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잊지마. 채록아. 내가 기억을 잃어도 넌 계속 나아가고 멈추지 않을 거라고 가슴 깊이 기억할게.... 다시... 이런 말을 해줄 수 없게... 난 곧 다 잊겠지만. 그래도 넌 잊지마. " _ HUN, 지민, <나빌레라 커튼 콜>, p174


 커튼콜(curtain call). 오페라, 발레, 연극, 뮤지컬 등에서 가수, 발레 댄서, 배우, 지휘자, 연출가가 무대에 나타나 관객에게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위키백과)


 <나빌레라 커튼 콜>에서는 제목 그대로 <나빌레라>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그 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방황하던 청소년이었던 채록이는 발레단은 맡고, 예전의 자신처럼 방황하는 후배 지슬이를 이끌어 주면서,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답해준다. 연의가 독후감에서 <나빌레라 커튼 콜>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빠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해. 바로 할아버지가 걸린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해서야.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뇌 질환으로 흔히 기억력을 점차 잃는 것으로 연의도 알고 있을거야. 그런데, 단순히 덕출 할아버지는 기억력을 잃기만 한 것일까? 


 웬디 미첼이라는 작가가 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서 작가는 치매에 걸린 환자이기도 해. 마치 <나빌레라>에서 덕출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수첩에 빼곡히 메모를 기록했던 것처럼, 웬디 미첼 작가도 글을 썼단다. 차이가 있다면, 덕출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거부하고 치매를 이겨내기 위해 발레를 했다면, 미첼 작가는 치매에 걸린 삶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글을 썼다는 점이야. 우리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 덕출 할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면서 마주했던 어려움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돼.


 사람들은 치매라고 하면 바로 기억력과 연관시킨다. 반면 치매가 기억력과 상관없는 감각이나 감정, 의사소통 같은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면 내부와 외부 환경을 그에 맞게 바꿔야 하며, 그렇게 그것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14/262


 <나빌레라>에서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메모를 하면서 기억을 하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메모를 한 것일까? 아빠는 기억이 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가져다 주는 슬픔, 실망 등의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할아버지가 메모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도 생각하게 되었어. 비록 이 부분은 크게 강조되지는 않지만 말이야. 


 <나빌레라 커튼 콜>에서는 항상 멍하게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주로 그려지지? 그리고, 그 곁에서 알아듣지 못하시는 듯 하는 할아버지 곁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채록이의 모습이 언뜻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알아들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지만, 아래 글을 읽어보면 채록이는 아주 잘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단다. 


 의사소통은 온갖 형태로 이루어진다. 간혹 환자가 치매 때문에 언어 능력이 많이 쇠퇴하고 심지어 아예 말을 못하게 되면 환자에게 말하기를 중단하거나 방문을 중단하고 식탁에 환자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그들은 비언어적 표현을 전혀 생각도 못하지만, 우리는 평생을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면서 그것을 필수적으로 사용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흘끗 오가는 시선에는 천 마디의 의미가 담겨 있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들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담겨 있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102/262


 거의 모든 기억을 잃고 마음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 그렇지만,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는 할아버지도 실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함께 기쁨과 슬픔 등을 나누며 가끔 표현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 이 모든 것을 주위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 덕출 할아버지가 걸린 치매라는 병에 대해 조금 알고 책을 읽는다면, 이야기가 더 연의 가슴에 깊게 와 닿을 것 같아.


 채록아... 이렇게 어쩌다 네가 떠오르는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이 한가득 벅차오른다. 힘없고 떨리는 손으로 언제 기억이 다시 어두워질지 몰라 길게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는구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이겠지만 그 나아감에 용기를 잃지 말기를... 그리 믿고 한걸음 내디딜 수 있다면 우린 분명 어제보다 꿈에 닿아가고 있구나... _ HUN, 지민, <나빌레라 커튼 콜>, p340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치매에 걸린 덕출 할아버지의 무표정이 할아버지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도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반드시 말로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연의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아빠는 생각해. 


 이제 5월도 다 지나가고 6월이 시작되는구나. 벌써 일년의 절반이 다 지나갔어. 이번 한 주도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보자. 사랑하는 아빠가.


 나는 매일 이렇게 치매와 영원한 추격전을 벌이지만, 내가 지는 날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날은 치매의 실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겁을 먹는 대신 오래전에 헤어져서 많이 그리웠던 사람의 방문을 받는 축복을 받았다. 아버지는 입고 있는 옷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나 역시 화창한 오후에 식은 찻잔을 들고서 만족스러웠다. 찻잔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올렸을 때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_ 웬디 미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p52/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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