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제4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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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인들의 용맹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현재 처한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해야 했다. 이탈리아 인들은 이스라엘 인들보다 더 예속되어 있고, 페르시아 인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으며, 아테네 인들보다 더 지리멸렬해 있는 데다가 인정받는 지도자도 없고, 질서와 안정도 없으며,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당한, 한 마디로 완전히 황폐한 상황에 처해있다......지금 신에게 외세의 잔혹하고 오만한 지배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보내달라고 이탈리아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가를 보라.. 


<군주론> , 제26장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권고(p174) 

*내가 가진 것은 구(舊)판(1994)이라 신판과는 페이지가 다르다.


<군주론 Il Principe>은 마키아벨리가 기술한 정치학에 관한 책이다. 일반에는 '바티칸의 금서(禁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유명한만큼 실제 읽히지는 않기에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오해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당시 피렌체 공국의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에게 헌정한 책이다. 리뷰 첫머리에 있는 26장은 <군주론>의 마지막 부분이며, 이 장(章)에 책의 목적이 잘 나타나 있다.


이탈리아가 이제 희망을 걸 만한 대상은 오직 영광스러운 전하의 가문(메디치 가문)뿐입니다..(p175)


 헌정사와 본문의 마지막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이 책의 목적이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군주의 처신에 있음을 명확히하고 있다. 1453년 백년전쟁을 마무리 짓고 중앙집권 국가로 탄생한 프랑스, 1492년 그라나다 함락을 계기로 통일왕국으로 거듭난 에스파냐(스페인),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의 지속적인 간섭 속에서 분열된 이탈리아는 계속 분열될 수 밖에 없었고,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통해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지도)


[그림] 16세기 이탈리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 정세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로마사론 Discourses>에서는 로마 공화정을 통해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이처럼 어지러운 이탈리아의 정세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이탈리아 분열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해서 황제의 권력이 이탈리아에서 그 토대를 상실하게 되고 교황의 세속적인 권력이 증대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가 많은 국가로 분열되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많은 대도시에서 인민들을 억압하던 귀족들에 대항하여 많은 반란들이 일어났고, 교회는 자신의 세속적인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이러한 반란들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군주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주로 교회와 일부 공화국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교황들과 시민 지배자들이 군사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외부인들을 기용하여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p92)


"운명은 자신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아무런 힘이 조직되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제방이나 둑이 없는 곳을 덮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러한 격변의 근원이자 무대인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이 나라가 바로 제방이나 방파제가 없는 들판인 것을 알 수 있다.(p168)"


마키아벨리는 분열된 이탈리아는 강대국의 희생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통해 로마시대의 영광을 찾아야한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우려는 1527년 5월 카를 5세의 로마 약탈을 통해 실현된다.


[그림] 카를5세의 로마 약탈 (출처 : 위키피디아)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강인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누가 되었든 빠른 통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 지도자를 위한 책이 <군주론>이다.  <군주론>에서는 군주국의 유형을 세습군주국(2장), 복합군주국(3장), 신생군주국(6장 ,7장), 시민형 군주국(9장), 교회형 군주국(11장)으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라고 생각했다. 군대의 유형(12장, 13장), 군주의 군사(軍事)에 대한 처신(14장)을 고찰하는 것을 통해 이 점을 알 수 있으며, 이후 <군주론>에서는 군주가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25장까지 다루고 있다.


<군주론>에서는 식민지 설치, 점령지 통치 방법, 군대 양성 방법 등 당대 현실에 부합하는 통치방법론에 해당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통적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질병의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데 반해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진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또한 마찬가지다."(p22)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다."(p29)


"결과적으로 무기를 든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말뿐인 예언자는 실패했다."(p42)


"인간이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자에게 해를 가하기 때문이다."(p58)


"따라서, 정복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한 후에 그가 행할 필요가 있는 모든 가해행위에 관해서 결정해야 하며, 모든 가해행위를 일거에 저질러서 매일 되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p65)


"적대적인 인민들로부터 군주가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다.(p69) ...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 경우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p73)


"경험에 따르면 자기 군대를 가진 군주와 공화국만이 성공적이었으며, 용병은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해만 끼칠 뿐이었다."(p87)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한 것은 없다.' 라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p100)


"군주는 전쟁, 전술 및 훈련을 제외하고는 그밖의 다른 어떤 일이든 목표로 삼거나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몰두해서도 안 된다."(p101)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p121)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거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사람은 항상 성공할 것이다.(p170)... 따라서 나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적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결론짓겠다."(p172)


<군주론>이 일종의 제왕학(帝王學) 서적이라 할 수 있음에도 이 책이 사악한 책으로 일반에게 인식된 것은 책 중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라 생각된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p19)


"자유로운 생활양식에 익숙해진 도시국가의 지배자가 된 자로서 그 도시를 멸망시키지 않는 자는 누구나 그 도시에 의해서 자신이 파멸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p36)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자는 많은 무자비한 자들에게 둘려싸여 몰락을 자초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p107)


공공연하게 잔인함과 부도덕한 내용을 선동하는 위의 내용이 <군주론>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을 가져왔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이러한 내용은 부분이다. <군주론>을 보다 공평하게 읽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마키아벨리의 다른 말 또한 마음에 담아야 한다.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고, 처신이 신의가 없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virtu)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p61)


'스키피오의 성적인 절제, 선의, 인간미, 관대함이 얼마나 많이 키루스의 성품을 모방함으로써 얻은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p105)


"나는 모든 군주들을 잔인하다기보다는 인자하다고 생각되기를 더 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부적절한 방법으로 자비롭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p114)


마키아벨리는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무자비하게 통치할 것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해서, 새로 얻은 영토을 자신의 영토로 확보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으로서 잔인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결코 길지 않게 단번에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 <군주론>의 주요한 내용이다. 그러한 면을 볼때 마키아벨리를 사악하다고만 보는 것은 무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계경제가 불황인 상황에서 세계각국은 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 양적 완화 등의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이 시장경제를 교란시키는 행위임을 경제전문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결코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하고 일반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는 민생을 안정시키고자하는 큰 목적 아래 일시적인 방편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군주론>의 내용도 16세기 이탈리아 정치현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군주론>은 1559년 교황청의 금서(禁書)목록으로 지정되었다. 

내용의 사악(邪惡)함이 금서가 되었다는 사실의 전부일까? 우리는 <군주론>이 메디치 가문에 헌정된 1513년이 아닌 최초 출간년도 1532년 이후 2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금서가 된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군주론>을 헌정한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Leo PP. X, 1513년 3월 9일 - 1521년 12월 1일) 사후 바티칸의 금서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내용이 사악(邪惡)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에서 금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황청이 이탈리아 통일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결국 이탈리아 통일의 장애가 될 뿐이었다. 실제로 교황 레오 10세 사후(死後) 메디치 가문과 교황청간의 인연이 끊어지게 되면서 바티칸은 이탈리아 통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한  바티칸의 입장에서는 반란을 부추기는 <군주론>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정치적인 목적 역시 <군주론>이 금서로 지정되어 후대에 악명높은 책으로 이름을 높이게 된 이유중 하나가 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군주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도 연계해서 읽는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적인 국가 체제가 플라톤의  <국가/정체>에서 말한 도시국가에서 '이탈리아'라는 영토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비교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한 이상적인 정체에 대해서는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통해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arete'가 마키아벨리의 'virtus'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외에도 다른 고전들과 비교해서 읽는다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마지막으로 <군주론>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시(詩)가 있어 옮겨본다.

이육사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마키아벨리는 이상적인 군주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 이육사 -


ps. '이탈리아 인들의 용맹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현재 처한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해야 했다...' 지금의 우리도 우리의 용맹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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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9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군주가 `초인`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이념과 도덕보다는 현실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군주는 현실을 재빠르게 판단해서 결단을 내려야겠지만, 하나의 선택을 하기 위해 늘 고민해야하며 선택에 의한 결과의 실패를 감수해야 합니다. 군주도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심사숙고하되, 나머지 의견들을 무시하라고 《군주론》에서 주장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초인과 가까운 의미라고 한다면, 군주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군주론》을 쓸 의미도 없어집니다. 저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는 환상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6-11-09 15:1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의견을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육사 시인의 <광야>의 `초인`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 cyrus님께서 `군주의 초월성` 문제로 이견을 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제가 글을 쓰면서 `군주=초월적 존재, 메시아`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은 아닙니다. 이육사 시인이 `초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 통일 영웅`을 고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광야>를 인용했습니다. 존재성보다는 `희망하는 마음`쪽을 더 강조한 것인데, 제 표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되, 운명이 우리의 행동의 반 이상을 통제하기에, 운명의 변화에 맞서 대담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한계가 있는 현실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군주론>에는 이탈리아 통일의 꿈을 위해 노력하다가 중도에 좌절한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나 있습니다. 운명의 버림을 받았다고 표현되는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감정을 고려할 때, 운명의 여신의 사랑을 받아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는 군주를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물론 추측이지만요.

Cyrus님 좋은 지적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