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산요소의 한계투입이라는 개념은 투입증가에 따른 수익체감경향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임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특정 수단의 과도한 투입은 실제로 모든 사업부문에서 수익체감을 낳을 것이 확실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용도를 위한 재료 선택에 과도한 배려와 자금을 투입한다면, 그러한 지출은 급격한 수익체감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이다.(p108)... 수익체감의 법칙은 농장주들이 일반적으로 각종 작물에 대한 상대적 수요를 고려해서 토지 및 기타 자원에 가장 적합한 작물들을 경작하고, 자원을 각종 경작하는 데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p109)'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 ~ 1924)은 그의 대표작 <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위와 같이 한계수익 체감,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productivity)으로도 설명되는 위의 내용은 고전경제학(古典經濟學)의 중요한 기초 가정이기도 하다. 다른 생산요소가 고정되었을 때 한 단위 생산요소의 투입비용이 증가한다는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이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 The Zero Marginal Cost Society>를 통해 설명한다. 


 리프킨이 주장하고 있는 한계비용 제로(0) 사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학에서는 크게 생산비용을 고정비용(FC : Fixed Cost)과 변동비용(VC : Variable Cost)으로 구분한다. 고정비용은 생산량이 변화하여도 단기간 변동이 없는 비용이며, 여기에는 기업의 임차료, 지불이자, 자본재의 감가상각비 등이 있다. 이에 반해 가변비용은 생산량의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비용을 의미하며 크게 노동자의 임금(賃金)이 여기에 속한다. 


 '종반적에 이르면 치열한 경쟁으로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최고점에 달해 판매를 위해 생산하는 각각의 추가 단위가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뜻하는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기본적으로 제로 수준이 되어 상품의 가격을 거의 공짜로 만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본주의의 생명소라 할 수 있는 있는 "이윤(profit)"이 고갈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p12)'


 기술이 발전하고 투입되는 자본재가 최대인 상태. 그 상태를 저자는 한계비용 제로인 상태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의 경제 법칙이 더이상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과거 산업시대에 적용되었던 '규모의 경제(規模의 經濟, economies of scale)'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투입되는 규모가 커질수록 장기평균비용(LAC)이 줄어들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규모의 경제'의 원리는 대규모 자본의 집중을 설명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어 왔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한계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집중은 더 이상 설 땅을 잃게 된다. 마치 6,600만년전 백악기 말엽에 이루어진 대멸종의 시대에 공룡이 자취를 감추고 포유류가 점차 그 자리를 대신한 것과 같이, 대자본은 한계비용제로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프로슈머와 사회적 기업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의 시작점이 된다. 


  '한계비용 제로 혁명은 재생에너지와 3D 프린팅 제조, 온라인 고등교육 등을 포함하는 여타의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프로슈머(prosumer)", 즉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직접 자신이 쓸 녹색 전기를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하고 있다... 한계비용 제로 혁명을 주도하는 참여자 다수는 앞으로 무료에 가까운 재화와 서비스가 훨씬 더 우세해지겠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을 유지하고 심지어 자본주의 시스템을 번성케 하기 위해 여타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충분한 마진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p13)'


 '우리는 프로슈머가 빠르게 늘어나고 또래 생산이 사물인터넷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하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마케팅, 배달 비용을 줄일 때 공유사회의 사회적 경제가 얼마나 더 극적으로 진화하는 속도를 올리는지 확인했다. 그로 인해 기존의 2차 산업혁명 기업들의 이윤 폭은 더 줄어들고 있으며, 그들 중 다수가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p480)'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작가의 전작 <노동의 종말>과 <소유의 종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1996년 쓰여진 <노동의 종말> 속에서 리프킨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자본의 위협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서 2001년에는 <소유의 종말>을 통해 소유 대신 체험을 강조하는 인간 가치관의 변화를 지적하면서, '접속'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사실, <소유의 종말>의 원제는 <The age of Acess>다.) 그리고,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이러한 종말의 시대가 가져온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책들이 나온 시기는 벌써 20여년이전이기에 지금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크게 새롭지는 않지만, 현실을 잘 설명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동의 종말>에서 말하는 산업 사회에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대체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소유의 종말>에서 말하는 접속에 의해서 생존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었다. 여기에 기반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는 과거보다 풍요로운 인류에 대한 희망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포스트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유토피아'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 기술 발전이 이처럼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고 말한 기술이 발달한 어느 지점을,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특이점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특이점을 개념적으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특이점"은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특이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수학에서는 유한한 한계를 한없이 초월하는 큰 값을 의미하는데, 가령 상수를 0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수로 나눈 결과처럼 무한히 커지는 값을 지칭한다. y=1/x라는 간단한 함수를 생각해 보자. x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함수값(y)은 점점 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p43)'


[그림] 수학에서의 특이점 (출처 : http://hkpark.netholdings.co.kr/web/manual/default/manual_view.asp?menu_id=107589&id=2853)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이점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계비용 제로 사회와는 직접 비교는 어렵다. 다만, 2016년 인공지능(AI)알파고가 인간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이들이 '특이점'을 연상했다는 점과 알파고가 수많은 커퓨터가 연결된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으로 구현된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리프킨이 말한 수많은 사람들의 '접속'에 의해 유지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와 아예 연관없다고 볼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특이점이 온다>와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이점 이후의 시대가 유토피아(Utopia)가 될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Dystopia)인가 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별도의 페이퍼에서 살펴보도록 하며, 다소 길었던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특이점이 온다>는 기술변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Homo Deus>와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 이 두 책을 비교해서 보는 것 역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이점이 온다>에서 미래에 일어날 세 가지 혁명으로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 공학(AI)을 들고 있는데,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를 통해 유전학과 인공지능으로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있는 비교가 될 듯 하다. 그리고, 그 비교는 말을 꺼낸 사람이 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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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04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걸 경제 수치적인 걸로 환산하는 풍조가 정말 우려됩니다. 좋아요 갯수, 팔로워 수 등등등 까지 해서 말이죠. 오늘 내가 먹은 거, 내가 산 책, 내가 찍은 사진, 내가 그린 그림 인증 등 온 사방이 수치화-_-;(네, 인간 실험체 A씨, 제 얘깁니다) 이런 수치 환산적인 환경 속에 프로슈머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사물인터넷으로 이 모든 것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기계와 우리의 합체는 당연한 수순인 듯...

겨울호랑이 2018-03-04 08:52   좋아요 1 | URL
모든 것을 수로 환원하고 평가하는 상황이 비인간적이라 여겨지기에, AglamA님 말씀처럼 모두의 참여로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나가는 가능성이 높아가는 것은 이에 대한 일종의 ‘반‘이라 여겨집니다. 과학기술이 보다 적절하고 긍정적으로 활용된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리프킨은 말하는 것 같아요^^:)

2018-03-05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5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