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悲劇)은 많은 부분 소재를 그리스 신화(神話)와 서사시(敍事詩)에서 가져왔다.
몇몇 작품을 예로 들자면, 그리스 비극 중 아이스퀼로소의 대표적 비극 <오레스테이아>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서사시의 변주곡(變奏曲)'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의 재해석이 극에서 '비극'이라는 변주 형태로 나타났다면, 미술양식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코레상은 아르카이트 시대(archaic period ; BC 1,000 ~ BC 500) 시대 초기의 작품이다.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의 작가라고 알려져 있고, 이 시기에 그리스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성립되었다고 본다면, 코레상은 서사시와 동시대의 조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코레(Kore)상 (출처 : http://m.blog.daum.net/hong-hyojueng/2)
쿠로스(kouros=청년이란 뜻으로서, 복수는 쿠로이) 상은, 코레(kore=소녀·처녀의 뜻. 복수는 코라이)와 더불어 아르카이크기(期)의 입상(立像)의 기본 형태이며, 그 생성과 발전은 동시에 그리스 조각 그것의 창조·발전을 의미한다. 왼쪽 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고, 양쪽 팔을 허리에 얹고 선 초기의 형태는 분명히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의 남성 입상(男性立像) 조각은 이 형태를 유일의 기본 테마로 하고, 나체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하여, 아름답게 완성한 청년의 이상상(理想像)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에 비해, 고대 그리스 비극은 주로 페리클레스 시대(BC 461 ~ 430) 전후에 집필되었으며, 이 시기는 고전기(classic period ; BC 500 ~ BC323)에 속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원반 던지는 사람>이 있다.
[그림] 뮈론, 원반 던지는 사람 ( 출처 : http://intempus.tistory.com/1698)
아르카익 시대에서 고전시대의 차이는 정(靜)과 동(動)의 차이로 여겨진다.
같은 그리스 조각이지만 <코레>상은 정형화 되어 있는 반면, 아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자연스럽다. 그리스 서사시가 시인들에 의해 암송되고 정형화되어 전승되었다면, 그리스 비극은 작가의 자유로운 해석으로 변주곡처럼 다가온다. 또한, 그리스 서사시가 국가와 영웅을 그린 전체주의 작품이라면, 그리스 비극은 개인의 내면을 그린 개인적 작품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시대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문학작품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그리스 비극이 융성한 시기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최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임을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국가 주도의 전체주의 사상(영웅주의)보다 개성(개인의 슬픔, 비극)을 인정하는 사회가 보다 발전된 사회임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페리클레스 시대가 아테네 민주정치가 가장 발전한 시대라고 한다면, 민주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현실'을 조각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경직된 코레 상이 이상적인 '이데아 idea'를 조각하는 것이 허용되었다면, 고전 시대에 와서야 원반 던지는 사람과 같은 '현실'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일까? '현실'을 그릴 수 있는 시대에 그려낸 작품이 하필 비극(悲劇)이라는 것은 인생(人生)은 고해(苦海)라는 사실이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별로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지만,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전집을 읽으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