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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비극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김기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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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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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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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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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과제는 희랍의 인간교육(paideia)을 희랍 고유의 특질과 역사 전개 가운데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 교육은 추상적 이념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체험된 운명의 구체적 현실 가운데 발견되는 희랍역사 자체다... 희랍인은 최고 의지를 표현하는 개념을 그들 발전의 초기 단계엔 갖지 못했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고 길을 걸어가면서 희랍인은 자신과 자신의 삶이 지향하는 목표를 점차 뚜렷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더욱 훌륭한 인간의 조형이었다. 희랍인에게 교육사상은 모든 인간적 분투를 대표하며, 교육은 인간 공동체와 개인의 궁극적 존립 정당성이었다.(p20) <파이데이아 1> 中 


 베르너 예거(Werner Jaeger, 1888 ~ 1961)는 <파이데이아 1 Paideia: The Ideals of Greek Culture Volume 1>에서 고대 희랍의 문학, 철학, 정치 등의 작품에 담긴 교육의 대상과 내용을 분석하면서, 희랍 교육 사상안에 희랍 정신의 정수(精髓)가 담겨있다고 결론내린다.


[그림] Paideia(출처 : https://hellenicfaith.com/paideia/)


 희랍 교육사상은, 민족과 국가가 정신적으로 조형된 삶 속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며 그 힘으로 타 민족과 타 국가를 빨아들이는 가장 숭고한 힘의 총체가 되었다. 인간교육의 이념 말고 희랍세계에서 아테네가 보여준 정치적 권력의지를 정당화해줄 근거는 달리 없을 것인데, 특히 아테네의 외적 좌절 이후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인간교육의 이념에서 아티카 정신은 영원한 존속이라는 위안을 얻었다.(p588) <파이데이아 1> 中


 고대 희랍에서 교육(敎育)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예거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귀족계층은 흥망(興亡)을 거듭하며, 때로는 권력을 내주기도 하지만 빠른 시간내에 권력을 획득하면서 중심에 있었으며 이러한 귀족정신을 대표하는 덕목이 '탁월함(arete)'이라 해석한다. 


 귀족층은 민족교육의 정신적 원천이다.... 교육은 다만 점차 정신영역으로 옮겨간 민족적 귀족이념이다.(p39)... 지배와 탁월함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다. '탁월함(arete)'의 어원은 뛰어남과 월등함의 최상급인 '제일 뛰어남'이며, 복수형으로 늘 귀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p41)... 귀족교육은 각자가 평생 바라볼 이상(理想)에 대한 의무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의무감을 '염치(aidos)'라고 하는데 이는 언제든지 귀족에게 촉구될 수 있는 것이며, 그 훼손은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분노(nemesis)'를 다른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다.(p43) <파이데이아 1> 中


 예거는 호메로스(Homeros, ? ~ ? )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가 이러한 귀족정신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되는 <일리아스>와 트로이아를 파괴한 후 많이도 떠돌았던 오뒤세우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뒷세이아> 안에서 우리는 탁월한 귀족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일리아스>는 탁월함의 고대적 영웅정신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던 세대를 배경으로 하며, 탁월함의 이상을 모든 영웅에게서 실현한다. <일리아스>는 노래로 전승된 신화 속 옛 영웅들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이미 분명한 도시국가 생활을 익힌 헥토르와 트로이아의 모습에 담긴바 당대의 생생한 귀족전통을 통합하여 영원한 이상형을 제시했다.(p59) <파이데이아 1> 中


 <오뒷세이아>는 우리에게 옛 귀족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자료다. 물론 그것은 <오뒷세이아>가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이오니아 지방의 귀족문화겠지만, 이를 우리의 연구대상인 전형적 귀족문화로 간주할 수 있다.(p60) <파이데이아 1> 中


  호메로스가 귀족문화의 전형을 제시했다면, 헤시오도스(Hesiodos, BC 7세기 ?)는 민중의 삶을 노래하면서 영웅이 아닌 일반인의 삶을 노래한다. 헤시오도스가 <일들과 날들> <신들의 계보>를 통해 신화를 민중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이제 시민계급이 새로운 교육의 주체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이제까지 의식적 교육에서 배재되었던 민중계급은 헤시오도스 서사시에서 정신적 자기 형성을 완수한다. 이때 민중은 상류 사회의 문화가 그들에게 제공한 이점들, 특히 궁정문학의 정신적 형식들을 활용하고, 민중 삶의 근원에서 그들 고유의 내용과 정신을 길어 올린다.(p136) <파이데이아 1> 中

 

 <일들과 날들>의 근본사상, 정의와 노동의 관계가 바로 연결 고리였다. 평화로운 노동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에리스만이, 대지에 질투와 갈등이 만연하는 것을 저지할 유일한 신성이다. 노동은 인간에게 힘겨운 강제이며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시인 헤시오도스는 세계 질서의 영원한 법칙 가운데 근거 짓고, 사상가 헤시오도스는 이를 신화의 종교적 표상 가운데 깨닫는다. 호메로스 사유는 신화전승을 이런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이르지 못했고, 반면 헤시오도스는 그의 다른 위대한 저작 <신들의 계보>에서 이를 최초로 시도한다.(p123) ... <신들의 계보>의 '인과적' 사유형식을 헤시오도스는 <일들과 날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통해 노동의 실천적/윤리적/사회적 문제에 적용한다.(p125) <파이데이아 1> 中


 이후 아테네의 솔론(Solon, BC 640 ? ~ BC 560 ?)은 입법자에게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도덕 기준을 요구하며, 이른바 '솔론의 개혁'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테네 민주주의는 한층 발전하지만, 통치 계급에 더 높은 수준의 '탁월함'을 요구하는 다른 기준은 후대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를 통해 '철인(哲人)' 지배를 주장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계와 끝이라는 개념은 솔론과 동시대인들이 중요시했던 문제, 내면적 성찰을 통한 새로운 생활규범의 획득과 분명한 연관성을 가진다... 한계는 딱 잘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대중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법률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법을 만든 입법자에게는 어디에도 없는 좀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된다. 그에게 이런 기준을 찾게 만든 아주 특별한 것을 솔론은 "판단"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늘 올바른 통찰과 확교한 실천 의지를 나타내는 "앎"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솔론이 가진 내면 세계의 통일성을 파악해야 하는 지점이다.(p246) <파이데이아 1> 中


 후대의 모든 교육이 고민했던 큰 사회 문제는 개인주의의 극복이고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라는 기준에 따른 인간교육이었다. 이런 문제의 실질적 해결방안으로 엄격한 규율의 스파르타 국가가 유력해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플라톤의 사유는 스파르타 국가에 평생 매달렸다.(p149) <파이데이아 1> 中


 

도시국가는 각 형태마다 거기에 맞는 특별한 인간유형을 길러냈다는 플라톤의 말은 옳다.(p185)... 우리는 이오니아에서 시작되어 옛 희랍 귀족문화가 '보편적 인간교육'의 이념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새로운 도시국가의 의미를 검토해야 한다.(p187)... 플라톤은 <법률>에서 모든 참된 교육 혹은 인간교육을, 상인과 장사꾼과 뱃사람 등 직업인의 특수 지식과 구별하여 "참된 교육은 법률의 토대 위에 통치하고 통치받을 줄 아는 완벽한 시민이 되려고 열망하는 인간을 그가 갖추어야 할 탁월함으로 이끄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초기 도시국가의 정신에 충실하게 '보편교육'의 근원적 의미를 천명했다.(p191) <파이데이아 1> 中


 고대 희랍에서 교육의 대상이 이처럼 귀족계층에서 시민 계급으로 확대되었다면, 교육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거는 이를 아이스퀼로스(Aischylos, BC 525 ~ BC 456),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7 ~ BC 406),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 ~ BC 406)의 비극을 통해 페리클레스 50년의 황금기 동안 고대 희랍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 인간은 신들의 주사위 게임의 말에 불과한 존재에 불과하다. 아이스퀼로스 작품 안에서 인간은 신에게 탄원하는 존재라면,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인간은 비로소 주체로서 생명을 부여받았다. 

 

 삼부작 형식은 아이스퀼로스 문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삼부작 형식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운명이기 때문인바 이때 운명의 담지자가 개인일 필연선은 없고 개인이 속한 가문 전체일 수도 있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에서 인간은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고 운명의 담지자일 뿐이었고 문제는 운명이었다.... 극 전개의 주인공은 인간들이 아니라 초인간적인 신들이다. 신성은 권력의 정점에 서서 인간들의 싸움을 굽어보고 있고, 만물은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p383) <파이데이아 1> 中


 소포클레스의 인물에는 억지스러운 궤변이나 인위적 과대과장이 없다. 소포클레스의 기념비적 성과는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 비율에서 나타난다. 소포클레스의 인물을 아이스퀼로스의 인물처럼 불쑥 땅에서 쏟아난 땅딱막한 진흙형상의 인물과 달랐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모든 인물을 필연성에서 태어난다. 전형이라는 공허한 보현성에서도 아니며, 개별 인물의 일회적 특수성에서도 아니며, 오로지 비본질적인 것을 배척하는 실체 자체에서 태어난다.(p407)...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은 미적 감각에서 탄생했는데, 그 출발점은 이제까지 전례가 없던 '영혼 부여'였다. 이로써 탁월함의 새로운 이상이 출현했고 이때 처음으로 '영혼'을 의식적으로 모든 인간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다.(p415) <파이데이아 1> 中


 예거에 따르면 소포클레스 작품에 보이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지식교사(소피스트 sophist)라 불리는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은 새롭게 조명되고, '만물의 척도'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짙게 영향을 끼친다.


 철학이 인간에 관심을 두고 점점 더 가까이 관심 대상에 다가갔다는 사실은 지식교사의 출현이 역사의 필연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다. 물론 지식교사들이 충족시킨 요구란 학문적/이론적 요구가 아닌 철저히 실제적 요구였다.(p436)... 지식교사들은 교육요소가 아주 강하게 드러나는 여러 종류의 잠언투 운문문학을 새롭게 산문화했고 이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의식적으로 형식에서나 사상에서 운문문학과 경쟁했다.(p437)... 지식교사들의 공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놀라운 형식교육 기술의 독창성에 있다. 그들의 약점은 그들 교육의 내적 실질을 채워줄 정신적/윤리적 실체의 결함에서 유래한다.(p484) <파이데이아 1> 中 

 

소포클레스는 시대의 가파른 정점을 걷고 있었고, 에우리피데스는 시대가 파괴할 교육비극의 계시자로 활동했다. 시대는 그의 정신사적 위치를 규정했고, 그의 문학을 오로지 시대적 표현으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구속성을 그에게 부여했다.(p486)... 에우리피데스의 인물들이 숨 쉬는 정신적 환경의 대기는 섬세하고 건조했다. 아이스퀼로스의 강력한 생명력에 비추어 다만 약점이었던 예민한 정신성은 이제, 새로운 주관적 공감 능력을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끝없는 대화를 요구하는 비극의 정신적 매체가 되었다.(p506)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에서 예거는 지식교사들의 교육이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며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은 정치교육'이라는 사상은 결국 사유(思惟)를 극한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한계점을 노출하게 된다. 여기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들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를 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진실로 '보편적인 것'은 프로타고라스가 보기에 오로지 정치교육 뿐이었다. 프로타고라스는 그의 '보편'인간교육이라는 개념 이해를 통해 희랍교육 역사의 발전 전체를 요약했을 뿐이다. 도덕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진정한 인간교육의 토대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순수 미학적 유형의 인문주의가 추가되고 혹은 이것이 기존 인문주의를 대체한다.(p443) <파이데이아 1> 中


 매우 강력한 요구와 함께 등장한 교육이념은 그만큼 더 철학과 종교의 단단한 토대를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플라톤 철학이 새로운 형태를 부여한 호메로스에서 비극에 이르는 옛 희랍교육의 종교적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지식교사들의 교육이념을 극복하면서 지식교사들 이전으로 회귀한다. 지식교사들에서 결정적인 것은 의식적 교육사상 자체다. 교육사상은 희랍의 모든 문학창작과 모든 사유 노동이 인간형상의 규범적 특징을 찾으려 애쓴 지속적 노력의 표현이다.(p446) <파이데이아 1> 中


 탐구의 활동은 "오로지 교육을 위해"이며 교육이 필연적인 한에서일 뿐이다. 이 표어는 페리클레스 교육을 상징하는데, 페리클레스 교육은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정치적이었다. 토대는 희랍의 패권을 지향하던 아테네 제국이었다.(p469).... 번성하는 학문의 엄격한 제한적 향유를 지시하는 이 문구는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귀족 칼리클레스가 벌인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p468) <파이데이아 1> 中


 이번에는 역사학을 살펴보자.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 ~ BC 425)는 <역사>를 통해 페르시아 전쟁을 두 세계의 격돌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했다면, 투퀴티데스(Tuchididdes, BC 465 ~ BC 400)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전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헤로도토스의 작품이 전쟁의 원인을 형이상학적인 것에서 찾는다면, 투퀴티데스는 인간 내부에서 이를 찾아냈다. 이는 그리스 비극에서  아이스퀼로스가 신의 뜻을 강조한 반면, 소포클레스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강조한 것을 연상시킨다.


 헤로도토스는 헤카타이오스처럼 민족학과 지역학의 통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중점은 인간들에게 두었다... 그의 내적 통일성은 상고기적 화려한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이에 희랍인들과 크로이소스왕이 이끄는 이웃 뤼디아인들 사이에 벌어진 확인가능한 최초 격돌로부터 페르시아 전쟁까지의 동양과 서양의 대결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중심이 되었다.(p552) <파이데이아 1> 中


  투퀴디데스는 정치사의 창시자다. 창조과정에서 아테네가 보여준 정치적 사유와 의지의 놀라운 집중은 투퀴디데스의 작품에서 합당한 정신적 표현을 발견했다.(p553)... 아테네 국가의 비극을 기록한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아테네 권력의 몰락을 오로지 내적 와해의 결과로 보았다. 이 순간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을 펠로폰네소스 정쟁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서 관심은, 점차 표면으로 드러나고 더욱더 급격하게 진행된 사회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위대한 역사가의 진단이다.... 투퀴디데스는 현행 가치 전체의 파탄을 말한다. 이는 심지어 언어에서 완전한 어의변화로 감지된다. 고래로 최고 가치를 표현하던 단어들은 추락하여 일상언어에서 사고와 행동의 경멸적 지시에 사용되었고 이제까지 비난을 표현하던 언어들은 출세하여 칭송의 수식어로 상승했다.(p489)... 대체로 경제발전 흐름과 패권정치 흐름에 집중되어 그려진 과거사 영상은 동시대의 희랍인들에 대한 투퀴티데스의 입장을 반영한다.(p558)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 >에서는 이처럼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polis)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정체(政體)를 고민했으며,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정체의 모습을 공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와 대상이 귀족에서 일반 시민으로 확대되었고, 교육의 내용이 신(또는 자연)에서 인간으로 변화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국가정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가정체는 희랍에서 오늘날 우리가 국헌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국가정체가 규정하는 한에서 도시국가의 삶 전체를 포함한다. 비록 시민의 모든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스파르타 방식대로는 아니지만 아테네의 국가정체에서 국가의 영향은 보편정신으로서 모든 인간적 생활영역에 깊이 침투했다... 페리클레스가 그린 아테네 국가정체의 모습은 경제, 윤리, 문화, 교육 등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총체적 내용을 포함한다.(p587)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은 고대 희랍의 교육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주요 문학, 철학, 역사서를 다루기에 결코 내용이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이들을 하나의 실로 꿰어 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그리스 비극을 다루었으니, 그리스 희극은 부록으로 옮긴다. 투퀴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에게는 <헬레니카>를 추천한다. 

 

 희극도 비극의 영향으로 비로소 '주인공'이란 것을 도입했고, 서정시적 형식요소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의 영향이다. 발전의 절정에서 희극은 비극으로부터 마침내 최종적 도야를 위한 영감을 획득했는바 비극의 교육적 소명을 받아들였다. 이는 희극 본질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생각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은 예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시대 비극과 대등한 창조물이라는 지위를 굳혔다.(p524).. 비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심호한 문제를 가지고 인간 내면으로 침잠했다. 반면 희극은 대중을 숨쉬는 공기로 삼아 대중을 통해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국가 미래와 정신 운명의 긴밀한 결합을 강조하고 대중 전체에 대한 창조적 정신의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희극은 그 교육적 소명의 정점에 도달한다.(p549) <파이데이아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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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7-25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교육 문제의 원류가 희랍에 있었군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9-07-25 22:30   좋아요 1 | URL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이 악용된 사례가 반드시 희랍에만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자라난 제도이니만큼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5 22:32   좋아요 1 | URL
개인 행복이 아닌 항상 체제를 위한 교육이라는 말씀에 오뉴월 더위가 무척 섬뜩해 집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9-07-25 22:36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찰리 채플린가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담아냈듯 부속품화된 개인을 양산하는 체제가 그들이 지향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중장보병전술인 팔랑크스도 밀집대형으로 전체로서 싸우는 형태라는 사실도 떠오릅니다. 결국, 고대 희랍 사회는 거대한 파시즘 사회의 전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5 22:40   좋아요 1 | URL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게 정말 바람직한지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5 22:53   좋아요 1 | URL
네, 사회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잘 심어주는 것이 바른 교육인지, 아니면 아이가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도록 주관을 심어주는 것이 가야할 길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는 북다이제스터님과 저만이 아닌 모든 부모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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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인간- 로마네스크, 고딕 건축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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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사회는 중세의 산업 계급처럼 상업과 각종 예술과 더불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술은 상업이 그렇듯 자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 인들은 상인도,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예속 국가들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오늘날 우리의 정부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죠. 세계의 정복자였던 그들에게 로마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야 했습니다.(p138)... 그리스의 건축은 옷을 벗은 사람에 비하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의 신체의 부분들은 오직 유기적 구조, 그의 욕구, 그의 뼈대의 결과물이며 그의 근육의 기능들일 뿐이지요. 반면 로마의 건축은 옷을 입은 사람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의복이 있습니다. 그 의복은 좋거나 나쁠 수도, 원단의 가격이 높거나 낮을 수도, 재단이 잘 되었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p144) <건축 강의 1> 中


 외젠 비올레르뒤크 (Eugene Emmanuel Viollet-le-Duc, 1814 ~ 1897)는 <건축 강의 1 Lectures on Architecture 1>에서 그리스와 로마 건축, 나아가 문명(문화)에 대해 위와 같이 비교한다. 책 전반에서 자유로운 그리스 사회에 비해 로마는 철저하게 제도화된 사회였기에 이들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러한 <건축 강의 1>의 내용을  우리나라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비올레르뒤크는 그리스 건축에서 특히 '이성 理性'을 강조한다. 그리스 철학의 이성은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성은 이분법(二分法)으로 대립되는 두 개념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부분적으로 서도 다른 두 개념이 전체적으로 이성 안에서 이루는 균형. 이는 두 저자가 바라보는 그리스 건축의 특징이다.



[사진] 그리스 건축물(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k_architecture)


 그리스 신전의 모든 부분을 분리해서 보고, 그것들이 전체와 맺는 관계는 물론 그 각각을 개별적으로 연구한다면 우리는 예술의 존재를 입증하는 그러한 현명하고 섬세한 관찰들의 영향을 항상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의 존재라는 것은 모든 형태를 이성에 종속시키는 세련된 감정으로서, 이때의 이성은 기하학자의 건조하고 현학적인 이성이 아니라 감각과 자연법칙에 대한 관찰에 의해 인도되는 이성입니다.(p102) <건축 강의 1> 中

 

 그리스 건축은 서양문명사의 흐름을 구성하는 대표적 쌍개념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탄생했다. 이러한 쌍개념들로는 자연과 인공, 정신과 육체,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규범과 자유정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단순성과 다양성, 원형성과 가변성, 남방문화와 북방문화, 전쟁문화와 상업문화 등을 들 수 있다.(p114)... 그리스 건축에서 관찰되는 장점은 균형감각이다. 많은 내용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도 혼란스럽거나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그리스 문화의 힘인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 건축에서의 종합화가 단순 합이 아닌 정제 精製의 의미에서의 추상작업이었기 때문이다.(p115)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그리스 인은 이성의 규칙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추론하고, 논쟁하며, 구속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입법 정신에 들어맞지 않지요. 대칭을 예술의 첫 번째 법칙 중 하나로 선언함으로써 로마 인은 끝없는 문제와 불확실성을 피해 갔습니다.(p182) <건축 강의 1> 中


 로마의 정치 체제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로마 미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맣한 것처럼 로마 인들은 정치적인 민족이고, 그런 그들에게 예술은 그리스 인들에게서와 같은 향락이 아니라 도구이고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인은 자신의 방대한 조직 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특정한 예술 형식이 그 예술의 원리들과 조화를 이루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은 그의 안중에 없습니다.(p133) <건축 강의 1> 中


  그렇지만, 로마 건축에 대해서는 두 저자의 입장이 다르다. <건축 강의 1> 에서 비올레르뒤크는 자유로운 그리스 문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면, 규격화된 로마 문화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로마의 건축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건축 기법이 기술적으로만 결합했을 뿐 여기에는 로마인만의 철학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비올레르뒤크의 주된 비판 내용이다.


[사진] 로마 상수도관( 출처 : https://www.ancient.eu/Roman_Architecture/)


 에트루리아 인들로부터 로마인 들은 석재들을 건식 쌓기(joined stone / pierre appareillee)한 원형 아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캄파니아 인들에게서는 종교 건축의 일반 계획, 그리스식 주범, 주거의 배치와 장식을 배웠지요. 따라서 그들은 별개의 두 원천에서 각각 이런 것들을 빌려다 쓴 셈입니다. 그들은 정반대의 두 원리, 즉 그리스식 인방과 에트루리아식 아치를 결합하려고 했습니다.(p129) <건축 강의 1> 中 

 

  반면, <임석재 서양 건축사 1>에서 로마 건축에 대해 긍정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 건축술의 결합은 당연한 것이었다. 테베레 강(fiume Tevere)의 작은 도시 국가가 서쪽으로는 에스파냐, 북쪽으로는 라인강, 동쪽으로는 이집트,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로마 시민의 의식은 크게 높아졌다. 반면,이를 건축으로 표현하기에는 기존 건축술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건축술의 결합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콘크리트와 철근이 결합하여 철근콘크리트가 탄생한 것처럼.


 로마만의 독립적 문명이 시작되면서 로마 고유의 건축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집단주의와 팽창주의라는 공화적을 대표하는 두 가지 건축적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로마 건축의 집단성은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에 의해 최초로 형성되었다. 공화정기 때 집단의식을 형성한 가치관은 로마 민족의 우수성이었다. 집단의식은 건축에도 반영되어 화려한 과시욕의 표출로 나타났다.(p250)... 로마만의 건축을 창출해내기에 이전의 건축술은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건축술의 발명을 포함한 산업기술 체제의 실속 있는 정비가 필요했다. 건축행위를 유발시키는 동기 또한 상식적 수준을 뛰어넘는 비상한 요구가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킨 것이 팽창주의였다.... 이 두 가지 상황이 함께 작용하면서 로마 건축은 발전했다.(p252)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이처럼, 로마 시대 건축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해답은 <건축 강의 1>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헬레니즘(Hellenism)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사진] 헬레니즘 시대 건축물(출처 : https://fineartamerica.com/art/hellenistic+architecture)


  기원전 2세기에 나타난 헬레니즘화와 구조기술의 발전은 공화정건축뿐 아니라 로마 건축 전체를 대표하는 특징이었다. 전자는 신전으로 상징되는 고급건축을, 후자는 토목 인프라로 상징되는 실용건축을 각각 대표했다.(p255)...  헬레니즘화는 로마 건축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양면적 영향을 끼쳤다. 구조기술의 발전은 이 가운데 부정적 측면에 대한 치유적 성격을 가지면서 로마 건축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헬레니즘화가 끼쳤던 긍정적 영향은, 로마 공화정 건축의 본격적인 출발을 촉발시키면서 양식의 수준을 처음부터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 것이었다... 헬레니즘화에는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 로마 건축은 헬레니즘 건축을 모방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헬레니즘 건축의 아류에 머무는 한계를 갖게 되었다.(p256) <임석재 서양 건축사 1 : 땅과 인간> 中


 신라 석굴암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지는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BC 356 ~ BC 323)이 만들어낸 제국 안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등 여러 문명(文明 Civilization)이 통합되면서 탄생한 헬레니즘이라는 제국 문명이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에, 로마는 새로이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여기에 숟가락만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로마인들 특유의 실용성을 생각한다면, 그리 무리한 추정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의 건축은 언제나 수직, 수평선들과 표면들의 조합으로 진행됩니다. 로마의 건축은 이 두 가지 원리들에 아치와 궁륭, 즉 곡선과 오목면을 추가합니다. 공화국 시대부터 우리는 로마 건축이 이 새로운 요소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지배적인 원리가 되고, 결국은 앞의 두 원리들을 지배하게 됩니다.(p179) <건축 강의 1> 中


  시간이 흘러 로마 제국 전성기가 지나고 비잔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의 중심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과 인근 그리스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에 위치했지만, 비잔틴 시대의 건축은 이전 그리스 건축과는 달랐다. 제국 말기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基督敎)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비잔틴 문화라는 독특한 양식이 출현하게 된다. 


 비잔티움의 그리스 인들은 포착할 수 없는 추상들, 철학적/종교적 교의들에 대해 토론하면서 한편으로는 조형 미술에 이교적 형태를 부여할 것은 주장합니다. 그것은 이 민족의 본능과 정신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모순입니다.(p335)... 아시아와 서양의 중간에 위치한 이 나라는 이중적인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스는 예술의 아름다움, 불변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때로는 완고하다시피 보존합니다. 반면 그들은 과학과 변증법의 방대한 범위에서, 그리고 도덕적 영역의 엄격한 탐구에서 앞장서며 현대인들조차 이끌어 갑니다.(p336) <건축 강의 1> 中 


[사진] 성소피아 성당(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24467253@N04/5890779855)

 

 비잔틴 교회, 넓게는 비잔틴 건축의 특징은 중앙집중형으로 대표된다. 비잔틴 건축은 중앙집중형 공간의 보고이다. 비잔틴 건축은 90퍼센트 이상이 중앙집중형 공간으로 구성된다. 통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비잔틴 건축은 중앙집중형 공간이 가장 발전한 시기였다. 중앙집중형 공간의 역사에서 비잔틴 건축은 가장 발전한 구성기법과 가장 풍부한 예를 남긴 시기였다. 비잔틴 건축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등과 같이 이후 시기에 중앙집중형 공가을 추구하는 경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p338) <임석재 서양 건축사 2 : 기독교와 인간> 中


 <건축 강의 1>에서 비올레르뒤크는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를 건축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로마 문명은 이질적인 문화의 단순한 결합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그리스 문명은 자유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문화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저자의 이런 관점은 '작은 사회 = 자유로운 사회'라는 생각 위에 놓인 듯하다. 


 민족성(nation / nationalites)의 역사를 근대적 관념들에 따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아테네 인들의 애국심은 로마 시민들이나 19세기 파리 인들의 애국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민족성보다는 이런 사회(association / societe)의 상태가 예술의 발전에 현저하게 유리합니다. 그들에게 애국심이란 로마나 근대 유럽 국가들에게서 발전된 감정보다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대에 가까웠습니다.(p116) <건축 강의 1> 中


 그렇지만, 이러한 비올레르뒤크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건축사 측면에서 당대 우수한 고대 문명의 결정체인 헬레니즘을 서방 세계 곳곳에 전파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로마 문명은 충분히 제 할 일을 한 것이 아닐까. 모두가 창업을 할 수 없고, 창업(創業) 이후에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말도 생각해본다면, 로마 문명 나름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로마 문명은 처음으로 세계 종교인 기독교를 탄생시켜 비잔틴 예술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로마 예술이 헬레니즘의 아류라는 비판도 지나친 면이 있다 생각된다. <건축 강의 1>과 <임석재 서양건축사>를 통해 로마 건축과 로마 문명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 한다.


PS.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마 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큰 변화는 개인 생활(private life)의 등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체주의 도시 공동체의 부분으로 느끼는 개인의 자유와 거대한 제국의 보호 아래 느끼는 개인의 평온함. 서로 다른 이들 가치 중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시에서는 개인 주택 규모와 장식이 극히 소박했다. 모든 웅장함과 사치는 공공 분야, 즉 도시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그리고 이러한 도시 자체가 개인과 공동체의 융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합치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여기서 개인은 자신이 정치적 공동체에 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면 고전 시대의 도시가 위기에 처하면서 변화가 초래되는데, 한마디로 공적인 영역이 줄어드는 대신 사적인 영역이 괄목할 만큼 확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주택이 점점 사치스러워지고 개인 소장품이 증대되는 동시에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p462) <사생활의 역사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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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0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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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0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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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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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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