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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평점 :
<지상 최대의 쇼>에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진화가 진실임을 강조한다. 전작인 <만들어진 신>에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혔다면,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p70)에 의한 진화를 주장한다.
<지상 최대의 쇼>는 서두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에 대해 언급한다. 이후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증거를 본문을 통해 제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본문의 대부분 내용이 인위선택에 의한 진화를 보여주기 위한 논거제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논거는 도킨스 자신이 스스로 '눈 먼 시계공' 프로그램을 개발실험, 다른 이들의 실험(렌스키 실험)결과, DNA와 화석들을 통해 종(種)의 유사성을 비교설명 등 여러 학문분야의 다양한 증거로 약 500페이지에 걸쳐 제시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가 의사결정의 중심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 생물학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면,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유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진화에 대해 과학적인 확신을 갖고 싶다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지상 최대의 쇼>에는 생물학적인 전문용어들이 요약해서 언급이 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을 속속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 읽는 것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에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면서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
많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증한 <지상 최대의 쇼>를 읽고 나면 '자연에 의한 인위선택설'에 대해 반박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진화의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측면에서는 이 책은 그 목적을 완수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명확한 과학적인 논거 제시와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특히, 기독교 국가에서)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책의 [부록]에 제시한 내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이론적 대립이 심한 것 같다. 1982년 이후 갤럽이 인간의 기원과 관련한 조사를 비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2008년 조사 결과 '신이 지난 1만년 안짝에서 현재의 형태 거의 그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라는 응답에 44%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머리말에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p568)
'진화의 증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얄궂게도 무지에 기반한 반대 역시, 내가 기억하는 한,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p6)
도킨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근거를 가지고 제시한 내용에 대해 사회적 반발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면서 도킨스가 불평한 '반(反)진화론'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도킨스가 기여한 바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 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 <지상 최대의 쇼>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창조론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은 진화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화제를 불러왔다. 그렇지만, 도킨스의 지나칠 정도로 냉정한 창조론에 대한 공격이 오히려 창조론자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에도 공헌을 한 것은 아닐까. 평생동안 가져온 자신의 신념이 붕괴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수구(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을 최근 정치를 통해 많이 접한다.) 만약, '진화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2.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진화론
칼 맑스(Karl Marx, 1818~1883)는 진화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다윈의 '생존 경쟁'에서 '계급 투쟁'이라는 개념을 끌어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찰스 다윈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모든 역사는 진보,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이번에 <지상 최대의 쇼>를 읽으며, 칼 맑스의 사상 중 일부는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칼 맑스는 사회과학에서 일종의 법칙성을 주장한다. 그는 역사발전 5단계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붕괴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원시공산주의 사회에서 미래 공산 주의 사회로 이행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발전'을 '진화'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하다. 칼 맑스의 '역사적 법칙성'이라는 개념은 돌연변이 등 우연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진화론의 '자연에 인위 선택'에서 도출된 것은 아닌 듯하며, 별도의 사상으로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칼 맑스, 엥겔스의 <자본>을 통해 추후 더 살펴볼 계획이다.
3. 진화론과 창조론의 상충 : 시간의 문제
진화론과 창조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시간 문제다. 진화론에서는 생명이 40억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창조론에서는 '6일'이라는 짧은기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구약 창세기1,2장)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느님(神)의 시간은 영원이며 불변이며, '시간'과 '공간'마저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조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과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 '현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하느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 3:8)"
성경에 기록된 사항은 기록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60년을 넘기 힘든 이들에게는 100년과 1000년이 큰 차이 없이 '매우 긴 기간'을 의미한 것을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적어도 '시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개인의 신앙과 과학이 상충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연구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보다 여러 분야에서 대립 대신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과학과 신앙 문제에 대한 조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관련기사 : http://www.huffingtonpost.kr/2014/10/29/story_n_6065760.html
책을 읽고 나니 <지상 최대의 쇼>를 통해 진화라는 본래의 문제가 아닌 다른 부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삼천포로 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현재 내가 가진 인식 틀로 <지상 최대의 쇼>를 읽은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