시기 호메로스(Homeros, BCE 8세기 ?)가 <일리아스 Ilias>에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부터 신과 인간의 전쟁이야기를 펼쳐나간다면, <마하바라따>는 분노를 넘어선 절제를 노래한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에게 최상의 목적은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브리세이스를 돌려받는 것과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였지만, <마하바라따>에서는 용서와 절제를 통한 영겁의 생성과 소멸의 윤회를 넘어선 목샤[해탈]에 이르는 길이 제시된다. 


 가라, 가서 열매만 먹으며 자중하고, 차분히 있거라. 분노를 버리고 다르마가 아닌 것을 멀리 하거라. 수행자의 분노는 그동안 애써 모든 다르마를 점점 멀리 달아나게 한단다. 그러다 보면 다르마는 사라지고 우리가 바라는 최상의 목적을 이를 수 없게 된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려는 수행자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야만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란다. 이 세상은 용서하는 자의 것이며 저 세상도 용서하는 자의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용서할 것이며, 감각을 절제하거라. 용서함으로써 넌 브라흐마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을 얻을 것이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215


 거의 같은 시기에 씌여진 두 작품에서 이토록 사상적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마하바라따>의 많은 부분은 텍스트로 정착되는 과정엣 첨가된 것이고, BCE 8세기 경의 내용은 BCE 14~10세기 경 빤다와들과 까우라와들 사이의 전쟁에 바탕을 둔 피와 살이 튀는 전투 장면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마하바라따>의 시작은 오늘날의 <일리아스>와 크게 다를 것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많은 이름 모를 시인, 지식인들의 역량이 집결되어 전쟁 서사시를 넘어 인도 문명의 집결체가 된 것은 현세 시간을 살아간 집단지성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집단지성의 참여가 호메로스라는 1명의 천재에 의해 완성된 작품과는 다른 차원의 깊이를 선사했음을 <마하바라따 1>을 읽으며 깊이 느낀다...


친애하는 이여, 무엇을 해야 죽음 있는 인간이

최상의 세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지식입니까, 고행입니까?

나의 물음에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어찌해야 순결한 세계에 제때 이를 수 있습니까?


고행과 보시, 고요함과 절제

겸양과 절개, 만물에 대한 자비심이랍니다. 

반면 어둠에 휩싸인 자는 자만으로 인해

파멸하게 된다고 선자들은 말한답니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1>, p414

왕이시여, 운명이 만든 일은 운명이 알아서 할 일이며, 운면에 몸을 맡기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오. 뛰어난 뱀들이여, 우리의 이 모든 두려움은 운명에서 비롯되었으며 운명만이 우리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것이오. - P204

죄를 범하고도 "아무도 모르리라"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이 알고, 자기 내부의 존재가 안답니다. 해와 달, 바람과 불, 하늘과 땅과 물이, 당신 가슴과 죽음의 신 야마가, 낮과 밤과 여명과 노을과 다르마가 인간들의 행위를 알고 있습니다. 위와스완의 아들 야마는 행위를 지켜보는 내부의 존재가 가슴속에 살아 있을 때는 그를 어여삐 여기고 그의 죄를 가져갑니다. 그러나 내부의 존재가 사악한 자를 싫어하면 야마는 악행을 저지른 그 사람을 데려간답니다.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자신을 멸시한다면 신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고 영혼을 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답니다. - P339

늙으면 수염과 머리털은 하얗게 세고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기력은 쇠해지고 온몸엔 잔주름투성이여서 흉측하며 몸메 힘이 빠져 비쩍 마르고 맙니다. 늙은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젊은이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이지요. 또한 늙으면 종들마저 업신여기니 난 아버지의 늙음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p389)...넌 늙음의 나쁜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너 또한 그렇게 되리라. - P3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속... 잊지마. 채록아. 내가 기억을 잃어도 넌 계속 나아가고 멈추지 않을 거라고 가슴 깊이 기억할게.... 다시... 이런 말을 해줄 수 없게... 난 곧 다 잊겠지만. 그래도 넌 잊지마. " _ HUN, 지민, <나빌레라 커튼 콜>, p174


 커튼콜(curtain call). 오페라, 발레, 연극, 뮤지컬 등에서 가수, 발레 댄서, 배우, 지휘자, 연출가가 무대에 나타나 관객에게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위키백과)


 <나빌레라 커튼 콜>에서는 제목 그대로 <나빌레라>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그 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방황하던 청소년이었던 채록이는 발레단은 맡고, 예전의 자신처럼 방황하는 후배 지슬이를 이끌어 주면서,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답해준다. 연의가 독후감에서 <나빌레라 커튼 콜>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빠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해. 바로 할아버지가 걸린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해서야.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뇌 질환으로 흔히 기억력을 점차 잃는 것으로 연의도 알고 있을거야. 그런데, 단순히 덕출 할아버지는 기억력을 잃기만 한 것일까? 


 웬디 미첼이라는 작가가 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서 작가는 치매에 걸린 환자이기도 해. 마치 <나빌레라>에서 덕출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수첩에 빼곡히 메모를 기록했던 것처럼, 웬디 미첼 작가도 글을 썼단다. 차이가 있다면, 덕출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거부하고 치매를 이겨내기 위해 발레를 했다면, 미첼 작가는 치매에 걸린 삶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글을 썼다는 점이야. 우리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 덕출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면서 마주했던 어려움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돼.


 사람들은 치매라고 하면 바로 기억력과 연관시킨다. 반면 치매가 기억력과 상관없는 감각이나 감정, 의사소통 같은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면 내부와 외부 환경을 그에 맞게 바꿔야 하며, 그렇게 그것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14/262


 <나빌레라>에서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메모를 하면서 기억을 하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메모를 한 것일까? 아빠는 기억이 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가져다 주는 슬픔, 실망 등의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할아버지가 메모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도 생각하게 되었어. 비록 이 부분은 크게 강조되지는 않지만 말이야. 


 <나빌레라 커튼 콜>에서는 항상 멍하게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주로 그려지지? 그리고, 그 곁에서 알아듣지 못하시는 듯 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채록이의 모습이 언뜻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알아들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지만, 아래 글을 읽어보면 채록이는 아주 잘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단다. 


 의사소통은 온갖 형태로 이루어진다. 간혹 환자가 치매 때문에 언어 능력이 많이 쇠퇴하고 심지어 아예 말을 못하게 되면 환자에게 말하기를 중단하거나 방문을 중단하고 식탁에 환자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그들은 비언어적 표현을 전혀 생각도 못하지만, 우리는 평생을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면서 그것을 필수적으로 사용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흘끗 오가는 시선에는 천 마디의 의미가 담겨 있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들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담겨 있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102/262


 거의 모든 기억을 잃고 마음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 그렇지만,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는 할아버지도 실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함께 기쁨과 슬픔 등을 나누며 가끔 표현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 이 모든 것을 주위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 덕출 할아버지가 걸린 치매라는 병에 대해 조금 알고 책을 읽는다면, 이야기가 더 연의 가슴에 깊게 와 닿을 것 같아.


 채록아... 이렇게 어쩌다 네가 떠오르는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이 한가득 벅차오른다. 힘없고 떨리는 손으로 언제 기억이 다시 어두워질지 몰라 길게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는구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이겠지만 그 나아감에 용기를 잃지 말기를... 그리 믿고 한걸음 내디딜 수 있다면 우린 분명 어제보다 꿈에 닿아가고 있구나... _ HUN, 지민, <나빌레라 커튼 콜>, p340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치매에 걸린 덕출 할아버지의 무표정이 할아버지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도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반드시 말로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연의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아빠는 생각해. 


 이제 5월도 다 지나가고 6월이 시작되는구나. 벌써 일년의 절반이 다 지나갔어. 이번 한 주도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보자. 사랑하는 아빠가.


 나는 매일 이렇게 치매와 영원한 추격전을 벌이지만, 내가 지는 날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날은 치매의 실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겁을 먹는 대신 오래전에 헤어져서 많이 그리웠던 사람의 방문을 받는 축복을 받았다. 아버지는 입고 있는 옷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화창한 오후에 식은 찻잔을 들고서 만족스러웠다. 찻잔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올렸을 때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52/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서양사정- 완역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송경호 외 옮김 / 여문책 / 2021년 4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3년 05월 28일에 저장

후쿠자와 유키치의 젠더론- 후쿠자와 선생, 남녀의 풍속을 논하다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표세만 외 옮김 / 보고사 / 2014년 12월
23,000원 → 21,850원(5%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3년 05월 28일에 저장

문명론 개략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성희엽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9월
34,000원 → 30,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3년 05월 28일에 저장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2006년 3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3년 05월 28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문명론 개략 후쿠자와 선집 1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성희엽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일본국 사람을 문명으로 나아가게 함은 이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일 따름. 나라의 독립은 목적이고, 지금의 우리 문명은 이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다. 지금의 우리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명의 본지가 아니라, 우선 일의 첫걸음로서 자국의 독립을 도모하고 그 밖의 것은 두 번째 걸음으로 남겨서 다른 날에 이루려는 취지이다. 생각건대 이와 같이 논의를 한정하면 나라의 독립은 곧 문명이다. 문명이 아니면 독립을 지킬 수 없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535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1835 ~ 1901)가 <문명론 개략 文明論之槪略>에서 말하는 문명(文明)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문명,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후쿠자와는 서두에서 문명을 우열(優劣)에 따라 구분하고, 앞선 문명인 서구 문명을 따라가는 것을 지식인의 과제로 정의한다. 


 지금 세계의 문명을 논하면, 유럽 국가들과 아메리카합중국을 최상의 문명국이라 하며, 투르크 土耳古, 지나, 일본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반개화국 半開國이라고 말하고, 아프리카 阿非利加 및 오스트레일리아 墺太利亞 등은 야만국이라고 일컫는다(p108)... 사물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아는 자는 그 이치를 더 깊이 앎에 따라 점점 더 자기 나라의 형국을 분명히 알게 되고, 더 분명히 알게 됨에 따라 서양 나라들에 미치지 못함을 점점 더 깨달아 이를 걱정하고 비관하며, 때로는 그들에게 배워 모방하려 하고 때로는 스스로 노력하려 이에 대립해보려고도 하는 등 아시아 나라들에서 식자 識者들의 평생 걱정은 오직 이 일 하나에 달려 있는 것 같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09


 이 책 전체에 걸쳐 논하고 있는 이해득실은 모두 다 유럽문명을 목적으로 정하여 이 문명을 위해서 이해가 있고 이 문명을 위해서 득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학자들은 그 큰 취지를 그르치지 말지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17


 그렇다면, 반개화국이나 야만국의 지식인들은 왜 문명화 - 서구화 -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국체 國體 - 나라 - 를 지키기 위해서다. 보다 앞선 과학기술을 앞세워 무력을 갖추고 일본을 위협하는 외세 - 외부문명 - 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명론 개략>의 주된 내용이다. 


 일본 사람의 의무는 오직 이 국체를 지키는 일 한 가지뿐, 국체를 지킨다 함은 자기 나라의 정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민의 지력 智力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항목은 매우 많지만, 지력을 계발 發生하는 길에서 첫 번째로 급한 일은 고습 古習에의 혹닉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서양에 널리 퍼져있는 문명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50


 국체 國體. 체 體는 합체 合體라는 뜻이고, 또 체재 體裁라는 뜻이다. 사물 物을 모으고 이를 온전하게 하여 다른 사물과 구별할 수 있는 형체 形를 말한다. 따라서 국체란 한 종족 一種族의 인민이 서로 모여 고락 憂樂을 함께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보다 따뜻하며, 서로 상대방에게 힘을 쏟음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보다 열심이고, 한 정부 아래 살면서 스스로 지배하고 다른 정부로부터 제어받음을 달가워하지 않고, 화복을 함께 감재하며 스스로 독립함을 말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36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 개략>에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해야하는 이유를 국체를 보존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지식인들은 반개화상태에서 벗어나 선진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러한 기풍을 전체 인민으로 학장시켜 마침내 문명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함을 강조한다. 


 전국 인민의 기풍을 일변 一變하는 것과 같은 일은 지극히 어려우며 하루아침 아루저녁의 우연으로 공을 세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 하나의 방법은 인간의 본성 天然에 따라 해 害를 없애고 장애를 멀리하며, 인민 전체가 스스로 지덕을 계발하도록 하여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고상한 영역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있을 뿐. 이와 같이 천하의 인심을 일변하는 실마리가 열리면 정령과 법률의 개혁도 차츰 이루어지고 장애도 사라질 것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123


 천 번을 갈고 백 번을 단련하여 겨우 한 때의 이설 異說을 누르고 얻은 것을 국론 혹은 중설 衆說이라고 이름할 뿐, 이것이 바로 신문, 연설회가 성행하고 다중의 입 衆口이 떠들썩한 까닭이다. 인민은 분명 나라의 지덕에 의해 편달되기 때문에, 지덕이 방향을 바꾸면 인민 또한 방향을 바꾸고, 지덕이 파당으로 나뉘면 인민 또한 파당으로 나뉘고, 진퇴와 이합집산 모두 다 지덕을 따르지 않음이 없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236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 개략>을 통해 단순히 피상적인 주장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정치, 종교, 과학의 역사와 일본 역사의 비교를 통해 나름 치밀하게 서구화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끌어낸다. 그러한 저자의 논리를 일본이 근대화로 나아갔고, 후에 제국주의를 거쳐 군국주의로 나아갔음을 알고 있는 독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발견되는 위험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서구 계몽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온 것과 같은 오리엔탈리즘 등의 요소는 책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문명은 서양문명보다 뒤처져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에 앞뒤가 있다면 앞선 자는 뒤처진 자를 다스리고 制 뒤처진 자는 앞선 자로부터 다스려지는 게 이치다(p485)... 무릇 문명이라는 것 物이야 지극히 광대해서 대개 인류의 정신이 도달하는 것은 모조리 그 이 범위 區域 안에 들지 않는 게 없다. 외국에 대하여 자국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 따위는 본래 문명론 중에서도 아주 사소한 일개 항목에 지나지 않지만, 문명의 진보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진보의 단계에 따라 그에 맞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486


 개인적으로 <문명론 개략>을 읽으며 개화기 일본 지식인들의 사상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한계 등을 함께 엿보게 된다. 생존을 위한 이른바 문명화. 서구화를 이루기 위해 전통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서구 문명을 닮아가기 위한 노력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을 빠르게 제국주의 열강으로 올라서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근대화는 과연 제국주의를 넘어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는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몰락으로 끝난 일본의 문명화 노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영원히 거북이를 이기지 못하는 아킬레스,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 인민의 권력은 쇠와 같아서 이를 팽창시키기도 아주 어렵고 이를 수축시키는 것도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일본 무인의 권력은 고무와 같아서 그들이 서로 접하는 곳의 물질에 따라서 수축과 팽창의 형태가 다른데, 아래와 접하면 크게 팽창하고, 위와 접하면 갑자기 수축하는 성질이 있다. 이처럼 치우쳐서 수축하고 치우쳐서 팽창하는 권력을 한 덩어리 一體로 모아서 이를 무가의 위광 威光이라고 이름하며, 그 한 덩어리의 위광으로부터 억압을 받는 자가 무고한 소민 小民이다. _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 개략>, p449

감히 한 마디 말을 내걸어 천하 사람들에게 묻겠다. 지금 이때를 맞아 앞으로 나아갈 進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설 退것인가, 나아가 문명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물러서서 야만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오로지 진퇴 進退라는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 P107

덕의의 도에 관해서는 마치 옛사람 古人에게 전매 권한을 빼앗겨 후세 사람은 그저 중매인 같은 일이나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예수와 공자 이후에 성인이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덕의에 관한 일은 후세에 이르러 진보할 수가 없다. 개벽한 처음 때의 덕 德이나 오늘날의 덕 德이나 그 성질 性質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지혜는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지혜의 항목이 날로 증가하여 그 발명의 수가 많음은 예로부터 일일이 거론할 겨를이 없으며 앞으로의 진보 또한 가늠할 수 없다. - P290

사람의 정신이 발달함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으며, 조물주 造化의 장치 仕掛에는 법칙 定則이 없을 리 없다. 무한한 정신으로 유한한 이치를 궁리하여 끝내는 유형, 무형의 구별 없이 천지 사이의 사물을 모조리 다 사람의 정신 안에 포괄 包羅하여 빠뜨리는 게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P333

최종 목적을 자국의 독립으로 정하고 마침 지금의 인간만사를 모두 녹여 하나로 되게 하고 이 모든 것을 다 저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때에는 그 수단의 다양함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제도든, 학문이든, 상업이든, 공업이든, 하나같이 이 수단이 아닌 것은 없다. - P5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